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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영진 Dec 23. 2019

포드 V 페라리

덕후 중 최고는 양덕

두 명의 자동차 덕후: 캐롤 셸비(맷 데이먼)와 켄 마일스(크리스천 베일)

<포드 V 페라리>는 미국 포드와 이탈리아 페라리의 스포카 레이싱 경쟁에 대한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1960년대 초반, 매출 감소를 겪던 포드는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최고의 스포츠카 페라리 인수를 추진하나, 페라리 수장 엔조 페라리(레모 기론)는 모욕적인 언사와 함께 이 제안을 거절한다. 분노한 헨리 포드 2세 회장(트레이시 레츠)은 ‘르망 24시’ 레이스 우승을 지시하고, 마케팅 부사장 리 이아코카(존 번탈)는 이 대회 우승 경험이 있는 유일한 미국인 캐롤 셸비(맷 데이먼)를 찾아가 페라리를 이길 레이싱카를 만들어 달라 부탁한다. 


가장 거친 레이싱 경주로 유명한 르망 24시는 당시 페라리의 독무대였다. 프랑스 르망에서 열리는 이 경주는 24시간 동안 한 차량을 여러 명의 레이서가 교체 경주하여 가장 빠르고 내구성 좋은 차를 가려내는 레이스이다. 페라리는 이 대회에서 1960년부터 1965년까지 6년 연속 우승했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했기에 관객들은 영화를 보기 전부터 포드가 1966년 르망 24시 레이스에서 최강자 페라리를 박살내고 1, 2, 3 등을 모두 차지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시 이는 미국과 이탈리아의 자동차 기술력 경쟁 이상의 사건이었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60년대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으로서의 미국의 자부심이 여전하던 시기다. 반면 이탈리아는 추축국이자 패전국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엔조 페라리의 포드 인수 제안에 대한 거절과 모욕적인 언사는 단순한 경쟁 이상의 도발이었다. 영화 속 포드 2세는 셸비에게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 폭격기를 만들었던 포드 공장’을 보여주며 전쟁을 시작하라고 명령한다. 


이렇게만 보면 <포드 V 페라리>는 또 다른 ‘위대한 미국 만세’ 스토리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는 거대한 시스템과 경쟁하는 오타쿠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목과 달리 영화 속 갈등은 주로 미국 팀 내에서 발생한다. 거대 자본과 시스템을 근간으로 하는 포드사와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레이스카 덕후들인 캐롤 셸비와 그의 파트너 켄 마일스(크리스천 베일) 간의 싸움이다. 포드사는 자신들의 컨베이너 벨트 식 시스템에서는 페라리를 꺾을 자동차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셸비를 찾아왔고, 건강상의 이유로 더 이상을 레이싱을 할 수 없는 셸비는 최고의 레이서인 마일스에게 파트너가 되어 줄 것을 요청한다. 그럼에도 포드 회장과 부사장 리오 비비 (조시 루커스)는 끊임없이 이들을 견제하고 컨트롤하려 든다. 



켄 마일스는 사회적 잣대로 보면 사교성과 융통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이다. 레이싱 회사들과 스폰서들은 그의 탁월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이런 성격 때문에 그를 고용하는 것을 꺼려한다. 정비소 사장인 마일스는 차를 고치러 온 손님에게 제대로 변속하지 못한다며 면박을 주고, 레이스 대회 심판과 싸우는 그를 말리는 셸비에게 도리어 스패너를 던지며 화를 낸다. 셸비는 마일스를 이해하고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사람이다. 마일스가 던진 스패너를 액자에 넣어 보관하는 셸비는 그의 고집이 자동차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며 세상을 바꿀 에너지임을 이해하고 있다. 물론 그 역시 때론 포드의 대리인이 되어 마일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일스는 조금씩 셸비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요즘 기업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장 필요한 자원이 바로 제어 불능의 열정을 가진 오타쿠들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 열정과 전문성을 가진 이들은 돈을 주고도 구하기 어렵다. 설사 그런 이들을 찾아내더라고 컨트롤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귀중한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마일스와 포드로 대변되는 개인과 시스템의 대결은 현 영화계의 모순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할리우드라는 거대 자본이 스스로 혁신하고 새로운 경쟁자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타쿠들의 수용이 필요하다. <포드 V 페라리>는 이런 영화계 속 딜레마를 고민하는 장인들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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