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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세상은 내편 Feb 08. 2020

오늘은 뭘 그리지? 소중한 추억을 캔버스에 담는 시간

순간의 즐거운 그림 생활

 오늘은 뭘 그리지?

 그림을 그릴 때 무엇을 그릴지 고민하는 시간도 즐겁다.


 작품 몇 개를 그리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대상을 그리는 것이 본격적인 재미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입시 미술이라면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취미 미술에서는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좋아해서 자주 보는 대상은 나만 느낄 수 있는 이미지가 있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서 그 느낌이 그림에 담기는 것 같다. 애정이 가는 피사체를 잘 표현하고 싶은 의도가 생기면 선 하나 색 하나 표현하는데도 능동적으로 변한다. 평소에 관찰력이 떨어지는 사람도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관찰하는 습관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관찰하다 보면 관심이 가고 그리고 싶은 소재가 늘어나기도 한다.


 마음에 드는 대상이 아니면 그리기 힘들다는 경험도 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표현할 시간도 모자란다. 가장 애정 하는 것부터 많이 그리자.




 지금까지 내가 그린 것 중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있다.

 여행지에서 첫눈 온 날 남편이 아이와 나를 담은 사진을 보고 그린 아크릴화다. 그때의 분위기와 아이와 나의 마음을 여전히 떠올릴 수 있는 사진이었고 그 분위기를 고스란히 살리고 싶었다.

 사진을 통해 추억을 떠올리며 밑그림을 그릴 때 거리낄 것 없이 슥슥 그려져 즐거웠다.  스케치의 실루엣만으로도 그 분위가 표현된 것 같았다. 채색할 때는 기본 스킬도 없고 사진을 보고 하려니 물감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막막했다.

 나무는 어떻게 표현하지? 붓을 들고 망설이다가 나뭇가지를 죽 그어 봤다. 배경이지만 분위기를 좌우하는 부분이었다. 허전해 보이고 다음 가지를 어떻게 그을까 고민이다.


 "선생님, 모작을 했으면 붓터치라도 볼 텐데, 사진을 보고 물감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막막해요."


 "원래 허전한 배경에 그리는 게 더 어려워요. 사진을 보면 뒷배경인 산이 어둡잖아요. 적당한 색을 찾아서 부담 가지지 말고 배경색을 깔아 놓으면 훨씬 덜 막막할 거예요."


 막힐 때는 길잡이가 되어주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


 하늘색을 다 칠했는데 마음에 안 들어 다시 덮기도 했다. 쌓인 눈을 좀 더 볼륨 있게 표현하고 싶다. 물감을 찍어 그럴듯하게 표현해 본다. 사진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내가 직접 봤던 장면을 끄집어 내 표현해보려 애쓰면서 붓 한 번 갈 때마다 변하는 그림에 설렜다. 하지만 시동 걸고 좀 그릴만하다 싶을 때 시간을 보고 붓을 내려놓는다.


 일주일에 한두 시간 아뜰리에에서 그리는 시간은 항상 아쉬웠다. 하루 만에 완성할 수 없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붓을 놔야 했다. 일주일을 기다려야 미완성된 내 그림을 다시 만난다.

 어느 날은 그림 그리러 가는 날인데 남편이 야근이라 아이 봐줄 사람이 없어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아이와 간 날이 있었다. 아이에게 엄마가 그림 그리러 가는 곳에 같이 갈 거라고 했더니 잔뜩 기대했다. 아뜰리에 앞에 도착했을 때 유리창으로 보이는 내부가 마음에 드는 듯 보였다.


 “엄마, 이거 엄마랑 나 그린 거지요?”

 아이는 그림을 금방 알아봤다.


 미리 뽀로로 그림과 색연필을 준비해 놓으셨는데, 아이는 뽀로로 싫다며 뒤집어서 토끼를 그렸다. 아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걸 명확히 안다. 선생님이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조잘대며 그림을 그리고 어린이집에서 만들어 온 작품도 자랑했다. 감사하게도 내가 그림에 신경 쓸 수 있게 아이와 그림 이야기를 하면서 응대(?)를 해주셨다. 재밌었냐고 물으니 너무 재밌어서 심심할 틈이 없었단다. 다음 주에 또 가겠다고 한다.(안 돼)


 그림은 내게 가장 사치 부리는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을 지키고 싶어 아이까지 데리고 가서 어쩌다 아이랑 그림을 공유한 추억이 되었다.





그림의 작은 얼굴에 눈, 코, 입 어떻게 그려 넣을까 고심한 흔적.


 그림을 완성하는데 꽤 오래 걸렸다.


완성 마지막에 눈, 코, 입을 그려 넣을 때, 자리를 못 뜨고 옆에서 지켜보는 선생님의 참았다 겨우 코로 몰아쉬는 숨소리에

 "선생님 숨소리가~더 긴장돼요~"

 "저도 긴장돼서 흐흐흐"


완성을 알리는 마지막 사인을 했다.



사이즈

캔버스 6F

40.9 × 31.8



이른 첫눈 위에

엄마와 아이의 따뜻한 느낌을 얹고 싶었다.


 "그림에서 어디가 제일 예뻐?"

 아이는 바로 자기를 가리킨다.


 어려운 요소가 많이 없는 그림이지만 나에게 쉽지 않은 작품이었고 내 추억을 옮겨 담아 애정을 듬뿍 쏟았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이 제대로 표현될 때 상당한 기쁨을 느낀다.

 뿌듯했다.


 그림을 취미로 하기로 했다면 재미를 불어넣어줄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그려 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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