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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진 Dec 28. 2018

1.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_헬싱키, 핀란드

여행의 시작

시벨리우스 모뉴먼트, 헬싱키, 핀란드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여행자의 이름으로 반가운 마음을 담아 서신을 보냈음에도 환영의 목소리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컸다. 여장을 꾸리면서 여행의 시작점인 헬싱키 거주자를 대상으로 카우치서핑 요청 메시지를 보냈더랬다. 현지인의 집에서 머물면서 우정도 나누고 현지인의 생활상도 경험할 수 있다기에 야심만만하게 계정을 개설했다. 뜻깊은 만남을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한 땀 한 땀 세심하게 프로필을 적은 후 마음이 이끌리는 현지 카우치서퍼에게 정성스레 메시지를 적어 보냈다. 그런데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다시 새로운 인물을 검색해 메시지를 보냈다. 또 거절. 그리고 또 거절. 보내는 족족 거절당했다. 열린 삶을 표방하는 현지 예술가, 여행자의 감성이 물씬 풍기는 보헤미안, 결속과 연대를 중요시한다는 공동체 구성원 등 맞닿을 만한 구석이 꽤 있는 이들이었다. 그런데도 모두 거절당했다.


반복되는 거부의 경험이 몸을 뜨겁게 달궜다. 조급해졌다. 그만하면 정중하게 손을 내민 것 같은데 서로 담합이라도 한 듯 죄다 거절이라니. 이렇게 매정하게 거절할 거라면 자신의 계정에 호스팅 표시는 왜 해 두었단 말인가. 아직 길 위로 걸음을 내딛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마음이 급해졌다. 몸만 국내에 있을 뿐 마음은 헬싱키의 낯선 대문들을 정신없이 두드렸다. 열리지 않는 대문 앞에서 돌아서기를 반복하는 사이 빳빳했던 여행의 각오가 쭈글쭈글해졌다.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이제 막 개설한 내 계정에는 타인과의 교류 흔적이 전혀 없었다. 함께 시간을 보낸 뒤 소감을 남겨 주는 방명록이나 친구 목록 등이 텅텅 비어 있었다. 내 정체를 보증해 줄 요소가 전무한 상태. 내가 스스로에 대해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라고 떠들어도 그들로서는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신원불명의 여행자에 불과한 나에게 세간살이의 한 부분을 내줘야 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 역시 맨주먹으로 카우치서핑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올챙이 적 생각을 하면서 나에게 시작할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는가. 누군가가 그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출국이 임박해서도 거절은 계속됐다. 거절 위로 또 다른 거절이 쌓이는 가운데 존재 자체를 통째로 부정당하는 느낌도 이따금 찾아들었다. 세계 각국의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우정을 나누고 사랑을 노래하는 장면은 여행 에세이에서나 나오는 모양이었다. 정성을 담아 메시지를 적어 보낸 대가로 번번이 거절이라니. 내가 기대했던 그림은 이게 아니었단 말이다. 듣자 하니 꽤 많은 이들이 호스트에게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해 초장부터 카우치서핑을 포기한다는 것 같았다. 


결국 호스텔을 예약했다. 그런데 호스텔을 예약한 당일, 현지 카우치서핑 호스트 한 명에게서 답변 메시지가 날아왔다. 내가 헬싱키에 도착한 다음날 해외여행을 떠날 예정이라 하루밖에 숙박을 제공하지 못하는데 그거라도 괜찮으면 오라는 것. 탄자니아계 핀란드인인 지미였다. 가뭄 끝에 소나기를 만난 듯 영혼이 통째로 들떴다.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하룻밤만이라도 좋다." 그러고는 예약해 둔 호스텔에 메일을 보내 숙박 시작일을 하루 뒤로 미룰 수 있는지 문의했다.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헬싱키 공항, 헬싱키, 핀란드


헬싱키는 수려한 첫인상으로 나를 반겼다. 지덕체를 겸비한 교양인을 보는 듯했다. 세련미가 돋보이는 공항 곳곳의 타이포그래피와 픽토그램, 시간을 엄격히 준수하는 지하철과 버스, 서정적인 풍경의 동네 산책로와 초록이 우거진 주거 단지까지 균형과 조화의 풍경이 가득했다. 이래서 북유럽, 북유럽 하는구나 싶었다. 버스에서 내려 신선한 내음이 가득한 가로수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지미네 집 앞. 시계를 보니 밤 10시가 다 됐다. 한국이었다면 어둠에 잠기고도 남을 시각이건만 백야가 흐드러지는 헬싱키의 밤은 대낮만큼 훤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미가 자신의 방 발코니로 나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건물 출입문이 열렸다. 널따란 어깨를 굼실거리며 다가와 큼직한 손으로 악수를 청하는 지미의 풍채는 아름드리나무를 닮아 있었다. 산소를 가득 품고 있을 두툼한 가슴통도 그랬거니와 건장한 체구 위로 흐르는 부드러운 미소도 한여름의 나무 그늘처럼 아늑했다. 그의 안내를 받아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최소한 자기소개라도 나눠야 할 텐데 자정이 코 앞. 날이 밝으면 여행길에 오를 지미의 사정을 떠올리니 마음이 더욱 분주해졌다. 폴란드와 체코에 다녀올 계획이라는데 아직 짐을 꾸리지 않았단다. 계단을 오르면서 지미에게 상황이 여의치 않은데 왜 내 카우치서핑 요청을 승낙했느냐고 물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왠지 이 친구만큼은 챙겨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단다. 


내가 여장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지미가 지도를 들고 와 현지에서 가 볼 만한 곳들을 조목조목 짚어 주었다. ‘아, 카우치서핑 호스팅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그냥 잠자리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호스트가 먼저 나서서 여행자를 돕는 거구나.’ 여행 준비로 분주한 와중에 시간을 쪼개 나를 돕고자 하는 지미의 모습이 고맙고 든든하게 느껴졌다. 여장을 꾸려야 해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할 것 같다고 했던 지미는 새벽 3시가 넘어서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기대를 안고 만난 두 여행자가 인연을 함부로 방치할 리 없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이제 막 날아온 자와 이튿날 유럽 어딘가를 향해 날개를 펼칠 자의 두 부리가 불꽃을 튀기며 부딪쳤다. 여행의 사연, 삶의 발자취가 복부 안쪽에서부터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이튿날 아침, 지미가 여장을 꾸리다 말고 승용차에 시동을 걸었다. 내가 전날 밤 사진 촬영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는 프로젝트를 들고 여행길에 올랐다. 그들이 ‘I am a forest’라는 문구와 이름을 자필로 적은 메시지를 들고 피케팅 퍼포먼스를 펼치는 모습을 이미지로 가공하는 작업. 사람의 관계망으로 숲의 형상을 만들어 볼 작정이었다. 첫 촬영이다 보니 참고용으로 보여 줄 결과물도 없고, 프로젝트의 당위성에 대한 설명도 옹색했지만 지미는 군말 없이 참여를 약속했다.


승용차가 닿은 곳은 지미네 집 인근의 숲 지대. 수직으로 곧게 뻗은 나무들이 병풍을 이룬 그곳에서 지미를 사진 찍었다. 첫 작업을 무사히 마무리한 순간이자 첫 번째 참여자를 배출한 순간이었다. 뜬금없는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 촬영이었지만 프로젝트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기분이 상쾌했다. 그러나 마음이 오로지 가볍지만은 않았다. 어떤 표정을 취하면 좋겠냐고 지미가 물어왔을 때, 이 프로젝트가 내 한계치를 초과하는 도전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직감했기 때문이다.지미의 질문은 이 작업이 단순한 수준의 촬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뢰할 만한 내용을 담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었다.


대략적인 밑그림만 머릿속에 있을 뿐 구체적인 설계도는 아직 없었다. 최소 열흘, 길게는 여행이 끝나는 시점까지 이어나가야 할 수도 있는데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땅에서 프로젝트를 계속 밀어붙일 수 있을지, 지미처럼 순순히 응해 주는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을지, 만난다고 한들 진정성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호기롭게 덤벼들었지만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야 하는 것이다. 인생이 으레 그렇듯 이 프로젝트도 크고 작은 난관에 봉착할 터인데 그것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둔다면 장기 여행의 고생에 더해 좌절감까지 끌어안아야 할 것이다. 능력도 안 되면서 기분만 앞세운 나 자신을 스스로 한심하게 여기게 될 듯했다.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게 나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미는 내가 자신의 집에서 한창 곯아떨어져 있던 새벽에 내 카우치서핑 계정에 방명록을 적었다. 방명록은 상호 합의한 숙박 기간이 지난 후에 적는 게 통례라고 들었는데 방명록이 전무한 내 계정으로는 카우치서핑을 성사시키는 데 곤란을 겪을 가능성이 많다며 여행 짐을 꾸리다 말고 노트북의 전원을 켰다. 곤한 몸으로 방명록을 적어 주고 촬영에도 일말의 의심 없이 응해 준 지미를 생면부지의 여행자가 벌인 일에 경솔하게 휩쓸린 인간으로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아득해졌다.


아무도 반겨 주지 않았던 여행의 출발점에서 유일하게 나를 환영해 준 지미와 인근 도로 위에 나란히 섰다. 생활인이었던 지미가 여행자로 변신하기 직전.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지미는 배낭을 메고 여행길로 나설 터였다. 나 또한 본격적으로 여행의 첫걸음을 내딛기 직전이었다. 작별 포옹을 나누며 여행의 안녕을 서로 기원한 후, 각자의 길 위로 올라섰다. 낡은 배낭 위로 출항의 깃발이 어수선하게 흩날렸다.




# 글로벌 사진 프로젝트 <I am a forest>


1st 퍼포머

: Jimmy


- 국적: 핀란드

- 촬영지: 헬싱키, 핀란드


세계 최고 수준의 숲 관리 정책을 펼치는 핀란드에서 나고 자란 지미는 촬영을 마무리한 직후, "한국의 숲이 소중히 보존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물심양면으로 배려를 아끼지 않은 지미에게 한국에서 챙겨 간 사진 중 '동행'이라는 제목의 사진을 건넸다. 개인적으로 무척 아끼는 작품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한 작은 선물이었다. 이 프로젝트의 첫 번째 퍼포머가 된 지미는 내가 여행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프로젝트에 대한 지지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하룻밤의 우정이었지만 지금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로 귀한 인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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