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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진 Feb 18. 2019

40. 공동체의 혁신이 나의 혁신_닉시치, 몬테네그로

그를 만나려면 이 동네의 체 게바라를 찾으면 돼

프로파간다, 닉시치, 몬테네그로




전시를 타진하기 위해 몬테네그로 제2의 도시 닉시치에서 최고의 복합 문화 공간으로 통한다는 ‘프로파간다'를 방문했다. 운영자가 출타 중이라기에 한참을 기다리다가 잠시 바깥으로 나갔는데 마침 외부에서 볼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공간 운영자 라트코와 마주쳤다. 그가 나를 한눈에 알아보고 인사를 전해 왔다. 휴대전화로 연락을 받았다는데 직원이 나를 꽤 긍정적으로 묘사한 듯했다. 반가운 기색을 한껏 드러내는 라트코 덕분에 마음이 편해졌다. 나와의 만남에 대해 뭔가 기분 좋은 예측이 있는 듯 보였다. 반 농담조의 인사말이었지만 환영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포드고리차의 한 문화 공간에서 전시회 개최를 거절당한 직후였다.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장년의 국민 여배우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거절을 당하는 것도 모자라 모욕감까지 느꼈다. 그녀의 말투에서 깔보는 듯한 인상을 받았거니와 그 태도와 표정에서 명성 뒤에 숨겨진 본모습도 읽었다. 간판과 형식을 중시하는 20세기형 인간. 경험 많은 여배우라고 해서 전방위적으로 열린 예술가를 만날 줄 알았는데 가서 보니 화려한 치장이 예술의 핵심이라 여기는 예능 기술자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수상했다. 아무런 양해도 구하지 않고 자신의 곁에 30분 이상 나를 대기시키질 않나, 그마저 참고 기다렸더니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눌 새 없이 나중에 검토할 테니 사진을 두고 돌아가라고 한 마디 툭 던지고 자신의 업무 공간으로 들어가 버리지를 않나, 졸부들에게서나 봤던 행동을 계속 보여 미심쩍었다. 내가 명품 정장 차림으로 람보르기니에서 내려 황금 액자로 표구한 사진을 건넸다면 그녀는 세상 최고의 비굴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내 구두 끝을 향해 고개를 조아렸으리라. 그러나 장기 여행 중인 내 옷차림은 낡았고, 휴대용으로 인화한 사진의 규격은 작았다. 인연이 아닐 수도 있으니 거절을 받아들일 각오는 하고 있었다. 유쾌하지는 않겠지만 그 역시 좋은 인생 공부가 되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원한 건 아니었다.  


그녀가 거절 의사를 표하고 자신의 업무 공간으로 돌아간 직후, 직원이 다가와 나에게 위로를 건넸다. 자신은 여배우가 입에 올린 거절의 이유들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 옛날 사람이어서 일하면서 짜증 날 때가 많다며 그녀의 말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나를 다독였다. 직원의 위로가 마음을 잠시 누그러뜨려 주었지만 불쾌한 기분은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다. 권력과 금전의 우위를 앞세운 갑에게 그 세계의 방식으로 조롱당한 여파였다. 


거리에 드리워진 나무의 그림자, 닉시치, 포드고리차


프로파간다를 찾았을 때도 마음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복합 문화 공간 중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지역 최고의 명소라니 경제 권력과 문화 권력을 동시에 쥔 곳일 것이었다. 이미 힘의 논리에 한 방 먹은 터라 저쪽에서 고자세로 나올 여지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방식으로 한 방을 더 먹으면 마음이 크게 휘청거릴 듯했다. 그런데 라트코가 무척 반가워 하는 표정으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방문 목적을 전해 듣고 사진까지 확인한 라트코가 시원스러운 목소리로 오케이 사인을 외쳤다. 거기에 더해 역 제안까지 해 왔다. “참신한 전시회가 될 것 같고, 사진도 훌륭하니 우리 쪽에서 네 제안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너를 초대하는 게 바람직한 것 같다. 문화예술을 애호하는 청년들이 지역에 많고, 사진을 전공하는 대학생들도 이곳에 많이 드나드는데 그들에게 새로운 영감과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행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 대신 사진들을 좀 더 큰 규격으로 인화해 전시해 주면 좋겠다. 그래야 네 사진들이 더 빛날 것 같다. 지역에 소식을 뿌리는 데도 그 편이 용이하다. 그렇게만 해 준다면 프로파간다의 이름으로 너를 초대하마.” 


라트코의 지원은 전폭적이었다. 전담 디자이너와 아이디어 회의를 한 후 배너를 만들고, 내 프로필을 디자인해 출력하고, 이벤트 페이지를 만들고, 공간의 한쪽 벽에 걸려 있던 대형 보드와 영업 관련 액자들을 걷어내 벽 하나를 통째로 비우고, 거기에 못질을 한 후 전시용 와이어를 걸고, 지역의 젊은 사진학도와 예술 애호가들을 불러 모으는 등 물심양면으로 많은 수고를 해 주었다. 사진전을 진행한 이틀간 프로파간다에서 거의 체류하다시피 한 나를 위해 마실거리도 수시로 챙겨주었다. 커피, 맥주 등 닥치는 대로 잘 얻어먹었다. 명색이 전시회라고 오프닝 이벤트에서는 와인도 아낌 없이 풀었다. 


현지 포탈의 요청으로 촬영한 거리 사진 중 한 컷, 닉시치, 몬테네그로


행사 개최 소식이 그새 퍼졌는지 현지 사진 포털의 요청으로 거리 사진도 촬영했다. 전시회 오프닝 당일, 사진 포털 측의 포토그래퍼가 전시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긴급히 그를 만났다. 사흘쯤 전에 요청이 들어온 상태였는데 전시회부터 신경 써야 해서 여유 시간이 나면 사진을 찍겠다고 얘기해 뒀다. 작품 설치 작업이 한창이라 시간을 내기가 만만치 않았지만 그는 그대로 긴박한 표정이었다. 외국인 작가의 사진을 포털에 실을 수 있는 드문 기회라며 시간을 조금만이라도 할애해 달라고 청했다. 어떻게든 성사시키려는 인상이 역력했다. 해서 프로파간다 측에 양해를 구하고 거리로 나가 얼마간 사진을 찍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촬영인 데다가 시간도 촉박하고 작업 여건도 좋지 않아 실력 발휘를 하기가 어려웠지만 그 자체로 충분히 멋진 경험이었다. 


전시 오프닝의 분위기는 꽤 좋았다. 행사의 시작과 함께 라트코가 전시회의 취지와 내용을 설명한 후 나를 소개했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시선을 맞춰오는 관람객들의 모습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양방향 소통 욕구가 일었다. 인사말 정도만 해도 충분한 상황이었으나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행사가 워크샵으로 바뀌었다. 관람객을 하나씩 앞으로 불러내 여행이나 사진과 관련해 개인적인 경험을 묻는 사이 장내의 분위기가 후끈해졌다. 몰입감이 깊어진 때문인지 내 호출에 빼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던지는 물음에 모두가 기대 이상의 진지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질문과 답변을 계속 이어가는 동안 행사장이 토론장으로 변했다. 내가 자리에서 물러난 후에도 관람자들 사이에서는 뜨거운 토론이 이어졌다.  


오프닝 이벤트를 마친 후 라트코가 함께 밖으로 나가자는 신호를 보내왔다. 전시회의 경과가 상당히 만족스러워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둘 다 아침부터 전시 준비에 집중하느라 밤늦게까지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상태였다. 내가 알겠다는 사인을 보내자 라트코가 자신의 승용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량 안에서 라트코는 행사에 대한 만족을 다시 한번 표시했다. 이제껏 외국에서 온 많은 예술가들이 프로파간다에서 행사를 벌였는데 유일하게 만족스러웠던 두 번의 행사 중 하나가 오늘이라고 했다. 


프로파간다 입구에 걸린 전시 안내판, 닉시치, 몬테네그로


차량이 걸음을 멈춘 곳은 ‘숲’(Forest)이라는 이름의 식당이었다. 영문으로 'Forest'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새겨진 식당의 유리문을 열면서 라트코는 나를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그 표정 위로 속내가 비쳤다. ‘I am a forest’ 프로젝트를 응원한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같은 이름의 식당을 선택한 것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따라나섰다가 의외의 형식으로 격려와 지지의 마음을 맞닥뜨리는 기분이 묘했다. 식당의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갖가지 샐러드가 담긴 최고급 스테이크와 현지 맥주로 배를 불렸다. 하루 종일 쫄쫄 굶은 내 뱃속으로 천하가 흘러들었다. 


라트코는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혁신가였다. 프로파간다 역시 쿠바 여행에서 체 게바라의 혁명 정신에 매료된 그가 지역의 낡은 문화를 혁파하기 위해 문을 연 공간이었다. 닉시치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우렁찬 도시였지만 그러한 열기에 반해 오래된 전체주의의 관습이 혁신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때문에 라트코는 현지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지역의 젊은이들이 더 많이 경험하고 느끼길 바란다는 말도 이미 여러 차례 했다. 각오가 남다른 만큼 지역 공동체의 혁신에도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다. 체 게바라에게서 영감을 받으면서 그의 인생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인지 외양마저도 체 게바라를 잔뜩 닮은 상태였다. 현지에서도 체 게바라로 통하고 있었다. 지역이 쇄신되는 만큼 스스로도 혁신되는 듯 보였다. 건물 옆에 딸린 창고를 공개하며 공간 확장 계획을 설명하는 그의 표정에서 새로운 지평을 향해 나아가는 자 특유의 열정이 느껴졌다.


이틀 간의 전시를 성황리에 마무리하고 프로파간다를 나서는 길. 문 앞으로 배웅 나온 라트코가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너는 이제 우리의 식구야. 너라면 언제든 환영이니 내 집이라 생각하고 아무 때나 오렴.” 답례 인사를 건넬 차례. “고마워. 더 좋은 작업물을 가지고 다시 돌아올게.” 버스 터미널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나를 향해 라트코가 마지막 말을 날렸다. "우리 프로파간다 식구들은 너를 늘 그리워할 거야!" 터미널까지 걸어가는 내내 귓전이 웅웅거렸다.


팀 프로파간다, 닉시치, 몬테네그로




# 글로벌 사진 프로젝트 <I am a forest> 

숲 보호와 우리 안의 자연성 회복을 주제로 한 사진 프로젝트. 레고랜드의 춘천 무인도 벌목 사태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3일짜리 스키점프 경기를 위해 강원도 가리왕산의 500년 된 원시림 5만 그루를 벌목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그 초점을 올림픽으로까지 넓혔다. 세계적인 축제의 이면에 숨은 진실을 세계인들에게 알림과 동시에 우리 안의 자연성 회복을 호소하며 나아갔다. 세계인들이 전하는 숲 보호의 염원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그들의 연대를 인간 숲의 이미지로 형상화해 나간 작업이다.


101st 퍼포머

: Ratko Rale Janjic


- 국적: 몬테네그로

- 촬영지: 닉시치, 몬테네그로


정치적 도구로서의 '프로파간다'가 대중을 순화시키고 길들이기 위해 활용되었다면 복합 문화 공간 '프로파간다'는 같은 어휘를 반대의 방식으로 활용했다. 사람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새로운 관점의 선동적 슬로건. 때문인지 본뜻을 전복한 공간 속에서 유쾌하고 신나는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정치적 선동에 휘둘린 과거에서 벗어나 시대를 주체적으로 끌고 가려는 움직임들로 실내가 자주 들썩였다. 현지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의 기회를 꾸준히 제공하며 지역 사회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공간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라트코가 움직이는 만큼 지역 사회에 생기가 감돌았다.



102nd~103rd 퍼포머

: Vuk Kasalica(아래), Marko Culafic(위)


- 국적: 몬테네그로

- 촬영지: 닉시치, 몬테네그로


현지 사진 포탈의 스탭인 마르코와 부크의 안내로 지역을 돌아다니며 거리 사진을 찍었다. 촬영을 마무리할 무렵, 그들이 내 SNS 계정을 열람하고는 프로젝트에 대해 묻기에 내용을 설명해 주었더니 우리도 빠질 수 없지 하는 표정으로 참여 의사를 피력해 왔다. 어디서 촬영하고 싶냐고 묻자 숲에서 하고 싶다는 대답. 내가 좋은 생각이라고 이야기하자 차량 운전을 전담하고 있던 부크가 승용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량이 도착한 곳은 노을이 지기 시작한 인근의 숲 지대였다. 두 사람 다 키가 훤칠한 편이어서 목마 자세로 촬영을 했다. 길쭉한 나무들 사이에서 두 사람이 나무의 형상을 복제했다. 



104th 퍼포머

Milica Radovanovic


- 국적: 몬테네그로

- 촬영지: 닉시치, 몬테네그로


전시회의 관람객 중 한 명이었던 밀리차.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는 예술학도 밀치차는 이른 시간부터 전시회의 문을 두드렸다. 이색적인 행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라트코가 인사를 시켜 주기에 얼마간 대화도 나눴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다채로운 표정이 피어나기에 대화를 마무리한 후에는 거리로 나가서 포트레이트 촬영도 했다. 카메라 앞에서 밀리차는 한층 더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였다. 사진학도답게 포즈를 수시로 바꿔가며 자신을 표현했다. 감정을 풍부하게 발산하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 오프닝 행사에서도 밀리차는 발군의 쾌활함을 보여 주었다.



105th 퍼포머

: Durdica Knezevic


- 국적: 몬테네그로

- 촬영지: 닉시치, 몬테네그로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들 중 꽤 많은 수는 대학생이었다. 그중 사진학도, 예술학도, 심리학도의 비율이 가장 많았다. 두르디차 역시 전시회에 찾아온 사진학도 중 하나. 오프닝 행사 도중 관람객들이 내 장비를 구경하고 싶다고 하기에 카메라 가방에서 장비들을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쳐 놓았다. 장비에 가장 먼저 접근한 이는 사진학도인 밀리차와 두르디차였다. 조심스럽게 장비를 관찰하다가 어느새 내 카메라를 손에 쥐고 서로를 사진 찍기 시작한 두 사람. 장난감 가지고 놀듯이 셔터를 난사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최근 두르디차는 여성주의적 관점의 전시회를 현지에서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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