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영진 Jan 28. 2019

26. 카우치서핑의 허와 실_흐바르, 크로아티아

인간관계는 언제나 훌륭한 인생 공부지

민박집 침실, 흐바르, 크로아티아




사실을 말하자면, 카우치서핑의 세계에 무사히 안착하는 데는 예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연이은 거절이 안긴 출발점의 상처를 극복한 후, 제법 맹렬한 기세로 카우치서핑을 성사시키며 여행해 왔지만 거저 얻은 결과가 아니었다. 카우치서핑의 내부 세계로 들어가서 보니 소신 있는 카우치서퍼는 전체 회원의 일부에 불과했다. 각국에서 적극적으로 호스팅 활동을 펼치고 있는 카우치서퍼들이 가장 대표적인 실천가들에 속했다. 카우치서핑의 나눔 문화는 그들이 끌고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를 호스팅한 이들도 그러한 성향의 카우치서퍼들이었다. 그들에게서 많은 호의를 입었고, 선의의 실천과 솔선수범의 태도를 배웠다.  


반면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회원들은 공짜 잠자리, 공짜 호의를 얻을 목적으로 사이트에 가입해 자신이 필요할 때만 활동했다. 그들의 자기중심적 행동은 적극적인 활동가들에게 피로감을 자주 안겼다. 애써 스케줄을 조절해 호스팅을 승인했는데 일방적으로 숙박 일정을 취소하거나 연락 없이 약속 일자에 등장하지 않는 사례, 교류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은 채 밖에서 늦게까지 실컷 놀고 들어와서 잠자리만 무료로 이용하고 훌쩍 떠나가는 사례 등 적극적인 호의의 대가로 씁쓸한 기분만 떠안기는 일들이 많았다. 적지 않은 카우치서퍼들이 자신의 프로필에 이기적인 목적으로 접근하는 이는 사절한다는 문구를 적어 놓은 이유였다. 


그와는 반대로 호스트가 무분별한 태도로 호스팅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불순한 목적이나 준비되지 않은 자세로 호스팅을 하는 사례가 그에 속했다. 성적인 접근이 가장 잦았고, 그 대상은 대부분 여성들이었다. 가끔은 남성도 표적이 되었다. 나 역시 어느 카우치서퍼로부터 잠자리를 제공할 테니 몸으로 대화를 나누자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다. 관계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위치를 이용해 게스트의 취향이나 필요를 살피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행동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으레 좋은 사람이려니 생각하고 호스트의 집에서 묵었다가 거북한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짐을 들고 뛰쳐나온 사례들이 카우치서핑의 세계에서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었다. 앞장서서 나눔을 실천하는 이들이 있기에 카우치서핑 문화는 확산을 거듭하는 중이었지만 불미스러운 상황의 예방도 카우치서퍼들에게는 그만큼 중요한 숙제였다. 


코르티차 요새, 흐바르, 크로아티아


자신만의 입지를 만드는 데에도 일정한 노력이 따르는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카우치서퍼로서 치명적인 결함까지 안고 있었다. 배낭여행의 주 연령층이 그렇듯 카우치서핑도 청년층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호스트 역시 대부분이 청년층이었고, 그들이 선호하는 게스트 또한 자신들과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또래 세대였다. 여행은 일상보다 관대한 시공간이어서 관계를 형성하는 데 나이가 치명적인 결함으로 작용하지는 않지만 여행이 펼쳐지는 무대는 욕망과 기대와 취향과 호불호가 뒤엉킨 현실 세계였다. 생동하는 청춘이라야 숙박의 우선권을 쥘 수 있었다. 그 시기를 지나치면서 사뭇 빈티지해진 나로서는 대기자 명단에만 들어가도 감지덕지할 따름이었다. 내 또래 중에서는 내가 가장 뇌쇄적이라고 얘기한들 각국의 호스트들이 곧이들을 리 없었다.


승낙 메시지를 받아내기도 쉽지 않았지만 호스트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과정에서도 신경 써야 할 게 많았다. 대부분의 호스트가 적극적으로 호의를 베풀었지만 방심은 금물. 상대의 성향과 속내는 일정 시간을 보낸 후라야 알 수 있는 법이었다. 순진하게 굴다가 호스트가 마음속으로 정해 놓은 관용의 경계선을 훌쩍 넘을 수 있으니 편히 지내란다고 마냥 편히 지낼 수 만도 없었다. 상대에게 마음을 다하되 나를 희생하지 않으며, 넉살을 부리되 호스트의 정신적, 물질적 성역을 한발 앞서 지켜주는 것, 그리하여 진심 어린 우정의 포옹을 나누며 다음 행선지로 떠나는 것, 그것이 성공적인 카우치서핑을 위한 무언의 율법이었다. 


학교 운동회를 벌이고 있는 생후 200개월 미만의 소년들, 흐바르 항구, 흐바르, 크로아티아


카우치서핑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내가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대등한 관계 형성이었다. 그 편이 신뢰를 나누는 데 유익하게 작용했고, 그 결과로써 우정을 돈독하게 다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나를 철저히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호스트가 제시한 가정 내의 필수 규칙은 당연히 엄수했고, 내가 만든 흔적도 날마다 깔끔하게 수습했다. 호스트가 베푼 호의에 늘 감사의 마음을 품었고, 주어진 상황하에서 최선의 보답을 하고자 했다. 다만 내 호의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느껴져도 그게 나로서는 최선이었다면 미안한 마음은 품지 않았다. 대신 내 호의가 더 커도 밑졌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각자 최선을 다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도움이 필요할 때는 솔직하게 얘기했다. 요구 사항 역시 정중하면서도 분명하게 표현했다. 공감할 수 없는 의견이나 요구에 '예스'로 일관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전하고자 했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했다. 또한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생각한 것들에 대해서는 상대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했다. 그럴수록 행동에 흔들림이 줄었고, 그만큼 관계가 단단해졌다.  


꾸준한 노력들은 내 카우치서핑 계정의 방명록에 훈훈한 내용의 후기로 차곡차곡 쌓였다. 내 할 바를 묵묵히 수행한 것이었음에도 함께한 시간을 의미 있게 추억하는 기록들이 푸른 빛깔로 쌓여 갔다. 다음 카우치서핑을 수월하게 성사시킬 수 있도록 같은 내용도 서로 좋게 좋게 적어주는 게 방명록 작성의 암묵적인 규칙이었지만 그러한 점을 고려한다고 해도 뜻깊게 느껴지는 기록들이 많았다. 기분 좋은 묘사를 담은 후기들은 다음 카우치서핑의 수월한 성사를 반복적으로 불러왔다. 실제 면모를 예측하는 데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는 항목이기에 후기는 신원 보증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후기를 염두에 둔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의미 있는 후기들이 적잖게 쌓여 카우치서핑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었다.


물론 긍정적인 후기를 충분히 보유했다고 해도 환영만이 잇따르는 건 아니었다. 나라마다 카우치서핑의 참여 비율이 천차만별인 데다가 문화가 활성화된 수준도 저마다 달랐기 때문이다. 카우치서퍼의 수는 적지 않은데 실질적인 참여 비율이나 활동성은 떨어지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극히 적은 참여자들이 적극적으로 여행자를 호스팅하고 이벤트를 개최하며 문화적 활기를 유지해 나가는 나라도 있었다. 카우치서핑 문화가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접촉할 만한 카우치서퍼를 거의 찾을 수 없는 나라도 있었다. 선진국에 가까워질수록 카우치서퍼의 수는 많아졌지만 오히려 비정하고 매몰찬 반응들을 보이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카우치서핑 결과는 만족스러웠다지만 그 역시 사람의 일이라 회수가 반복되는 만큼 피로가 쌓였다. 대부분의 호스트들이 내가 편히 쉬어 가길 바랐으나 내 입장에서는 상대에 대한 배려를 게을리할 수 없어서 가슴 뿌듯한 관계 속에서도 일말의 긴장감은 늘 유지해야 했다. 영어 솜씨는 부족한데 소통은 오히려 깊어지는 상황까지 맞물리면서 뇌에도 피로가 쌓였다. 해서 얼마간 카우치서핑을 중단하고 여행자 숙소를 이용하다가 슬로베니아 구간에 이르러 카우치서핑을 재개했다. 크로아티아에서도 한두 번쯤 카우치서핑을 해볼까 싶었는데 예상과 달리 활발하게 활동하는 호스트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조용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중앙광장의 노천카페, 흐바르, 크로아티아


아드리아해의 표면을 미끄러져 나가던 페리가 드디어 흐바르 섬에 닿았다. 새로 형성한 관계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본토와 달리 홀로 찾아온 흐바르는 한껏 평온했다. 관계의 자기장에서 벗어나 나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하기에 훌륭한 환경. 선착장에서의 흥정으로 묵게 된 민박집의 주인이 아래층에서 거주하고 있었지만 먼저 호출하지 않는 이상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받을 일은 없었다. 스스로에게 집중하며 심신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소문난 섬의 진면목을 쉬엄쉬엄 더듬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누렸다. 나라에서 일조량이 가장 풍부한 곳답게 발길 닿는 곳 어디에서든 태양이 진한 열기를 뿜어냈다. 


늦은 오후가 되어 아드리아해를 발아래로 거느린 멋진 전망 명소이자 현지인들이 지역의 백미로 꼽는 코르티차 요새에 올랐다. 수평선 위로 이글거리는 석양을 감상하는 동안 바로 곁에서는 일행 단위로 찾아온 이들이 대자연이 부리는 재주를 부산스럽게 예찬했다.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스스로에게 집중했다. 정갈한 마음을 꾸준히 유지한다면 멋진 인연들이 또다시 내 앞으로 당도할 것이었다. 열린 가슴으로 그들을 맞이하려면 나 자신을 차분히 가다듬어야 했다.


코르티차 요새, 흐바르, 크로아티아


코르티차 요새에서 내려다 본 아드리아해의 일몰, 흐바르, 크로아티아






매거진의 이전글 25. 자아를 찾아다니는 여자_플리트비체, 크로아티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