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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Sep 07. 2019

내 것이 아니요-.

포기가 아닙니다, 나에게 솔직한,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입니다.

내 것이 아니요.
무엇인가 잘 안 풀릴 때 외우는 마법의 주문이 있다.
"내 것이 아니요, 내 것이 아니요, 내 것이 아니요."
이 주문을 세 번 외우고 나면, 일을 놓지 못한 나의 작은 집념이 사라지고, 오로지 내가 '정말 원하는 것'만 남는다. 그리고 이렇게 주문을 세 번 외운 오늘도, 나는 내일 나에게 올 새로운 기회를 기다린다.



나의 프랑스 이야기

21살부터 24살까지 3년 안 되는 기간 동안, 프랑스에서 지냈다.  게다가 그중 2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은 프랑스의 꽤 큰 기업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처음 계약직 오퍼를 받은 나이가 22살이니, 그 얘기를 하면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경력을 내 이력서에 넣지도 않을뿐더러, 누가 다시 물어보면 '그냥 힘든 시기였어요'라고 대답한다.
그때 당시에는 파리의 비자가, 차별적인 대우가, 더러운 거리가 나를 힘들게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내 것이 아닌 것에 욕심을 냈기 때문에 힘들었던 것 같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난 참 건방진 21살이었다.


처음 일을 시작했던 21살의 나는 무서운 것이 없었다.  지원하니 덜컥 붙었고, 일은 즐거웠다.  노력만 하면 모든 지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시간은 금방 갔고, 인턴이 끝나는 시점이 다가왔다. 그때, 욕심이 났던 것 같다. '이 회사에 더 있고 싶다.'는 욕심이. 그리고 노력하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오만한 자신감에 무리수를 던지게 되었다.  


그때 당시 내가 다닌 회사는 졸업하지 않은 학생은 채용할 수 없다는 매우 엄격한 규정이 있었다. 보통 프랑스의 학생들은 졸업하고 다시 지원하면 된다고 마음을 먹지만, 당시 본 학적은 한국에 있었던 나로서는 두 번 다시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사업자 등록 후 회사와의 프리랜서 계약직 체결이었다.  다짜고짜 불어도 못하는 주제에 어찌어찌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사업자 등록을 하고, 팀장님과 상의를 했다.

'나는 프랑스에 더 있고 싶노라. 이 회사에 더 있고 싶다. 회사 규정상 나를 고용하지 못하는 것은 안다. 하지만 나와 프리랜서 계약은 할 수 있지 않느냐.'라고 말이다.


그때 팀장님의 표정이 아직도 잊어지지 않는다. 딱 '요놈 봐라.' 하는 표정.  그리고 팀장님은 흔쾌히 오케이 하셨고, 몇 번의 복잡한 행정 절차가 이어졌지만 어찌 됐건 새 비자와 새 계약서가 나왔다.


하지만 그때부터 많은 것들이 힘들어졌다.

외국인 인턴에게 기대하는 성과와 억대의 연봉을 주고 계약하는 프리랜서에게 요구하는 성과는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내가 계약직으로 있던 해가 하필이면 프랑스에서 3년에 한 번씩 여는 모터쇼가 있던 해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3년에 한 번씩 하는 모터쇼에 내 디자인을 출품하고 싶은 욕심이 나를 잠식했다.

결국 엎어졌지만, 기회를 놓친 것 같은 아쉬움이 더 큰 스트레스로 남았던 것 같다.    




낑낑 대며 끌고 가고 있을 때, "왜"라는 질문을 받은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때 당시에는 내가 그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간 것도, 그리고 후에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한 것도 나의 의지와 능력이 만들어낸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 의지와 노력이면 불가능한 일들도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나는 내 것이 아니었던 것에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고, 억지로 끌고 갔으며, 그것이 결국 괴롭게 돌아왔었다.

어쩌면 인턴만 순리대로 딱 마치고, 남은 프랑스 생활을 여행과 함께 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몇 해 더 지나 나이를 아주 조금 더 먹고서야 들었다.




내 것이 아니었던 것에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고, 그렇게 억지로 끌고 간 것이 괴롭게 돌아왔다





억지로 끌고 가는 것과 최선을 다하는 것의 차이,
집착하는 것과 포기하지 않는 것의 차이

나는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에 안 읽어본 자기 계발서가 없다고 할 만큼, "꿈 덕후"였다.  요즘의 자기 계발서 코너의 책들의 대부분이 '애쓰지 마, 힘을 빼라'라고 스스로 강박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준다면, 그 당시의 자기 계발서들은 "꿈꾸고 노력하면 다 이룰 수 있어"라고 이야기했다.  특히 김수영 작가의 <멈추지 마, 꿈부터 다시 꿔봐>라는 책은 내가 다섯 번이나 정독하고도, 너무나 인상 깊어 주변 친구들에게 선물까지 했더랬다. 그때 내 나이가 17,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아무튼 간에,  나는 아주 운 좋게도 중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하여 스무 살 초반까지 꿈꾸면 다 이루었고, 노력하면 다 얻어냈다. 설령 그것이 원하던 학교 입학이나, 프랑스의 교환학생으로 선택 등 지금 보면 운이 70은 작용하는 일들 이어도 어찌 됐건 얻어냈다.  그러기에 더더욱 프랑스에서의 생활도 같을 줄 알았다. 하지만 분명 원하던 것을 이뤄냈는 데도 불구하고 내 마지막 일 년은 너무나 행복하지 않았다.  자기 계발서에서 얘기하는, '힘들어도 참고 견디면' 오는 보상이라고 하기에는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너무 적었다. 분명 친구들도 부러워하고, 가족들도 대견해했지만, 정작 나는 행복한가 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 들었다.




생각보다 우리가 소망하는 많은 것들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원하는 것일 때가 많다.



아마 그때 처음으로,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인지 - 사회적으로 그럴싸해 보이길래 원하는 건지.

내가 원하는 것인지, 가족들이 원하는 것인지.

내가 원하는 것인지, 친구들이 부러워할 만한 것인지

를 고민했던 것 같다.

그리고 프랑스 생활을 접고 돌아오기로 결심한 즈음에나, 내가 그토록 애써서 유지하고 있던 프랑스 생활이, '나'라는 사람이 진정 원하는 일이 아닌 '나를 그럴싸해 보이게' 하는 일임을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달달달 읽었던 자기 계발서에서 얘기하는 ''이라는 것이,  
내 안에서 나와 끊임없이 도전한다면,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나로 비롯되지 않고 타인에서 비롯되면 '집착'이 된다.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 있고자 했던 동기가 나로부터 시작했다면 나는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으니, 결국 나는 억지로 끌고 간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과 '나는 집착하고 있다'는 말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물론, 내가 억지로나마 프랑스 생활을 유지하면서 얻은 것도 많다.  결코 그 시간을 헛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찌 됐건 이루어내고 그 시간을 보낸 내가 대견하기도 하다. 하지만 만약 내가 스물한 살의 나를 마주칠 수 있다면, 책상에 앉은 그녀를 끌고 나와 손을 꼭 잡고 여유로운 파리의 밤거리를 산책할 것이다.  





놓쳐도 되는 기회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데, 기회가 왔던 거잖아'라고 얘기한다. 그건 맞다. 나도 내가 내 발로 찾아서 그런 모든 상황들이 온 것은 아니었다. 마침, 기회가 왔다.

기회는 아무 때나 오지 않는다. 특히 '프랑스어도 못하는 외국인 학생에게 해외에서 일해보는 경험' 같은 기회는 더더욱 오지 않는다. 기회가 오면 잡을 수 있음 잡는 것이 좋다. 내가 비록 파리 생활 마지막 1년이 너무나 괴로웠지만, 후회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이다. 흔치 않은 기회는 아무 때나 오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아무 기회나 덜컥 잡지 않기로 결심했다. 우선 내가 '정말 놓쳐서는 안 될 기회에 집착하는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다시 생각해보면, 생각보다 많은 기회들이 놓쳐버려도 되는 것들이다.

혹자는 기회는 쉽게 오지 않으니, 왔을 때 잡는 것도 능력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누군가가 '이것이 기회요, '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그것이 기회라는 것을 알아보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 로또 1등 당첨자가 저 대신 수령하실래요? 이런 기회 빼고.



과연 내가 정말 놓쳐서는 안 될 기회에 집착하는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다시 생각해보면, 생각보다 많은 기회들이 놓쳐버려도 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누군가가 '이것이 기회요, '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그것이 기회라는 것을 알아보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일 뿐, 기회는 생각보다 도처에 널려있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내가 정말 '무리해야만' 얻을 수 있는 기회들은 과감하게 '내 것이 아니요'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당장은 아쉬울 수 있어도, 하룻밤만 자고 나면 그 기회를 억지로 끌고 갔을 때 내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선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당장 그다음 날은 아니더라도 몇 달, 몇 년이 흐르면 비슷한 류의 기회가 또 들어온다. 게다가 이 때는 내가 크게 무리하지 않아도 될 수준에서 들어온다.  그래서 이제는 과감하게 몇몇 제안들을 거절하기도 하고, 설령 얻게 된 기회의 결과에 하나하나 마음 쓰지 않는다. 




내 것이 아니요.

이런 기회에 관한 생각은 비단 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지난주에 상가 임대 건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글에서 몇 번 언급했지만, 나는 내 가게를 준비하고 있는데 온라인부터 시작하려 했지 오프라인부터 당장 시작할 계획은 없었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한 상가 임대건을 보았는데 3-4-5층을 통 임대하는데 위치가 내  생활에 8할을 하는 곳에서 도보거리인 데다, 3층은 사무실로 쓸 수 있고 4층에는 엄청 커다란 방이 세 개나 있었다. 그리고 5층에는 옥탑방을 개조한 것이기는 하지만 내 방으로 쓸 수 있을 만큼 쾌적한 환경이었다.


순간 머릿속에 계산기가 빠르게 돌아갔다. 3층에는 전부터 준비하던 가게를, 4층에는 게스트하우스를, 5층에는 내가 살면 되겠다고 말이다. 월세가 결코 저렴하진 않았지만, 게스트하우스를 돌릴 수 있고 내가 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게 월세는 거의 공짜에 다름없었다.  

사실 지난주에 계약할 줄 알고, 이런 그림까지 그려놨었다. 흑흑흑


그래서 당장 계약을 하겠다고 하고, 건물주와 협의에 들어갔다.  나의 포부(?)와 함께 직접 새벽부터 구청에 찾아가 사업승인을 찾아본 나의 의지(?)를 기특하게 여기신 건물주 할아버님은 내가 요구하는 몇 가지 조건 - 공사 기간에 월세 제외 / 사업지 용도 변경 - 등을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원래 가게를 온라인부터 하려 했으니, 원래 계획과는 조금 달라졌지만 이렇게 건물주님과 죽이 잘 맞으니 '이것은 내 것이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계약 직전에 와서, 건물주 아드님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어린놈이 여기서 사업을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거니와, 건물주 할아버지가 너무 내 조건을 다 들어주신 것 같다'는 거다.


그래서 갑자기 계약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거의 몇 날 며칠을 그 아드님과 협상의 과정을 들어갔다.  이 집을 얻어야겠다는 마음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글과 이력서, 심지어 사업계획서까지 보냈다.  이렇게 계속 양보해오다가 문득, 더 이상 이 건물이 나에게 좋은 자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계약 전에도 이렇게 계속 요구를 하는데, 혹여 계약을 진행하게 되면 더 많은 요구들이 들어올 것 같았다.

그러던 찰나에 마음 한편을 강하게 찌르는 촉이 있었다.-  "이 것은 내 것이 아니다."라고 말이다.


그래서 바로 건물주에게 계약을 없던 것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통보를 했다. 그날 밤에는 너무나 아쉬워 잠도 안 왔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는 그런 마음이 싹 가실 만큼 개운했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바로 아침에 집중해서 했는데, 만약 여기서 이 기회를 덜컥 잡았으면 생각이 분산되어 여기에도 집중 못하고 저기에도 집중 못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그래. 내 것이 아니니까."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있을 즘, 건물주 할아버지님의 연락이 왔다. 내가 공사기간을 빼 달라했던 이유가 10월 중순까지 출장 일정 때문에 그리했던 것인데, 혹 내가 출장을 다녀와서도 공실일 경우 연락을 해도 괜찮냐고 말이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부탁드린다고 하고, 내 마음도 정리했다. 10월 중순에 돌아와도 공실이라면, 그때는 내 것이라고 말이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

'내 것이 아니다'라고 떠나보낼 때에 또 다른 장점이 있다.

앞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원하는 것'이라던가 '부모님이나 배우자가 원하는 것'이라면 집착이 되고,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이 된다고 이야기했다.  

'내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마치 주문과 같아서, 입 밖으로 내자마자 내가 이것을 진짜 원했는지 검증하는 필터가 발동한다.


그리고 아주 쉽게, 아 이것은 사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부모님이 원하시는 것이구나라던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좋다고 하는 것들이구나 하고 결론을 짓게 된다.  

물론 당연히- 이렇게 결론 내린 것들은 그저 떠나보내면 된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원했던 것이라면, 비슷한 또 다른 기회가 오기를 다시 기다리면 된다. 단, 준비를 하면서 말이다.


얼마 전의 그 상가 임대건이 나에게는 '정말 원했던' 그런 기회 었다. '내 것이 아니요'라고 생각을 하고 나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를 내가 참 원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아쉬운 이유가 임대료가 싸서 그런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곱씹어보니, 아래층에서 가게를 , 그 위층에서는 게스트하우스를, 그리고 그 위층에서는 내가 사는 그런 삶을 내가 퍽이나 멋있다고 여긴 것 같다.  아침에는 가끔 아침밥도 만들어주고, 오전 느지막이 게스트들이 다 나가면 아래층으로 내려와 가게를 보면서 작업하는 그런 삶. 내가 정말로 이런 생활을 원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비록 이번 건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흘려보냈지만, 최소한 내가 앞으로 준비해야 할 방향이 확실해졌다. 1층에는 내 가게를, 윗 층에는 게스트하우스를, 그리고 그 위층에는 내가 사는 집을 준비하겠노라 라고.



 



솔직하게 내려놓는 용기

기회를 떠나보내는 것은 의지가 없는 자세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원하는 삶을 분명히 알고 그 삶을 지키기 위한 용기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고민들은 '내 것이 아닌 것'을 탐냈을 때 생긴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열심히 잡으려는 자세도 필요하다.


무언가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원하는 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속으로 되뇌어 보자.

"내 것이 아니다. 내 것이 아니다. 내 것이 아니다"

그랬을 때 마음의 안정이 찾아온다면 쉬이 떠내 보내고, 혹 그럼에도 내 안에서 타오르는 의지가 있다면 조금 준비된 자세로 새로운 기회를 기다리면 된다.

10월에 한국에 돌아오면, 그 상가 자리가 과연 계속 남아 있을까?

왜인지, 그곳이 아니더라도 내가 원하는 자리가 조만간 꼭 나올 것만 같은 좋은 기분이 든다.

'내 것이 아니요'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힘이 있으니까.




-fin-

6화 : 내 것이 아니요-.

마침




<어려서 그렇습니다>에 대해..


"네가 어려서 그래~" 어떤 질문에 대해 열에 여덟 꼴로 돌아오는 답변이었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어리지만, 좀 더 어렸을 때는 그 말이 그렇게 듣기 싫었는데 - 이제는 '뉘예 뉘예 제가 어려서 그렇습니다' 라며 당당하게 제 이야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어려서 그렇습니다>는 당당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26살 늦깎이 사춘기 영지의 자전적 에세이로, 매주 일요일에 연재하는 것을 '일단'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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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로는 제가 글을 쓴 뒷 이야기와 구독자분께 쓰는 편지를 같이 보내드려요 소곤소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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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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