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늘의 TMI

하마터면 플스를 켜고 넷플릭스를 틀 뻔했다.

무너질 뻔한 계획 붙들기

by 영현

분명히 6:05분에 눈을 떴다. 평소 일어나는 시간보다 10분 일찍 눈을 떴기에, 안심하고 잠시 뒤척인 뒤 다시 눈을 감았다. 그다음에 눈을 뜬 시각은 10:50분이었다. 그렇다. 4일간의 휴가 첫날부터 계획이 깨진 것이다.


이번 휴가는 예정에 없던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동료의 스케줄 변경을 도와주다가 운 좋게 얻어낸 4일이었고, 주어진 김에 그동안 미뤄 둔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겠다고 다짐했다. 계획을 세우고, 장소를 고르고, 메뉴까지 선택했다. 며칠 동안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런데 시계를 본 순간, 직감했다. 오늘의 루틴은 이미 어긋났다는 것을. 그리고 그 틈새로 나른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머리맡에 놓인 듀얼센스가 손끝에 감기는 상상을 했고, 정주행 하려고 아껴 둔 드라마들이 줄지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마치 “조금 늦었으니 그냥 오늘은 쉬어도 되지 않겠느냐”라고 유혹하는 목소리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오늘 무너지면 남은 3일도 같은 방식으로 사라질 거라는 걸. 그래서 이불속 미적거림을 힘겹게 걷어내고,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었다. 잠이 덜 깬 채로 옷을 챙겨 입고, 묵직한 발걸음으로 현관문을 나섰다.


시작은 늦었지만, 계획은 지키기로 했다. 미리 찍어 둔 카페에 도착해 창가 자리에 앉았다. 노트북을 켜는 순간, 카페 스피커에서 잔잔한 재즈가 흘러나왔다. 창밖으로 흐린 하늘 아래, 우산 쓴 사람들의 움직임이 조용히 이어졌다. 나는 조용히 웃었다. “그래, 이게 내가 원하던 휴가의 첫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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