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을 해야 할까요?

선택의 순간들

by 영지

"가족들과 항암 여부를 의논해 보시고 2주 뒤에 뵙겠습니다"


병원에서 몇 개월 남았다는 말을 듣고 난 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유튜브도 검색하고 다양한 책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마지막을 고통 속에서 보내게 하고 싶지 않아"였다.

고령의 중증도 치료 목적이 아닌 항암은 마지막 생을 힘들게 보낼 수 있는 확률이 높았다.

이러저러한 생각으로 가족들은 항암에 부정적이었다.


그리고 2주 뒤 병원에 모인 가족들은 항암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책이나 유튜브나 각종 매체에서 본 모든 지식들은 무용하였다. 다른 사람의 일이었다면 아마 책에서 쓰인 대로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가족의 일, 나의 일이 되어버리니 세상의 지식, 이성적 사고, 기타 여러 가지가 다르게 작동하고 있었다.


"그래, 조금 더 우리 곁에 계실 수 있다면...."


결국 저강도 항암을 시작하였다. 주사를 지긋지긋하게 싫어하시고 공포에 가까울 정도로 느끼는 아빠가 5일간의 항암 주사로 1차 항암을 끝내셨다. 잘 지나가나 보다 생각할 때 열이 나고 입안이 붓기 시작했다. 그리고 응급실로 가게 되었다.


나는 순간순간을 후회했다. 항암을 시작하고 각종 부작용으로 힘들어하시는 아빠를 보고 후회했고, 항암을 하기 전에는 빨리 항암을 시작하지 않았음을 후회했다.

후회의 순간들은 내 마음을 고통스럽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참 나약한 인간이었다.


과거에 내가 하던 많은 고민의 순간들이 부러워졌다. 그 고민을 했다는 건 그것들 외에 내가 편안한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지금은 응급실에 누워계신 아빠를 보니 그동안의 고민들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이었는지...


내 나이 반백살동안 나는 참 어리석고 겸손하지 못하며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배려심 없이 살았구나 하고 반성하게 되었다.


누군가 암에 걸리고 항암을 하고 어느덧 일상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구나" 이렇게 가벼이 생각했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 과정 중에 겼었을 충격, 놀람, 절망, 고통 그리고 안심, 두려움, 불안 등등의 수많은 감정들을 알지 못했다. 얼마나 힘든 과정을 지낸 후 비로소 일상생활을 찾게 되었을지 나는 하나도 알지 못했다.

세상에 살면서 사람이 얼마나 겸손하게 살아야 하는지 이 나이 돼서야 조금은 알게 되었다.


항암 후 첫 응급실행이라 가족들 모두 허둥대고 우왕좌왕했다. 가족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아빠를 걱정하고 있었고 누구랄 것도 없이 병간호를 자처하고 나선 것으로 잠시의 행복을 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항암 중 반복될 수 있으며 우리는 이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점점 알아가고 있었다.


얼마 전의 일상이 그리워진다.

아프신 후에도 일상생활을 하시면서 주말에 아이들을 보러 자식집에 방문하셨다. 같이 점심 먹고 TV 보고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면서 웃고 떠들고 하던 평범한 나날들..


지금 응급실에 아빠랑 이야기하고 식사 챙겨드리고 잔소리하면서 한평 남짓 공간에서 있는 시간도 그리워질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도 아빠를 웃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지금의 목표이며 이를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 겸손하고 공감하는 사람이 되도록 정말 많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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