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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진 Feb 19. 2019

41. 100명이 함께한 인간숲 연대_닉시치,몬테네그로

모래알 같은 개인도 한데 뭉치면 꽤 우람하다니까

오스트로그, 몬테네그로




‘I am a forest’ 프로젝트의 참여자가 100명을 돌파했다. 100번째 참여자는 프로파간다의 스탭인 코사. 처음으로 방문하던 당시, 긴장된 마음으로 프로파간다의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선 나를 가장 먼저 맞아준 이가 그녀였다. 사진전 개최를 문의하러 왔다고 했더니 환한 미소로 반기며 공간의 운영자인 라트코에게 연락을 취해 주었다. 라트코가 외부에서 일을 보는 중이어서 얼마간 기다려야 했는데 코사가 수시로 상황을 점검해서 알려 주었다.  


전시회 당일에도 코사는 나를 세심하게 챙겼다. 공간 운영과 관련해 안팎으로 바쁜 라트코와 현지 사진 포탈의 요청으로 긴급하게 거리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었던 나 사이에서 연락책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주었다. 전시회 둘째 날에는 프로파간다가 문을 열기 전인 오전 시간을 이용해 시내도 구경시켜 주었다. 이후에는 분위기 좋은 카페로 자리를 옮겨 차를 나눴다.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화사한 햇살이 기분을 나른하게 만들었다. 커피값은 코사가 냈다. 잘 베풀려면 잘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되뇌며 여행하고 있었다. 물론 나 역시 귀중한 인연들에게 돈을 아끼지 않았다. 당연하다는 듯 지갑을 여는 코사를 정색하며 말리는 대신 그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였다. 


점심 무렵 문을 연 프로파간다에서도 코사는 예의 모습대로 나를 자상하게 챙겼다. 커피를 내려 주었고, 커피잔이 비어 갈 때쯤에는 맥주를 추가로 권했다. 아무렇지 않게 커피며 맥주를 내주는 것으로 보아 프로파간다에서 꽤 비중 있는 역할을 맡고 있는 듯했다. 근무 시간이 끝난 이후에도 프로파간다에 자주 머무르며 공간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과시하던 그녀였다. 코사의 권유로 마신 몇 종류의 현지 생맥주가 다시 한번 기분을 달큰하게 만들었다.  


코사는 나뿐만 아니라 주변도 세심하게 잘 돌봤다. 그 이유는 그녀의 대학 전공에서 찾을 수 있었다. 심리학 학도인 코사는 공감 능력이 뛰어났다. 모든 관계에 풍부한 감정으로 임하곤 했다. 함께 거리를 걷다가 그녀의 부모님을 우연히 마주치기도 했는데 만면에 웃음을 띄운 채 부모님의 품에 안기는 모습에서 집안의 내력을 얼마간 읽을 수 있었다. 다복한 가정 분위기 역시 풍부한 감수성의 근원인 듯했다.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에게 호의를 베푸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다가오던 코사였다. 그런 그녀가 ‘I am a forest’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참여자의 수가 세 자리를 넘어섰다. 


코사와 차를 마셨던 카페, 닉시치, 몬테네그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여행에서 유사한 시도를 한 사례를 찾을 수 없어 어떤 식으로 밑그림을 설계해야 할지 막막해하며 프로젝트의 뚜껑을 열었다. 참여를 유도하는 데 사용할 샘플 작업물도 없는 데다가 프로젝트의 당위성을 뒷받침할 만한 설명마저 갖추지 못한 터라 첫걸음이 어설펐다. 그렇게 시작한 작업이 어느새 100명의 세계인을 엮어 제법 그럴싸한 인간 숲 연대를 만들어 냈다. 


비주얼 아트를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인 만큼 이미지를 언어화하는 데 집중하며 작업해 오고 있었다. 참여자들에게는 목적과 방향성을 세심하게 설명해 충분한 이해 속에서 촬영에 임할 수 있도록 한 대신 인터넷에 결과물을 게시할 때는 촬영한 사진과 더불어 참여자와의 인연만을 이야기 형식으로 전달했다. 프로젝트를 개념적으로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일은 가급적 삼갔다. 입으로 하는 예술이 아니라 작품이 언어가 되는 작업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화려한 말잔치보다는 사람의 연대가 점진적으로 확장되는 모습을 직접 보여 주는 것이 가장 확실한 메시지일 것이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 채 알쏭달쏭한 문구를 동반한 인물 사진을 몇 달 동안 꾸역꾸역 올리는 내 모습을 보고 저 사람 미친 거 아니냐고 생각했다가 나중이 되어서야 프로젝트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얘기를 전해 온 이도 있었다.  


이동 중에 급히 성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작업이어서 그 결과가 성에 차지 않을 때도 많았지만 주어진 환경을 인정하며 나름대로 최선의 정성과 노력을 기울인 덕분에 프로젝트가 궁극적으로 목적하는 바를 구체적인 양상으로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평등한 관계 맺기와 상호 신뢰의 구축, 국경을 뛰어넘는 우정과 조건 없는 헌신에 이르기까지 인간성 회복을 위해 한 번쯤은 되돌아봐야 하는 가치들을 직접 체험하고 발현했다. 진솔하게 소통한 사연들이 매 작업에 깊이 스며 있었다. 여러 명의 참여자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돼 뜻깊었다”는 말로 나를 격려했다. 고된 노력을 보람으로 전환시켜 준 목소리들이었다. 


프로젝트를 이어오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도 계속 성장했다. 여행을 시작할 때만 해도 거절에 대한 공포가 있었으나 중간 어느 지점부터 거절을 능동적으로 수용해 나가기 시작했다. 뿌듯한 성취가 잇따르면서 자존감이 높아졌다. 프로젝트 참여자들과 국내 지지자들의 성원을 마주칠 때마다 내가 그런대로 쓸모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만큼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또 그만큼 상대의 입장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피로감이 누적되었을 때나 거절이 연이을 때는 잠시 주춤거리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초기에 비해 한층 안정된 모습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다. 


광장을 지나는 익명의 행인들, 닉시치, 몬테네그로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태도도 더욱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에는 독선적이라는 비판을 들었던 나였다. 그 뿌리까지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각성과 실천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 때부터인가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그 정도만으로도 다행스럽다 싶었는데 ‘I am a forest’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러한 모습이 더욱 강화되었다.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할수록 관계는 더욱 선순환했다. 경청이 소통의 중요한 밑거름이라는 사실을 자주 확인했다.  


사람을 대하는 솜씨도 과거보다 좋아졌다. 다양한 이들과 인연을 키우다 보니 수용할 수 있는 인간 유형의 폭이 전보다 넓어졌다. 예전 같았으면 어쩌지 못했을 관계에도 좀 더 여유롭게 임하는 나를 발견했고, 심지어는 다른 감성의 소유자와 깊은 소통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의도치 않게 관계를 이끄는 사례도 늘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했을 뿐인데 상대가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이끌려 왔다. 


무엇보다 귀중한 부분은 프로젝트 덕분에 만난 수많은 이들이 나에게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자기 성찰에 애써왔지만 내 모습이 잘 보이지 않을 때도 많았다. 다양한 이들을 집중적으로 접촉하다 보니 다각도에서 인간의 양태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들 중 일부는 내 모습이었다.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를 맞닥뜨릴 때마다 그것을 조정하고 가다듬었다.  


더불어 내 그릇이 간장 종지보다는 크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당초에 생각하고 있던 한계치보다 더 많은 일을 해내는 내 자신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이 높아졌다. 사람에 대한 희망도 커졌다. 실망한 적이 없지 않지만 상대를 탓하기보다는 어눌한 내 접근 방식부터 반성할 일이었다. 처음에는 망설이던 이도 적절한 접근이 선행되면 이내 마음을 열고 관계 속으로 들어와 적극적으로 연대하곤 했다. 겉으로는 냉담한 듯 보이는 이들이 마음속으로는 의미 있는 실천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숱하게 확인했다. 그러한 경험들을 차곡차곡 가슴에 담다 보니 어느새 세계 각국 100명의 친구들이 서로 손을 맞잡은 채로 내 곁에 도열해 있었다. 흐뭇한 일이었다. 


기분 좋은 교감을 주고받았던 행인들, 닉시치, 몬테네그로




# 글로벌 사진 프로젝트 <I am a forest> 

숲 보호와 우리 안의 자연성 회복을 주제로 한 사진 프로젝트. 레고랜드의 춘천 무인도 벌목 사태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3일짜리 스키점프 경기를 위해 강원도 가리왕산의 500년 된 원시림 5만 그루를 벌목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그 초점을 올림픽으로까지 넓혔다. 세계적인 축제의 이면에 숨은 진실을 세계인들에게 알림과 동시에 우리 안의 자연성 회복을 호소하며 나아갔다. 세계인들이 전하는 숲 보호의 염원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그들의 연대를 인간 숲의 이미지로 형상화해 나간 작업이다.


100th 퍼포머

: Vekic Kosa


- 국적: 몬테네그로

- 촬영지: 닉시치, 몬테네그로


무수한 친절을 나에게 베풀어 준 코사. 전시회 관계자들과의 소통을 도모해 주는 연락책, 전시회 준비 작업 도우미, 개인 가이드, 프로젝트 작업과 별개로 진행한 포트레이트 촬영의 모델 등 나를 위해 소화해 준 역할도 여럿이었다. 식사 시간을 놓친 나에게 자신이 먹으려고 산 샌드위치를 나누어 주기도 했고, 프로파간다에서의 비중 있는 역할을 십분 발휘해 내 뱃속에 낮술을 채워 주기도 했다. 전시회 종료 직후 막차를 타고 포드고리차로 돌아갈 계획이었던 나를 위해 직접 버스 터미널로 전화를 걸어 막차 시간도 확인해 주었다. 그녀 덕분에 가슴 따스한 순간을 자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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