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영진 Nov 05. 2019

40. 여가가 대관절 무엇이기에

치앙마이 13_기분 좋은 휴일 앞에서 나는 왜 어쩔 줄 몰라하는가

도이 수텝, 치앙마이, 태국




질문은 삶을 나아가게 한다


주 5일제 여행의 휴일. 지도를 살피며 스쿠터로 다녀올 만한 곳을 찾아보다가 도이 수텝 사원과 도이푸이 고산족 마을을 목적지로 정했다. 해발 1000m의 산등성이에 자리한 도이 수텝 사원은 치앙마이의 수많은 볼거리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혔다. 황금색으로 번쩍이는 커다란 불탑과 사원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파노라마 뷰를 앞세워 현지인과 여행자 모두에게 최고의 명소로 대접받고 있었다. 치앙마이 대학교 정문에서 도이 수텝 사원까지 이어지는 산악 도로 역시 드라이빙 코스로 인기가 높았다. 도이 수텝 사원에서부터 그만큼을 또 달리면 산속에 자리한 도이푸이 고산족 마을이 숨겨둔 얼굴을 드러냈다.  


시원한 산바람을 가르며 도착한 도이 수텝 사원은 먼젓번의 여행 때에 비해 달라진 게 거의 없었다. 그에 반해 도이 푸이 고산족 마을은 그때보다 더 문명화된 상태였다. 전과 비슷한 풍경을 예상했으나 뜻밖으로 도시의 문물들이 속속 눈에 띄었다. 전통 의복 일색이었던 주민 다수가 도시인이 착용하는 현대 의복을 걸친 채 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건물의 외관에서는 지역색이 묻어나되 취급 메뉴의 구색은 도심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식당과 카페가 세월을 실감케 했다. 그럼에도 오고 가는 길은 예전과 다름없이 좋았다. 한산한 산간 도로를 마음껏 달렸고, 숲 지대가 뿜어내는 신선한 공기도 한껏 누렸다. 찜통더위가 찾아온 도심에 비해 한결 시원한 산악 지역 특유의 기후도 만족스러웠다.  


평소에도 주 5일제 여행의 휴일에는 주변 볼거리를 구경하러 다니곤 했다. 카메라를 들고나가서 사진도 찍었다. 외곽으로 나가기가 여의치 않을 때는 시내의 볼거리를 탐방했다. 구시가를 가득 채운 수많은 사원, 라이브 바가 운집한 핑 강변, 신기한 구경거리가 넘쳐 나는 풍물 시장, 현지인들이 휴양을 위해 찾는 저수지와 호수, 다채로운 활동이 펼쳐지는 현지 곳곳의 문화 예술 공간에 이르기까지 지역 곳곳을 열심히 누볐다. 도이 수텝과 도이 푸이 고산족 마을 탐방도 그러한 활동의 일환이었다. 


주 5일제 여행 휴일의 두 번째 날. 신선한 아침 공기를 들이켜며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켰는데 갑자기 막막한 기분이 밀려들었다. 아무것도 계획되지 않은 새로운 하루가 텅 빈 운동장처럼 느껴졌다. 전날 도이 수텝 사원을 시작으로 여러 곳을 분주히 탐방한 때문인지 딱히 가고 싶은 데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체처럼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어떻게 하루를 보낼지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막막하기만 할 뿐이었다. 휴식을 위해 배정한 하루이니 기분 내키는 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녀도 될 테고, 숙소에서 책을 읽다가 동네를 산책해도 되겠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의문이 계속해서 밀려들었다. 어디에 가서 뭘 할지, 하루 중의 몇 시간을 휴식하면 적당한지, 어떤 방식의 휴식이 제대로 된 휴식인지, 정기적으로 휴식을 취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필요성이 느껴질 때 휴식을 취하는 게 좋을지,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휴식이어야 하는지, 지역 탐방에 할애한 어제의 휴식은 휴식다운 휴식이었는지, 휴식과 노동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인간에게 필요한 휴식은 무엇이며 몇 퍼센트를 휴식에 할애하는 게 적당한지 등의 질문이 계속 몰려왔다. 옷을 사러 갈까 싶기도 했고, 마사지를 받을까 싶기도 했는데 그런 게 과연 진정한 휴식인지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능동적으로 여가를 설계할 필요가 없었다. 생업 활동이든 예술 작업이든 무언가를 바짝 하고 나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고, 그러면 그것을 핑계로 삼아 한동안 늘어지면 됐다. 생산적인 시간을 보냈으니 그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도 그렇고, 다시금 다가올 생산 활동의 준비 차원에서도 그렇고 얼마간 마음 편히 쉬면 그만이었다. 심신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기회가 되는 한 최대한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생각 없이 휴식을 취해도 아무런 의문이 들지 않았다. 왜 휴식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 없이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 중에서 우선순위가 높거나 주어진 상황에 적합한 것을 하면 됐다. 그런데 치앙마이에 맞이한 휴일이 느닷없이 연쇄적인 물음을 던져 오고 있었다.  


침대맡에 앉아 사색에 잠겼다. 그 끝에서 돈이 내 휴식의 시점과 방향을 결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돈벌이를 중심에 두고 그 나머지 시간에 수동적으로 휴식을 취해 온 것이다. 돈벌이의 한 국면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나면 아무렇게나 휴식을 취해도 마음이 놓였다. 스트레스 해소를 핑계로 술을 위장에 들이붓는가 하면 시끄러운 대화로 밤을 달렸다. 돌아보면 돈의 지붕 아래에서 평온했던 나날들이었다. 지루하고 고달픈 돈벌이의 반작용으로 휴식이 이루어진 적이 무수히 많았다. 대표적인 여가 활동인 여행에서도 실권을 쥐고 있는 존재는 나 자신이 아니라 돈이었다. 돈이 허락하면 그제야 여행을 계획할 수 있었다. 여행지에서도 돈의 명령에 맞춰 행동했다. 당당하고 씩씩한 듯 보였던 여행의 순간들 역시 먹고 마실 수 있는 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뜻밖의 각성에 봉착하면서 휴식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되었다. 때로는 날마다, 때로는 며칠에 한 번씩 휴식과 관련해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그 과정에서 고민의 초점이 휴식에서 여가로 넘어갔다. 휴식과 여가가 동일한 개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똑같은지 다른지조차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여가에 대한 고민은 노동에 대한 고민을 다시 불러들였다. 의미 있는 삶을 꾸리기 위해서는 여가가 먼저여야 하는지, 노동이 먼저여야 하는지 생각했으나 아리송할 뿐이었다.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아도 마땅한 대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인터넷을 뒤졌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이니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국내 유수의 포털들에 검색어를 입력했으나 한참을 뒤져도 필요한 정보는 나타나지 않았다. 일반적인 여가 예찬이나 휴식의 기능과 방법 정도가 담긴 정보만이 대동소이하게 반복될 뿐이었다. 근본적인 의문을 해소해 줄 만한 정보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선진국들은 여가와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를 충분히 연구해 오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조악한 영어 솜씨 때문에 해외 자료를 검색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래저래 답답했다. 


질문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심도도 깊어졌다. 여가에 대해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고민한 적은 처음이었다. 질문은 인류의 발생 지점까지 나를 몰아붙였다. 인간 삶의 원형에 중요한 단서가 들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기에 탐색을 거듭했지만 역시 오리무중의 상황만 반복됐다.  


휴식의 문제에서 비롯된 고민이 인류사를 통째로 아우르며 삶이란 무엇인지의 문제를 향해 나아가는 상황. 따져보면 어떻게 살 것인지의 문제를 풀기 위한 화두와 씨름하고 있는 셈이었다. 갈수록 첩첩산중이었지만 노동과 여가의 적절한 균형점을 포착하기에 좋은 시기여서 밀려오는 질문들에 계속 몰입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대표적 여가 활동이라는 여행을 하는 놈이 여가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여행을 지속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이따금 했다. 오래도록 씨름해야 할 화두였지만 고민하는 만큼 삶에 대한 이해는 깊어질 듯했다.




# 발전은 질문하는 자의 전유물이다

평소에도 궁금한 게 있으면 이유나 원리를 지속적으로 따져보곤 한다. 때문에 사물이나 현상을 향해 질문은 던지는 행위가 별로 낯설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 시기의 상황은 나에게 상당히 이례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질문의 양이 평소보다 몇 갑절 많았기 때문이다. 주체적인 삶의 원리에 대한 궁금증이 이러한 현상을 만들어 낸 듯하다. 질문은 문제의 발견을 전제로 하는 행위다. 문제를 발견하고 그에 대해 질문과 대답을 반복함으로써 해결을 시도할 수 있다. 일련의 과정의 거쳐 보완된 결과를 발전 혹은 진보라고 부른다. 자신의 삶이 완전무결한 상태라고 생각한다면 굳이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겠지만 우리 삶이 어디 그런가.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게 좋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이다. 익숙한 것들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여행은 질문의 장으로서 활용도가 높다. 타인의 블로그나 가이드북에서 취한 정보를 검증 없이 기정 사실화하는 대신 그것의 진위와 배후의 원리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다시 한번 탐색해 보면 어떨까 싶다. 깨달음은 질문하는 자가 전유할 수 있는 고유의 권리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39. 나는 상투성이 불편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