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영진 Nov 03. 2019

39. 나는 상투성이 불편하다

치앙마이 12_밑도 끝도 없이 치솟는 짜증이라니

도이수텝, 치앙마이, 태국




문제의식은 저항심을 발동시킨다


창작의 즐거움이 내 글 쓰기를 계속 나아가게 하고 있었다. 사진 작업에 할애하는 시간을 대폭 줄여야 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감각이 굳은 상태여서 결과는 엉성했지만 오랫동안 정체된 채로 흘러온 상황을 고려하자면 흐뭇한 반전이었다. 쓰면 쓸수록 글이 매끄러워질 테니 오늘은 이만하면 됐지 생각하며 계속 손가락을 놀렸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내 앞에 펼쳐진 새날이 반갑게 느껴졌다. 다음이 기대되는 날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던 중 언젠가부터 상투적인 발상이나 행위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물론 전에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일례로 신파조의 영화를 몹시 따분해하는 편이었다. 너무 뻔한 복선이 깔린 영화도 재미없었다. 때문에 최근 몇 년 간 헐리우드 영화는 거의 보지도 않았다. 초특급 화제작이나 이례적인 완성도로 호평받은 작품 정도만 가끔 챙겨 봤을 뿐이다. 대신 미학적 시도나 감독의 고유한 시선이 담겨 있는 유럽 영화나 제3세계의 작품들을 감상했다. 시대정신을 자극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도 종종 찾아서 봤다. 


다음 국면을 뻔히 예측할 수 있는 일차원적인 유머나 말장난도 따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분위기상 혹은 인간관계상 아무렇지 않은 척 호응을 할 때도 많았지만 속으로는 매번 하품을 했다. 맥락이 잘려나간 아포리즘도 별로였다. 획일화된 비유도 그저 그랬다. 아이를 천사로, 술을 보약으로, 똘끼를 예술가의 필수 자질로 연결 짓는 행위를 보면 인상이 찌푸려졌다. 겉보기에는 그럴듯했지만 실상은 아동을 하위의 존재로 내려다보며 소유물처럼 대하는 시선, 자신의 음주 중독 상태에 대한 미화, 예술을 핑계로 한 탈선 욕구의 다른 얼굴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자신만의 성찰 없이 기계적으로 남발하는 모양새도 심기를 건드려 왔다.  


비판의 시선은 나 자신에게도 향했다. 내 안에도 따분한 사고나 인식이 남아 있었다. 상투적인 행동을 원치 않음에도 나도 모르게 낡은 태도나 싸구려 농담이 튀어나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다음부터는 절대 이런 말이나 행동을 하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상투성이 내 안에 존재했기에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진부한 행위가 불쑥불쑥 다시 튀어나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반성을 거듭하며 태도를 수정해 나갔으나 이후에도 실수의 향연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 채로 치앙마이에 왔다.


평소에도 상투적인 것들에 대한 거부감이 컸는데 치앙마이에서 갑자기 들고일어난 거부감은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했다. 뻔한 것들이 아주 그냥 몽땅 다 싫었다. 케케묵은 발상들, 일차원적인 유머들, 상습적인 편견들을 맞닥뜨리면 구토라도 하고 싶어 졌다. 가장 거부감이 컸던 것은 만사를 돈으로 결론짓는 농담이나 권위주의를 기본값으로 깐 언행, 모든 말끝을 성행위나 그와 유사한 소재로 귀결 짓는 화법이었다. 


권위주의는 평소에도 몸서리치게 싫어했다.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최악의 인습이 권위주의라고 생각해 왔다. 가족, 선배, 사회에서 만나는 연장자까지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권위주의를 행사하는 이들이 몽땅 다 적폐로 느껴졌다. 그 자체로도 문제가 많으면서 평생에 걸쳐 나를 억압해 온 요소이기도해서 개인적인 저항감이 엄청나게 컸다. 후배들에게 장난처럼 권위주의를 행사했던 무개념 시절의 과거도 있었기에 내 안에서 권위주의가 불쑥 튀어나올 때마다 적극적으로 반성하며 교정을 시도하곤 했다. 그렇지만 타인은 내 맘대로 할 수가 없는지라 일상에서 손을 쓸 수 없는 순간도 많았다. 권위주의를 바탕에 깐 농담 한 마디에도 짜증이 치밀 정도였는데 나를 겨냥하지 않았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상황상 그냥 넘어가야 할 때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치앙마이에서 치솟는 짜증은 한국보다도 훨씬 거셌다. 


성행위나 그와 유사한 소재로 귀결되는 대화도 진저리가 났다. 성평등의 문제에 대해 사회적인 자각이 물결치는 시점이지만 그 와중에도 여성을 성노리개로 삼는 발언은 어디에서든 들려왔다. 아직도 많은 남성들이 여성을 액세서리처럼 취급하고 있었다. 내 주변에서는 중장년들이 특히 상습적이었다. 남성뿐만이 아니었다.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자존감이 있는 여성이라면 온당치 못한 언행 앞에서 분노를 터뜨려야 할 텐데 오히려 그 반대로 행동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남성이 뱉은 성희롱에 맞불은 놓지 못할 망정 스스로 나서서 맞장구를 치는 여성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역시 그중 다수는 중장년이었다. 청년층도 없지는 않았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남성의 방식을 그대로 차용해 역습을 가하는 여성들의 모습도 달갑지 않았다. 심정적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갔지만 그동안 쌓인 증오를 남성들에게 되돌려 주는 행위를 두고 합리성으로 포장하는 태도에는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평시에는 문제의식을 드러내다가 이해관계가 맞물리는 지점에서 평소의 입장을 숨기거나 철회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중잣대는 성평등의 문제에서도 널리 통용되고 있었다. 그런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속이 답답했다.  


외국에 있으니 그런 장면을 마주칠 일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사람과의 접촉이 다른 때보다 적다 보니 상대적으로 회수가 줄어들었을 뿐 현지에서도 그런 현상을 자주 마주쳤다. 때로는 현지인이, 때로는 외국인이, 때로는 한국 여행객 무리가 그런 행동을 반복했다. 뻔한 농담부터 성희롱에 이르기까지 상투적인 모든 것들이 급격히 싫어지는 나날들. 외부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마주치는 것도 싫은데 내 안에서 행위가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이 새끼가 미쳤나 하고 생각하곤 했다. 그만큼 거부감이 심했다. 


내가 너무 유난스러운가 싶어 스스로를 되돌아보기도 했다. 화를 내봐야 기분만 나빠지니 그냥 참고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거부감이 어찌나 심하게 널을 뛰는지 도무지 나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후에 깨달은 바, 상투성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은 그러한 습성과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의 외적 분출이었다. 혁신의 의지가 치솟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는 그런 줄 몰랐다. 


돌아보면 고무적인 현상이었다. 당시에는 단순히 짜증이 심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상상력을 저해하는 요소들, 내 세계의 온당한 질서를 파괴하려는 악습들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내 안에서 자기 회복 현상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당시의 나로서는 의아할 뿐이었지만 낡은 감각을 갱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겪어야 하는 현상이었다.




# 저항심이 지목하는 궁극적인 대상

문제의식은 혁신을 촉발하는 힘이다. 문제의식이 감정의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 저항심으로, 타당한 문제의식을 배후에 둔 저항심은 건강한 감정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부조리한 상황을 두고도 저항심이 발동하지 않는다면 내면의 상태를 돌아봐야 할 일이다. 불건강성의 징후이기 때문이다. 주의할 점은 저항심이 발동하는 과정에서 투사 현상이 흔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외부에서 벌어진 현상에 대해 철저히 중립적인 혹은 철저히 객관적인 관점에서 문제점을 발견해 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은 내 안에 있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요소가 자극된 결과로서 문제의식이 발동한다. 그럼에도 내 안의 문제점은 살피지 않고, 외부의 대상을 향해 감정을 쏟아붓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보다 외부의 대상을 헐뜯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말주변이나 처세가 좋다면 주변으로부터 지성적인 이미지도 확보할 수 있기에 습관적으로 그러한 행위를 되풀이하기도 한다. 내 경우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내가 짜증스러워했던 궁극적인 대상은 외부의 현상들이 아니라 상투성과 부조리가 여전한 나 자신이었다. 내 안의 문제점들을 외부의 대상에 투사하고 있었던 게다. 그런 줄도 모르고 외부에 짜증을 부리길 반복했다. 그러한 사실을 각성한 후부터는 되도록 나 자신부터 돌아보려고 한다. 외부의 현상에 대해 저항심이 인다면 먼저 스스로를 돌아볼 일이다. 혁신되지 않은 자가 바깥세상을 향해 혁신을 외친들 올바른 변화가 이루어질 리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38. 창조적인 삶을 향해 나아갈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