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 내가 1인 출판사를 차린 이유

출판하는 방법

by 영지

자아실현을 위해서 꼭 써내고 싶은 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글이 될 것인지는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인생을 들여 경험과 연륜을 쌓아야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집필에는 진척이 없고 가슴에 답답함이 쌓여가던 어느 날, 충동적으로 출판사 등록을 했습니다.


그 후 3년을 무실적 출판사로 지냈습니다. 글을 쓰고 싶은 것인지 책을 만들고 싶은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하던 시간이었죠. 등록된 출판사의 95% 정도가 단 한 권의 책도 내지 못하고 폐업을 한다고 하는데, 그분들도 저와 같은 마음으로 고민을 하시던 걸까 싶네요.


그 무렵, 독서 모임의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찬양하는 유명 소설가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습니다. 같은 편이 유명해진 것 같은 느낌에 신이 나서 주변에 알렸는데, 그들은 그가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하더군요. 책을 사고 완독에 실패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독서 자체를 포기하게 되었다는 사람들도 점점 더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두려워졌습니다. 이렇게 문학이 서서히 죽어가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요.




마음의 소리를 일종의 계시라 믿고 따르는 편입니다. 결과물의 형태가 머릿속에서 명확하게 그려져야 일을 시작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선명하게 떠오른 계시가 언제나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뿌연 안개 속을 헤치고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정확하게 그려지는 도착지를 향해 달려가야 포기하지 않고 완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느 날, 마음이 말을 했습니다. 바쁜 현대인들이 단숨에 읽고 완독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얇은 단편소설 시리즈를 기획하자. 문학적 탐구심이 충족될 수 있도록 원서와 번역본을 함께 담고, 더욱 깊이 이해하고 반추해볼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와 다각도의 해설을 덧붙이자. 결말과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어 분석과 해석의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자. 내로라 출판사의 첫 출판 프로젝트인 ‘월간내로라’는 이러한 일종의 사명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인 출판사가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단순노동을 포함합니다. 때문에 오히려 글을 쓸 시간과 집중력이 사라지게 되기도 하지요. 저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저만의 방식으로 엮은 ‘책’을 내야만 했기에 출판인이 되었습니다.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내보이고 싶은 것이 ‘글’인가요,
자신만의 방식으로 엮은 ‘책’인가요.


출판은 사양 산업이라고, 요즘 출판사가 얼마나 많은지 아냐고,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더 이상 정보를 얻기 위해 책을 사지 않으며, 독서를 취미로 가진 사람들도 점점 줄어드는 추세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책을 만드는 사람은 더 많아져야 하는 게 아닌가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책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애독가의 숫자를 늘려가기 위해서는 책을 만드는 더욱 다양한 시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1인 출판인의 삶이란 고상함은 찾아볼 수 없는 고된 작업의 연속이긴 합니다. 하지만 커다란 목적과 방향성을 가지고 임한다면, 매 순간 영혼이 고양되는 행복감을 느끼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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