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완성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내 작업실인 것 같은 공간을 잠시나마 차지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버스에서 내려 아뜰리에로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가는 길도 좋아한다. 숲 향기가 나고 졸졸졸 냇물 소리가 들리는 길을 걸어가면서 생각한다.
‘오늘은 뭐 그릴까?’, ‘내 손은 이제 적응이 좀 됐을까?’, ‘빨리 그러던 그림 완성하고 싶다.’
벽면이 창이라 안이 훤히 보이는 아뜰리에 앞에 닿으면 지난 시간 완성하지 못했던 내 그림과 재료가 놓인 자리가 보인다.
‘저기 내 자리!’
우리 집은 방 , 거실, 서재 전체가 공동의 공간이라 오직 나만을 위한 공간은 없었다. 아이의 장난감, 남편이 쓰고 식탁 의자에 걸쳐 둔 수건 등 따뜻한 흔적이지만 혼자 집에 있는 날에도 자꾸 치우고 닦아야 할 일이 되어 눈에 들어온다. 당시 회사의 내 자리도 빨리 퇴근하고 일어나고 싶은 곳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회사를 마치고 동네에 내려 집으로 가기 전 들리는 그림 그리는 내 자리는 나에게 해방감을 줬던 것 같다.
아뜰리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선생님이 미소와 함께 맞아주고 그날의 그림 공간 메이트와 인사를 나눈다. 요일과 시간을 정해서 오기 때문에 2명에서 3명이 같은 시간대에 겹치게 된다. 오랫동안 같은 시간대에 했던 귀엽고 당찬 여중생 친구는 친해져서 손과 눈은 그림에 입과 귀는 이야기하기에 바빴다.
내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어떤 대화를 해야 하냐고 물어보니 "말만 안 시키면 돼요."라는 대답을 들었다. 통통 튀는 그 나이의 친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체가 재밌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고 잘 그리던 그 친구는 미술 전공에 대한 고민을 선생님과 나누며 현실적인 조언을 얻기도 했다. 덕분에 나도 미술 전공을 위한 준비와 대학 졸업 후 취업 등에 대한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들을 수 있었다.
초반에 내 마음대로 안 움직이는 손과 실수할까 너무 겁내고 긴장하는 내가 답답한 날이 있었다. 대단한 그림도 아니고 초보적인 그림을 그리는데도 잘 안 되는 게 속상했다. 내 이상은 SNS에 올라오는 완성도 있는 그림인데, 내가 그리는 과정에서는 완성된 모습이 안 그려졌다.
그때 옆에서 그리던 어떤 분은 손 푼다고 거침없이 슥슥 그리는데도 그럴듯한 그림이 되어 가고 있었다. 미술을 전공했던 사람이라고 들었다. 입시 미술에서 하루에 그림 그리는 시간이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어떤 물체를 보면 구도를 잡고 어디에 명암을 넣고 포인트를 넣을지 머릿속에서 저절로 그려질 정도라고 하니 상상 이상의 시간과 연습량으로 만들진 실력인 것이다.
내가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를 보려는 마음이 조금 있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잘 그리고 싶다면 아뜰리에 밖에서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이때 깨달았다.
그렇다고 그림을 많이 그려보지 않은 사람의 그림이 별로인 것도 아니다. 나처럼 초보지만 색깔을 예쁘게 쓸 줄 아시는 분의 그림을 보고도 감동하고 표현을 창의적으로 하신 분의 그림을 보고 감탄하기도 한다. 나와는 다른 시간대이지만 다른 분들이 그리던 그림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새로운 그림이 보이면 선생님께 물어보곤 했다. 그러면 선생님은 그림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해 주셨고, 나는 그 그림들이 매주 조금씩 변하는 과정을 보며 완성된 모습을 궁금해했다.
반대로 선생님께 다른 수강생이 내 그림을 예쁘게 봤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무척 좋았다. 다른 사람들을 통해 얻는 새로운 자극이 좋다.
세상에 여러 음악 장르가 있겠지만 그림요라는 게 있다. 얼마 전 읽은 책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에서 ‘운동요’라는 단어를 썼다. 일할 때 노동요가 있듯이 운동할 때 맞는 운동요가 있고 그림 그릴 땐 그림요가 있다.
아뜰리에 안은 언제나 아이폰을 통해 선생님이 선택한 곡이 흐르는데 클래식, 재즈, 팝, 가요 등 다양한 장르다. 회사에서 일할 때 음악을 들으며 하지 않는다. 멀티가 불가능해서 일하면 일, 음악이나 방송 들으려면 그것만 집중할 수 있다. 이어폰 끼는 걸 싫어해서 어차피 안 듣고 있을 텐데 귀를 괴롭히기 싫어서 안 듣는다.
그런데 운동을 할 때 음악은 분위기와 박자, 리듬감을 살려줘서 계속 인식하며 듣는다.
그림 그릴 때 음악은 그림 그리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자리에 앉아 붓을 들기 전까지 음악으로 분위기를 고취시키며 나는 지금 그림 그릴 거야 라는 스위치를 켠다. 잘 안 풀릴 때 음악에 집중해 보며 어떻게 풀어 볼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림은 느낌을 담는 작업이기도 하니까 음악에서 영감을 얻을 수도 있다. 컬러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컬러를 떠올리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요즘은 집에서도 그림을 그리는데, 항상 시작은 음악이다.
“차분한 음악 들려줘! “
AI 스피커에게 그날의 기분에 따라 명령해서 들으며 그림을 그린다.
잠시 일을 멈추고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생기면서, 그림 그리는 자리는 내가 그리고 싶은 순간을 위해 어디에서든 존재하게 되었다. 남편과 아이가 나가고 거실 정리를 대충 한 다음 식탁에 종이와 연필, 커피를 준비해 놓고 마음에 드는 음악을 선곡한다. 카페에 가서 아이와 끼적이기도 한다. 내 그림을 SNS에도 올린다. 그림 그리는 사람을 팔로우하고 그림을 본다. 그림을 매개로 소통이 이루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