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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현 Jul 21. 2020

이치젠 덴푸라메시

먹고 그리는 삶

요즘 한동안 1일 1식을 했다.

이유는 옷에 몸을 맞추기 위함이었다.

단정해 보여야 했고, 그러려면 셔츠를 입어야 했고,

마른 체형일 때 샀던 셔츠는 현재의 몸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고픔에 몸부림치던 어느 새벽, 소중한 한 끼를 맛있게 먹기 위해 서칭 하기 시작했다.

중식으로 시작해서 분식을 거치고 한식, 패스트푸드, 이태리 음식 등등 여러 가지 음식들을 거치고 난 후에야 발견한 곳이 바로 튀김 오마카세를 지향하는 '이치젠 덴푸라 메시'였다.


예전에 한번 들어봤던 기억이 난다. 점잖은 미식가 재윤이가 말하길 망원동에 아주 괜찮은 텐동 집이 있다고, 하지만 줄을 엄청 서야 했다고.. 아마 그곳의 2호점일 것이라 생각했고 들어맞았다.


텐동은 알겠는데 튀김 오마카세는 뭘까..?! 유튜브와 블로그로 매장을 검색해보면서 하나하나 익혀나갔다.

갓 튀겨낸 튀김을 직원이 손님들에게 올려주는 형식이었다. 소금을 찍어먹으라고 권하기도 하고, 정식을 시키면 나오는 밥에 온천 계란과 간장을 비벼먹으며, 오늘의 튀김이 있는데 그것들도 괜찮고, 바질 토마토는 꼭 먹으라고 권하는 정보들.. 그렇게 준비를 마쳤다.


몇 시간 뒤, 낮밤이 뒤 바뀌어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나는 엄청 피곤한 몸을 이끌며 숙대입구역으로 향했다.

숙대입구역 뒤편 골목(이치젠까지는 도보로 한 400m 정도 걸린다.) 서울에 흔하디 흔한 개발이 되어가는 중인 골목길, 제법 예쁘고 개성 있는 카페와 음식점들이 들어와 있다.


july, curry


DAY ONE COFFEE BAR


NAMPARK


사실 엄청 피곤했는데 골목길을 걸으며 잠이 확 깼다. 영업으로 다져진 새로운 가게 탐구정신과 그림을 그리며 길러진 예쁜 구도와 공간을 쫒는 레이더 때문에..


다음에 와보겠다며 몇 발자국 걷다가 사진을 찍고, 걷다가 사진을 찍고 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이치젠 덴푸라 메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예쁘다, 단정하다는 말이 새어 나온다. 눈으로 외관을 스캔하면서 나중에 어떻게 그려질지 상상을 해본다.



잠시 가게 앞에 서서 고민의 시간을 가진다.

'밥을 먹고 그릴 것인가, 그림을 그리고 밥을 먹을 것인가'


1일 1식을 하게 되면 어떤 문제가 있냐면 적응되는 순간 공복이 얼마나 길었는지 잊어버릴 때가 있다.

생각보다 오래 굶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 일단 먹기로 결정을 한다.


이미 정보를 얻고 왔기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보통은 밖에서 웨이팅을 기다려야 하고, 일행이 오지 않으면 먼저 들어가서 앉아있을 수 없다.

그 이유는 가게 내부 때문인데  바(bar) 석으로만 이루어져 있고, 최대한 많은 손님을 한 번에 수용하기 위해 안쪽부터 자리를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유리문으로 쓱 보니 자리도 비어 보이고 혼자였으니 당당하게 들어갔다. 옆으로 여는 문인데 잘 열리지 않았던 기억, 나는 중년의 커플 옆자리에 앉았고 얼마 후에 내 왼쪽에는 젊은 커플이 앉게 된다. (커플 사이에 낀 형국)



기본셋팅

(정갈하고 간단한 세팅을 보고 안정감을 느끼는 건 왜일까?)

 

메뉴판

어제 생각해둔 대로 이치젠 정식과 바질 토마토를 주문하고 가게를 쓱 둘러본다.


오른쪽에는 사람들이 꽤 앉아 있었다.

천장이 생각보다 높고 정확히 일본식 건물인지 모르겠으나 목조로 천장을 지탱한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가운데서는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주문받고 , 튀김을 튀기고, 주문한 메뉴에 따라 튀김을 나눠주고 다들 열심이다.


제일 처음 나오는 메뉴는 바질 토마토였다. 사실 어제 찾아볼 때만 해도 다들 좋다고 추천은 하는데 화이트 와인에 절여져 있다는 설명이 살짝 거리낌을 주었다. 와인향이 싫어서 와인 돈가스도 안 먹는 나였기 때문에..

그래도 꼭 먹어보라는 추천에 시켰고 아무 정보도 없이 왔다면 애피타이저로 먹었겠지만 나는 마지막에 디저트로 먹고 싶어서 나오자마자 사진만 찍고 옆에 두었다.


첫 튀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고 첫 튀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새우 2 , 연근 1, 꽈리고추 1, 당근 1

사실 새우, 연근, 꽈리고추는 평범했다. 새우가 탱탱하고 연근이 아삭하고 꽈리고추가 쌉쌀하니 매콤 한 건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맛이니 말이다.


하.. 당근튀김


근데 당근 튀김 이게 색달랐다. 소금을 찍어먹으라고 권해주길래 맨 처음에 먹어봤는데 얇게 썰어서 튀겨놓으니 아삭 한듯하면서 쫀득한 맛이 소금의 짠맛과 어우러지니 별미였다. 한입 먹고 밥도 조금 같이 먹어보고 한입 먹고 밥을  밥과 당근 튀김과 소금을 같이 먹는 맛은 정말이지 어울리지 않는다.

텐동은 소스라도 버무려질 텐데 다 따로따로 노는 느낌. 근데 맛있다(?) 그게 정말 신기했다.


2차 튀김


그렇게 1차로 내어준 튀김들을 먹는 사이에 2차 튀김이 나오기 시작했다.

갑오징어 2, 가지 1, 단호박 1, 온천 계란


갑오징어는 탱글탱글하니 참 맛있었고. 가지랑 단호박은 예상 가능한 맛. 굳이 찾아왔으니 맛있을 거야 라는 기대감과 함께 미각을 살려 어떤 맛일까 음미해보지만 텐동을 많이 먹어본 것도 아니고 여느 미식가들처럼 튀김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기에 소금과 간장을 번갈아 찍어가며 그냥 맛있게 먹었다.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하니 그 흔한 항공 샷, 개별 샷도 없는 건 당연하다.

Tip. 나중에 계란과 밥을 비벼먹어야 하기에 먹는 동안 튀김과 밥의 비율을 절해가며 밥을 절반 정도 남기자.

어느새 밥이 절반 정도 남았고 튀김도 거의 끝을 보일 때쯤 간장 + 계란 + 밥을 만들기로 한다.

계란을 한 손으로 예쁘게 툭 터트려 자르고 싶었지만 잘 안되니 두 손으로 힘을 주며 자르다가

젓가락을 부러뜨리고 만다. "호호호". 옆 테이블 중년의 여성분이 젓가락을 부러뜨린 현장을 보고 웃으셨다.


민망해서였을까? 실수로 간장을 들이부었다. 간~~~~~장 + 계란 + 밥이 되었다.

간장이 색에 비해서 많이 짜진 않았지만 원하던 맛은 아니었다. 다행히 남은 튀김이 조금 있어서 같이 비벼가며 식사까지 끝냈다.


바질은 생각해보니 던져놓고 안먹은듯..


남은 건 이제 바질 토마토.

무슨 맛이길래 그토록 사람들이 칭찬할까 궁금했다. 색은 탐스러워서 사진 찍기 좋았던 건 인정한다.

부러진 젓가락을 뒤로 한채 수저로 4등분을 하여 먹어보기 시작한다.


새콤하면서 맛있다.

화이트 와인으로 절였다고 하여 걱정했는데 화이트 와인 앞에 레몬도 적혀 있었던 게 기억이 났다.

아주 적절한 새콤한 맛. 그리고 달달한 토마토의 맛이 어우러져 지금도 글 쓰는 동안 군침이 돈다.


유튜브에서였나 블로그에서였나 토마토에 절여진 국물까지 다 먹었다는 걸 봤는데 나도 마셔버렸다. 맛이 괜찮다. 바질 토마토를 마지막에 먹길 정말 잘한 것 같았다.

원래 마지막에 기분 좋게 마무리하는 게 제일 좋으니깐..


이치젠 정식 + 바질 토마토 메뉴가 정말 맛있냐고 물으면 사실 평소에 내가 맛집을 소개하듯이 푼수처럼 침 튀겨가며 칭찬은 못하겠다. 튀김과 밥을 따로 먹는 메뉴가 대중적이진 않기에, 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기에,  하지만 당근 튀김과 바질 토마토는 충분히 매력 있었고 다시 숙대입구에 온다면 한번 더 찾아볼 의향이 있다. 그렇게 식사를 끝마쳤다.


만족스러웠던 식사였고 젓가락 부러트린 걸 사실대로 고백했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 식사는 어떻게 하셨냐'라고 물으시는 사장님의 배려에 감사했다.

보통의 맛집 리뷰라면 여기서 끝나겠지만

나는 가게를 나와서 그림을 그리기로 시작한다.


한 건물을 정면으로 그린다는 것. 잘 살리지 못하면 정말 심심한 그림이 될 수 있기에 쉽지만 쉽지 않은 구도이다. 하지만 좌우대칭이 잘 맞고 가게 하나만의 매력이 풍부할 때는 억지로 틀어서 구도를 만들기보다는 정면이 나은 경우가 많기에 정면에 앉아서 그리기로 한다. 딱히 공간이 마땅치도 않았다.


하.. 그런데 해가 좀 위험하다

이치젠을 마주 보고 있는 건물은 햇빛을 가릴만한 그늘이 없고  해가 내 뒤통수에서 정면으로 넘어오는 최악의 상황이다.


스케치를 마칠 수 있을까 걱정하며 의자를 펴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단순하지만 매력 있는 건물의 외관에 집중하며 한선 한선 긋고 있을 때


사장님이 나오셨다.

내심 걱정이 된다. 그리는 걸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대부분의 사장님들은 본인의 가게를 그리는 모습을 보면 호의적이지만 아닌 경우도 많기에..


더운날 음료수는 최고의 호의이다.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사이다를 주고 가셨다. 그림을 좋아해 주셨고 응원해주셨으며

관심도 보이시길래 명함도 한 장 드렸다.

이 정도면 아주 운수 좋은 날이다. 감사합니다!!



스케치를 마치고 음료수에 힘입어 채색까지 하려는 찰나 해가 머리 90도 위에서 비추고 있음을 느꼈다.

올해는 특히 더 마스크 라인만을 남기고 태울 수 없기에 채색은 미루고 다음 일정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완성본 ]

paper :  canson heritage cold press 300g

pen : unipin fineliner 0.3mm

watercolor : fchmincke 24 color


2020.07.18. 이치젠 덴푸라메시, 용산, 이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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