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지볶음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

by 영지

"오늘 메뉴는 뭐로 할까요?" 언제나 "낙지볶음, 나는 그거 하나면 돼" 아빠는 매번 똑같이 대답하셨다. 이렇게 부모님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낙지볶음은 언제나 빠지지 않는 메뉴였다.

이번엔 다른 종류로 하면 좋으련만 아빠의 낙지볶음 사랑은 변함이 없으셨다.


"그럼 다른 가족을 위해서 메뉴를 두 가지나 준비해야 하잖아요. " 나는 이렇게 볼멘소리를 하곤 했다.

매번 우리 식사메뉴로 등장하던 낙지볶음을 안 먹은 지 좀 되는 것 같다.


급성 백혈병으로 저강도 항암을 하고 계신 아빠의 음식은 굉장히 제한적이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들은 더욱더 보수적으로 식단을 관리하고 있었다. 갯벌의 낙지와 매콤한 양념은 더 이상 식탁에 오를 수 없는 재료가 되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급성 백혈병이전에 앓던 치매증상의 진행인지 신체적으로 무기력해져서 인지 아빠는 더 이상 낙지볶음을 주문하지 않게 되셨다.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는 노쇠하고 병든 노인의 모습이 되셨다.


건강하실 때 몇십 킬로의 카메라 가방을 들고 어디든 다니셨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한 성격이라 이를 표현하는 것도 거침이 없으셨다.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고 큰 안목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마음을 쓰셨다. 우리는 그 울타리 안에서 천년만년 기대면서 살 줄 만 알았다.


혼자서 모든 일을 거침없이 행하시던 아빠의 모습은 이제 없어졌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생을 그저 무기력하고 초점 잃은 모습으로 간간히 웃던 웃음마저 점점 사라지고 있다.

50대의 딸이 추는 게다리춤 앞에서도 아빠는 아주 미세하게 입술을 움직일 뿐 예전의 감정표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인생이 참 허탈하고 허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는 더 이상 낙지볶음을 주문하지 않으신다.

얼마 전 메뉴타박하던 그 일상이 이제는 아련하다. 좋았던 시절은 이제 추억 속으로만 아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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