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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영진 Apr 19. 2018

쓰리 빌보드

인생은 코미디... 남이 보면.


<쓰리 빌보드>는 강간 후 죽임을 당한 딸의 엄마와 무능한 경찰들과의 갈등을 소재로 한 영화로 장르는 ‘코미디’이다. 블랙 코미디. 상황은 너무나 심각한데 생각지 못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그중 주목할 키워드는 ‘노력’이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다들 만만치 않은 문제들을 안고 있는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다만 그 노력들이 세련되지 못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계속 엇나가다 보니 웃픈 상황들이 연출되는 것이다. 또 다른 관람 포인트는 ‘미국’이다. 우리가 영화에서 익히 보아온 세련된 동부나 서부 도시가 아닌, 미국 중부 시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주인공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먼드)는 딸을 강간살인범에게 잃었다. 7개월째 경찰들이 아무 단서도 잡지 못하자, 그녀는 마을 외곽 3개의 입간판(빌보드)에 경찰서장 윌러비(우디 헤럴슨)를 비난하고 수사를 종용하는 메시지를 담은 광고를 세운다. 이 광고판이 지역 방송에 보도되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면서, 윌러비 서장과 지역 경찰들은 큰 부담을 느낀다. 하지만 윌러비 서장은 췌장암 말기의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기에 마을 사람들은 도리어 그녀를 비난하고, 윌러비를 존경하는 경찰관 딕슨(샘 록웰)과 일부 주민들은 폭력을 통해 이 광고판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밀드레드 역시 폭력적이기는 말이나 행동 모두 뒤처지지 않는다. 그렇게 등장인물들 사이의 갈등이 점점 고조되면서 이야기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이들이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는 과정에서 영화는 코미디가 된다. 주인공 밀드레드는 전남편의 트랙터를 팔아 광고비를 대고, 그녀를 만류하는 경찰관, 아들의 친구, 심지어 신부에게도 거침없는 욕과 폭력으로 응대한다. 그녀에게 갈등 해소 의지는 전혀 없다. 오로지 그녀가 원하는 것은 자기 딸의 사건이 계속해서 논란의 중심이 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녀와 가장 큰 갈등을 보이는 경찰관 딕슨은 광고판을 내리라며 광고회사 사장에게 린치를 가하고, 이 때문에 경찰서에서 쫓겨나게 된다. 영화 후반부, 밀드레드와 딕슨의 대화에서 둘의 공통점이 언급되는데, 그것은 근거 없는 희망보다 무식한  노력이 낫다는 행동파들의 신념이다


<쓰리 빌보드> 등장인물들은 어딘가 조금씩 부족하고, 모순덩어리들이다. 딸의 살해범에 대한 분노를 경찰들에게 돌리는 엄마 밀드레드, 무식하고 눈치 없고 19살 여자 친구와 바람난 그녀의 전남편, 췌장암 말기의 경찰서장, 인종차별주의자이면서 마마보이인 폭력 경찰, 밀드레드를 짝사랑하는 술주정뱅이 난쟁이 등, 다들 한심해 보이는 군상들이다. 그들은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지만, 한 치 앞을 보지 못하고 계속 부작용만 만들 뿐이다. 그래도 그들은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이 작품의 배경은 미국 중남부 미주리주이다. 가난하고 촌스러운 미국인들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은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알려진 미국의 이미지와 다르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남의 것 같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노력이라면 우리들도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 결과가 불분명해도 우리는 일단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존경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그 노력이 진정한 솔루션인지 확신이 없다. <쓰리 빌보드> 주인공들이 일단 저지르고 보는 것처럼. 그들의 노력들은 정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인지 단순히 분노나 초조함을 해소하기 위한 행위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밀드레드의 광고판도 그냥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엄마의 마음에서 나온 행위이다. 때론 그러한 노력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또 다른 큰 짐으로 돌아온다. 실제 우리들의 엄청난 노력들도 영화로 찍어 본다면 우습게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의미 없을지도 모를 노력은 하지 않는 편이 나을까?


난 ‘희망보다 노력이 낫다’는 대사를 ‘노력이 희망을 낳는다’라고 바꾸어 이야기하고 싶다.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미국과 한국 모두 미투(#MeToo) 운동이 한창이다. 한국 영화계도 미국만큼 많은 사례들이 공표되었지만, 아직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잘 모르고 있는 듯하다. 반면 올해 아카데이 시상식은 미국 영화계의 노력(행동)들을 볼 수 있었다. 우선 남녀 배우 시상 순서가 뒤 바뀌었다 - 남자 배우 이후 여자 배우 시상. 밀드래드 역을 맡았던 맥도먼드는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에서 모든 부분에 노미니되었던 여자 후보들을 일으켜 세우고 이들의 프로젝트에 투자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런 노력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모른다. 다만, 우리에게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해줄 원동력임은 분명하다.


무비인사이트, 아츠앤컬쳐 2018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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