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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디151과 파우스트

#소주는#솔직히#맛이없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많이 마신 술의 종류는 소주임이 틀림없다. 연구생 시절, 그러니까 나이로 말하자면 고등학생이던 때부터 바둑도장의 형들과 처음 마시기 시작했던 술도 소주였고 얼마 전 회식 때 부장님들과 마신 술 역시 소주였으니 한국인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어렵지 않을까.


아주 가끔, 소주가 달게 느껴지는 날도 있는데 그런 날은 일년에 손 꼽는 정도이니 논외로 하고, 대체로 소주는 맛이 없다. 소주 애호가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다소 미안한 기분이지만, 어쨌든 내 경우엔 소주를 적어도 맛으로 먹지는 않고 있달까.


와인이니 위스키니 하는 것들은 어쩐지 먼 나라 이야기 같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왠지 그런 건 티비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좋은 날 멋지게 각 잡고 한껏 분위기 띄우고 싶을 때나 마실 법한 부르주아틱한 것으로 여겼던 것 같다.


어느날 그 친구에게 이끌려 Bar라는 곳에 처음 갔다. 그곳은 신세계였다. 입문용 칵테일 비스무리한 걸 마시다가 '샷'으로 옮겨갔고, 그러다 드디어 녀석을 만났다.


바카디 151. 이름부터 뭔가 다른 이 술은 도수가 무려 75.5도다. 151을 반으로 나눈 값이라나.

첫 만남은 짜릿했다. 이것을 원샷 했을 때의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부터 바카디 151의 광팬이 됐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다른 곳에선 이 술을 팔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처음 갔던 그 Bar의 단골이 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바카디151이 수입 금지 품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다 우연히 들른 집 근처 주류백화점에서 그 녀석을 다시 봤을 때의 그 기쁨이란! 그때부턴 집에 바카디151을 쟁여놓고 홀짝홀짝 마셨다.


슬슬 단골 Bar가 늘어나던 때, 바카디151을 몇 병 사서 자주가는 곳들에 기증(혹은 킵)을 했다. 그즈음은 칵테일의 세계에도 새롭게 눈을 뜨고 있었는데, 바카디151이 베이스가 되는 술이 몇 종류 있지만 그걸 구하지 못해 대부분 다른 151로 대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무렵이었다.


바카디151을 샷으로 마시는 무지막지한 방법은, 사실 주(酒)린이들에겐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다(실은 트레바리 압구정 아지트의 Bar, B1에도 필자가 기증한 바카디151이 있는데, 뒤풀이 때 드셔본 분들이 "이건 그냥 화학(?) 알콜 아니냐"며 놀라셨던 기억이...).

하지만 칵테일이라면 얘기가 살짝 다른데, 개중 이름부터 뭔가 문학스러운 '파우스트'가 내 최애 칵테일이다.


파우스트. 영혼을 팔고 얻는 쾌락을 연상케 하는 이 칵테일은 붉은 색이다. 대개 동그랗고 커다란 얼음 한 개가 잔에 꽉 찬 채로 새빨간 빛깔과 함께 등장한다. 이 얼음은 장화왕후가 미래의 남편, 고려태조 왕건에게 띄워줬다는 버드나뭇잎 같은 역할을 한다. 컵을 기울이는 순간 왕방울만한 얼음이 먼저 입술에 닿기 때문에, 자연히 여러번에 걸쳐 천천히 마시게 된다.


통상 '불쇼'라 불리는, 슈팅칵테일을 제조할 때 맨 위에 불을 붙이기 위한 용도로 살짝 얹는 바카디151을 베이스로 제조한만큼 물론 도수는 꽤 높다. 하지만 의외로 맛은 꽤 괜찮다(믿거나 말거나).


바카디151과 파우스트 얘기만 했는데도 벌써 1100자에 이르렀다. 칵테일의 세계는 아직 무궁무진한데, 작년엔 제주도에 여름 휴가를 갔다 우연히 들른 '칵테일 클래스' 강의에 매료돼 집에 칵테일 도구들을 사들여 홈Bar 비슷한 것을 만들기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김연수 같은 달리기를 좋아하는 작가들은 물론, 글 쓰는 사람치고 술을 입에도 못 댄다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씀 클럽을 선택하신 분들 중에도 필시 술을 좋아하는 분들이 꽤 있지 않을까.


최근엔 건강(이라 쓰고 다이어트라고 읽는)상의 이유로 다시 금주 내지는 절주를 해보려 하는데, 글쎄 과연 잘될지.


P.S. 이맘때쯤이면 연트럴파크에서 돗자리를 깔고 앉아 마시는 와인 한 잔도 기가막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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