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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세상은 내편 Oct 24. 2021

준비 없는 퇴사

멈추는 게 불안한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완벽한 퇴사를 다짐했건만 버티지 못하고 1년 5개월 만에 퇴사를 선택했다.

반복되는 번아웃을 겪으면서도 퇴사해야 하는 이유와 지금 퇴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나열하며 선택을 차일피일 미뤘다.

퇴사 준비가 될 때까지 존버(존엄하게 버티기) 해 보려고 마음을 다잡다가 폭발한 날에 남편에게 반은 사정, 반은  통보하는 듯 거의 울기 직전 상태에서 말을 내 던졌다.


"나 정말 더 이상 못 견디겠어. 그만둘래!" 


어쩌면 나에게 준비된 퇴사는 언제가 될지 모를 고지였다는 것을 이제야 인정한다.

내가 말하는 퇴사 준비란 마음의 준비가 아니라 금전적인 준비다. 


뒷배도 없고 대단한 재테크 능력도 아직 없는 평범한 맞벌이 부부로 살아가고 있다.

빠른 시일 내에 수입을 창출할 수 있도록 커리어 전환이 가능한 상태인가는 우리 부부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직장 생활이 다 힘들고 자신도 한 회사에 10년 넘게도 다니고 있다며 그만두기를 만류하는 남편의 말이 섭섭하게 들리지 않았다.

코로나 2년 차, 아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남편은 재택 하며 아이를 건사하며 힘겹게  버텨나가고 있었다. 가족 중 누구도 큰 희생하지 않고 이 시기를 잘 버티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내가 일에 허덕이면서 남편의 희생이 컸다.  나도 남편도 삶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었다.


단기 개발 프로젝트를 연속으로 하면서 업무 파악 문제, 잦은 야근, 오너사 PL의 갑질 등  일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퇴근하고 돌아와 집안을 보고 있자면 어질러진 집과 시켜 먹은 음식의 흔적들, 아빠가 일하는 동안은 방치될 수밖에 없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 집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고 아우성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힘들었기 때문에 모든 상황이 더 과장되게 엉망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의 말대로 힘들어도 버텨내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회사에서 점점 더 일의 무게에 눌릴 것이고 나는 더 이상 못 버티겠고 지금은 멈추고 다음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퇴사 시점을 계속 재고 있던 게 무색하게 대안도 없이 3개월 후 퇴사를 결정했다.

하고 있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아이의 첫 방학을 함께 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


멈춘 것 같던 시간은 흘러가고 D day 가 왔다.



안녕하세요.

오늘 퇴사하게 된 이주영 수석입니다.

개인적으로 회사라는 조직에 속해 있는 것이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 조금은 기분이 이상합니다.

벌써 과거가 된 동료들과 함께 일한 시간이 가끔은 그리울 것 같아요. 

회사의 발전과 사장님…...일원들 모두의 건강과 성장을 빌고,

이제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저 자신을 응원합니다.

1년 5개월 동안 같이 일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헤어짐은 아쉽지만 약간의 유머로 마무리합니다. 



남편이 골라 쓰라고 준 이미지들 중에 과하지 않은 것으로 선택해 첨부하고 보내기 버튼을 클릭했다.


고대했던 날이었는데 설레지도 시원하지도 그렇다고 아쉽지도 않았다.

회사에 소속되거나 프리랜서로 일했던 16년이 왜 그리 힘들었는지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적성에 안 맞는 일을 버티며 하고 있어 이리도 힘들었나?

그만큼 버틴 거면 안 맞는다고 할 수 있는 일이냐고 상사가 말했던 게 떠올라 피식했다.


퇴직일이 마지막 월급날이기도 했다.

목표였던 퇴사는 했는데 이제 나는 나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좀 쉬어도 되지 않냐는 마음보다 더 강하게 불안함, 조급함이 벌써 다음 계획을 서둘러 생각해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어 누르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멈추는 게 불안한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나 이렇게 멈춰 봤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내가 왜 그토록 힘들었는지 내 회사생활을 곱씹어 봤던 시간들과 쉬어보고 내 마음의 진짜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다음 스텝을 밟아가는 과정을 기록하며 이야기해 보려 한다.


글을 읽는 누군가와 공감하며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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