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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진 Feb 07. 2019

33. 세상의 끝에서_밀레스티미치, 몰도바

사람의 향기가 그 어느 때보다 진했던 나날들

몰도바의 지도를 소재로 삼은 벽화, 키시나우, 몰도바




세상의 끝처럼 느껴지는 곳에 왔다. 여행을 계획하기 전까지는 지구 상에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나라 몰도바. 지도를 들여다보는 나로 하여금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에 철벽처럼 에워싸인 그 형세가 고립감을 느끼게 했다. 두 나라도 이름만 익숙할 뿐 존재 자체는 낯선데 그 중앙에 계란 노른자처럼 웅크리고 있으니 잊혀진 대륙 안의 숨겨진 왕국처럼 보였다. 역사적으로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동구권 자체가 이미 세상의 반대편처럼 느껴지는 곳이거니와 몰도바는 오래전부터 그 동구권의 한가운데에서 주변 강대국들의 정세 변화에 휩쓸려 왔다. 한때는 루마니아의 영토였다가 이후에는 소비에트의 장막 저 깊숙한 곳에 갇혀 있었다. 시장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지만 유수의 동구권 국가들이 주변을 겹겹이 가로막고 있는 이상 일대를 통틀어 환복의 속도가 가장 느릴 듯했다. 


접근성도 만만치 않았다. 루마니아에서 진입하려면 여행 인프라를 일정 수준 이상 갖춘 브라쇼브나 부쿠레슈티로 찾아가 거기서 다시 몰도바행 장거리 버스를 타야 했다. 여행지로서의 매력이 부족한 국경 근처의 도시까지 가서 하루를 쉬고 넘어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 정도 노력을 들이기에 몰도바는 알려진 바가 너무 적었다. 애써 찾아갔다고 해도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몰도바를 여행한 후에는 우크라이나로 빠져나가든가 루마니아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데 루마니아로 돌아올 경우, 장거리 버스 안에서의 고된 시간을 다시 견뎌야 했다. 내 경우 몰도바의 속살이 궁금해서 장거리 야간 버스를 잡아탔는데 차 안에서의 시간이 무척 고생스러웠다. 90도로 빳빳이 앉아 밤을 지새우는 동안 기억도 없는 전생을 얼마나 열심히 후회했는지 모른다. 우크라이나로 빠져나간다고 해도 어렵사리 달려서 닿는 곳은 땅 덩어리는 넓고 교통 환경은 척박한 우크라이나의 외곽 지대였다. 또 다른 고생, 또 다른 혼돈의 시작이 될 가능성이 컸다. 때문에 가장 앞장서서 배낭여행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서양 여행자들조차도 몰도바에는 잘 들어가지 않았다.


대로변에서 벌어진 벼룩시장, 키시나우, 몰도바


야간 버스 안에서의 시간은 괴로웠지만 좀 더 강렬한 자극이 필요해 선택한 길이었기에 장막을 걷고 몰도바로 돌진하는 기분은 산뜻했다. 그런데 이른 새벽에 도착한 몰도바의 수도 키시나우가 나에게 가장 먼저 선사한 감정은 성취감이 아니라 당혹감이었다. 버스가 도착한 곳은 도시 외곽의 춥고 적막한 터미널. 어둠에 잠긴 일대의 풍경이 꽤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통화를 바꿔야 도심으로 들어가는 차를 탈 수 있는데 환전소가 문을 열기에는 너무 이른 시각이었다. 한참이 지나도 환전소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노천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던 현지 사내에게 환전소의 영업 개시 시각을 물었다. 취객에게 말을 걸고 싶지 않았으나 버스에 동승했던 이들이 모두 빠져나간 터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언어의 장벽은 태산처럼 높았지만 손짓 발짓을 동원해 가며 계속 설명을 시도했다. 얼마 후 그가 내 얘기를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지갑에서 100레우(Leu)짜리 지폐 한 장(약 6,000원)을 꺼내 내 손에 쥐어주면서 도로를 질주하던 택시 한 대를 잡아 그 안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현지 소득 수준을 고려하면 작은 돈이 아닌데 당연한 일을 하고 있다는 듯한 표정. 얼떨결에 올라탄 택시 안에서 뒤늦은 감동이 밀려왔다.


뜻밖의 친절을 싣고 달린 택시가 상가 밀집 지역에서 멈춰 섰다. 이를 모를 현지인 덕분에 도심 한복판에 발을 들이는 데 성공했다. 또 하나의 다행스러운 소식은 현지의 가정 한 곳에서 내 카우치서핑 요청을 수락했다는 것. 이제 그들의 집으로 찾아 들어가 그들 가정의 따뜻한 품에 안기는 일만 남았는데 애석하게도 다시 한 번 난관에 부딪쳤다. 버스의 탑승 위치가 묘연했던 것이다. 그들의 거처는 수도 키시나우에서 버스로 40여 분 거리의 외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몰도바의 내부로 진입하긴 했으나 거기서 끝이 아니라 어딘지도 모르는 시골 마을까지 다시 찾아 들어가야 하는 상황. 더욱이 그들의 가옥에는 정확한 주소가 없었다.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주소를 물어봤는데 자신들이 사는 동네에는 거리 이름이 없어서 주소를 얘기할 수가 없다고 했다. 지금껏 여행하면서 주소를 확보할 수 없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여러모로 세상의 끝처럼 느껴지는 몰도바였다. 


시내버스, 키시나우, 몰도바


게스트가 겪을 어려움을 익히 알고 있는지 호스트는 인터넷 지도에 좌표를 찍어서 링크해 주었다. 진입로와 건물 사진도 찍어서 보내 주었다. 자상한 성격의 소유자인 듯했다. 버스만 찾아내면 어떻게든 찾아갈 수 있을 듯해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그런데도 버스의 행방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 행인들에게 접근해 영어를 할 수 있는지 물었으나 다들 고개만 설레설레. 그러다가 이십 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한 사내와 마주쳤다. 그에게 손짓 발짓으로 목적지를 설명하자 그가 버스 탑승장을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 손을 잡아끌었다. 


가만히 보니 그는 만취 상태였다. 100레우의 의인보다도 훨씬 취한 상태.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이제 집에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상황은 께름칙했지만 확신에 찬 그 표정이 실낱같은 희망처럼 느껴져 한참 동안 그의 비위를 맞추며 걸었다. 다행히도 그가 끌고 간 곳에는 목적지로 가는 버스가 서 있었다.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그에게 셀카 촬영을 제안해 집중력을 흐트러트린 후 내일 이 시각에 여기서 다시 만나자고 얘기하고 버스에 올랐다. 호스트가 사는 동네에 도착해 길을 약간 헤맨 끝에 그들의 가정으로 무사히 찾아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이후로는 행복한 시간이 펼쳐졌다. 호스트의 가정은 다복하고 인간미가 넘쳤다. 나와 직접 연락을 주고받았던 이는 가장인 세르지우였는데 인상, 목소리, 태도에 이르기까지 가장으로서 아주 모범적인 모습이었다. 무뚝뚝하지만 배려심 넘치는 아내 디나, 애교 많은 네 살배기 아들 드라고쉬와 세르지우의 어머니까지 일가족 모두가 넘치는 환대를 베풀어 주었다. 


정교회에서 치러진 약혼식의 한 장면, 비세리카 정교회, 키시나우, 몰도바


세르지우는 현지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였다. 카우치서핑 게스트를 상대로 포트레이트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며 나에게도 카메라 앞에 서달라고 청하기에 흔쾌히 응했다. 그의 요청에 맞춰 포즈를 취했는데 아주 즐겁고 흥미로웠다. 세르지우의 설명에 따르면 내가 열여섯 번째 작업인데 프로젝트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이 셔터를 눌렀단다. 절망적인 외모 때문인지 치명적인 매력 때문인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남들 사진만 찍다가 세르지우 덕분에 한 시절의 내 모습을 사진으로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결과물도 마음에 들어서 내친김에 SNS 계정에 프로필 사진으로 지정했다. 


하루는 그의 출장 촬영에도 동행했다. 정교회에서 벌어진 약혼식 촬영이었다. 우리로 따지면 예식 사진이었는데 사제의 주관으로 거행되는 약혼 의식이 아주 이채로웠다. 세르지우의 앵글 안에 들어가지 않도록 한쪽 벽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그가 슈팅을 하는 순간을 피해 간간히 셔터를 눌렀다. 마지막 날에는 ‘I am a forest’ 작업도 했다. 세르지우와 디나 그리고 드라고쉬가 참여해 주었다. 서로를 상대로 세르지우는 포트레이트 촬영을 하고, 나는 ‘I am a forest’ 촬영을 했으니 공평하게 작업을 교환한 셈이었다. 네 살배기 소년 드라고쉬의 참여로 최연소 기록도 대폭 경신되었다.  


내가 몰도바를 방문했을 당시, 세르지우와 디나는 3박 4일 일정의 베를린 여행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야간 버스를 타고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로 가서 다시 저가 항공을 타고 베를린으로 향할 예정이라고 했다. 내가 몰도바를 떠나는 날이 그들이 여행을 시작하는 날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버스 출발 시각이 나와 똑같이 밤 9시였다. 나는 남부 터미널에서, 그들은 중앙 터미널에서 버스를 탑승한다는 점만이 달랐다. 


주택가의 풍경, 키시나우, 몰도바


다복했던 나날들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떠나야 할 시간이 왔다. 짐을 잔뜩 꾸린 그들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주인과 손님으로, 거주민과 여행자로 처음 만났다가 똑같이 여행자의 신세가 된 것이다. 애교 많은 4세 소년 드라고쉬는 작별의 순간에 나에게 두 번이나 달려들었다. 첫 번째는 뜬금없이 저쪽에서부터 달려와 안겼고, 두 번째는 대문 앞에서 내가 악수를 청하자 다시 내 품을 향해 달려들었다.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사실 세르지우와 디나 몰래 드라고쉬와 신호를 자주 주고받곤 했다. 내가 드라고쉬와 놀고 있을 때마다 세르지우나 디나가 드라고쉬를 만류하며 방으로 들여보냈기 때문이다. 드라고쉬의 얼굴 위로 피어오르는 좌절의 표정이 안타까웠지만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드라고쉬와 최대한 놀아주는 것, 세르지우나 디나가 드라고쉬를 만류하면 괜찮다고 얘기하고 놀이 시간을 조금이나마 연장하는 것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가족들의 만류로 놀이가 끝나면 그들의 눈길을 피해 드라고쉬에게 윙크를 보냈다. 그럴 때마다 드라고쉬가 활짝 웃었다. 여행하는 내내 각국의 아이들에게 윙크를 난사하고 있었다. 보호자의 눈을 피해 내가 윙크를 보내면 아이들은 눈동자를 활짝 열며 밀월의 웃음으로 화답했다. 순간 그들과 나 사이에 비밀의 공간 하나가 열렸다. 내가 일부러 딴청이라도 피우면 그들은 윙크로 나를 다시 호출했다. 그러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 우리들만의 비밀 공간으로 마음을 밀어 넣었다. 그 안에서 두 마음이 천진난만하게 얽히고설켰다. 드라고쉬도 그런 마음으로 대했다. 그렇지만 녀석이 이렇게까지 갑작스럽게 내 품으로 달려들지는 몰랐다. 아이들이 순백의 감정으로 밀고 들어올 때마다 영혼이 송두리째 흔들리곤 했는데 드라고쉬의 쇄도도 마찬가지였다.

 

애교쟁이 소년 드라고쉬의 아침식사, 밀레스티 미치, 몰도바


시내로 향하는 버스 안. 여행의 시작과 함께 생활인에서 여행자로 정체성을 전환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불과 일이십 분 사이에 여행자로 변신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세상 끝에서부터 시작하는 여행의 풍경은 내 여행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도 문득 궁금해졌다. 그들의 가정에서 나눈 대화의 대부분은 현지의 삶과 사회 환경에 관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버스 바닥으로 쏟아져 나온 이야기는 오로지 여행이었다. 집에서는 어른스럽게 행동했지만 삼십 대 초반의 정력 왕성한 그들이었다. 가정을 꾸리느라 수고스럽던 시간을 벗어나 둘만의 자유 여행을 시작하고 있으니 미지의 세계를 향한 호기심이 단전에서부터 들끓고 있을 것이었다. 대모험을 앞두고 어느새 소년소녀로 돌아간 그들의 모습이 한껏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갖춘 널찍한 이층 가옥에서 여유로운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들은 불편한 야간 버스에서 밤을 지새운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비행기에 탑승해 베를린으로 향할 것이었다. 세상의 끝처럼 느껴지는 곳에서 두 사람 덕분에 다복한 추억을 많이 쌓았다. 사람의 향기가 그 어느 곳보다 진했던 몰도바가 오래도록 그리울 듯했다. 


시가지에서 마주친 풍경, 키시나우, 몰도바




# 글로벌 사진 프로젝트 <I am a forest> 

숲 보호와 우리 안의 자연성 회복을 주제로 한 사진 프로젝트. 레고랜드의 춘천 무인도 벌목 사태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3일짜리 스키점프 경기를 위해 강원도 가리왕산의 500년 된 원시림 5만 그루를 벌목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그 초점을 올림픽으로까지 넓혔다. 세계적인 축제의 이면에 숨은 진실을 세계인들에게 알림과 동시에 우리 안의 자연성 회복을 호소하며 나아갔다. 세계인들이 전하는 숲 보호의 염원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그들의 연대를 인간 숲의 이미지로 형상화해 나간 작업이다.


80th 퍼포머

: Alexa Zarescu


- 국적: 루마니아

- 촬영지: 브라쇼브, 루마니아


알렉사는 브라쇼브에서 묵었던 숙소의 스탭. 객실에서 쉬고 있는데 그녀가 들어와 빈 침대의 시트를 갈기 시작했다. 대학생이냐고 물었다가 전공이 심리학이라기에 말을 좀 더 붙였다. 통한다 싶었는지 일을 팽개치고 바닥에 털퍼덕 앉은 그녀. 다양한 영역으로 가지를 치던 대화가 프로젝트 촬영으로 이어졌다. 사진을 선물로 건넸더니 그 이상의 친절이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날 밤, 몰도바행 버스를 타려고 터미널에 갔는데 출발지가 갑자기 다른 곳으로 바뀌었다. 위치는 모르는 상황. 유선으로 소식을 전해 들은 알렉사의 숨 가쁜 대응으로 간신히 버스를 잡아타는 데 성공했다. 



81st~83rd 퍼포머

: Dragos Alistar(81st), Dina Alistar(82nd), Sergiu Alistar(83rd)


- 국적: 몰도바

- 촬영지: 밀레스티 미치, 몰도바


세르지우네 가정에서 보낸 시간은 무척 행복했다. 평화롭기 이를 데 없는 마을의 정경과 마음을 너그럽게 해주는 세르지우네 가옥의 넓은 마당, 그들 일가가 환영의 마음으로 내어 준 널찍한 독방과 그 한켠에 놓인 커다란 침대, 아침마다 공급된 현지식 조찬과 수시로 입수되는 현지 정보. 그것만으로도 이미 차고 넘치는데 거기에 네 살배기 소년 드라고쉬의 애교가 화룡점정을 찍었다. 그야말로 나무랄 데 없는 환경이었다. 촬영은 그들 가옥의 뒷마당에서 했다. 낙엽 빛깔이 훌륭하다며 세르지우가 추천한 장소였다. 이따금 주고받는 소식에 의하면 드라고쉬는 미친 듯이 커가고 있다. 세르지우가 몰도바에 아주 훌륭한 산이 있다며 다음에는 함께 트레킹을 하자고 했는데 그때도 드라고쉬의 메가톤급 애교를 볼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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