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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영진 May 19. 2018

버닝

불안한 청춘... 언제까지 그래도 되는 걸까?

종수 (유아인)

이창동 감독이 대단한 이야기꾼인 건 잘 알고 있었다.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등 그의 전작들은 가장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것이어서인지, 다소 투박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그런데 <버닝>은 달랐다. 홍경표 촬영감독과 모그 음악감독 덕분인지 아주 스타일리시하다. 


게다가 주인공 배우들 3명 모두 젊고 매력적이다. 유아인은 몸빼바지를 입고 소 여물을 줘도 간지가 난다. 송강호나 설경구로는 도저히 나올 그림이 아니다. 여주인공 해미 역을 맡은 전종서도 매우 매력적이다. 스티브 연의 교포식 한국어 연기도 나쁘지 않았다. 


청년 종수(유아인)는 배달 아르바이트 중 판촉행사 도우미로 춤을 추던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를 우연히 만난다. 그녀는 아프리카 여행을 간다며, 부재 동안 고양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다음날 그녀의 자취방을 방문한 종수는 해미와 섹스를 하게 되고, 해미가 없는 동안 고양이 먹이를 주기 위해 정기적으로 그녀의 방을 들리면서 종수는 해미에 대한 연민을 키워간다.


벤 (스티븐 연)

초반  영화는 다소 지루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해미가 아프리카 여행에서 만난 ‘벤 오빠’ (스티브 연)와 함께 귀국하면서 영화는 미스터리 장르물이 되어간다. 벤은 포르셰를 몰고 고급 빌라에 살지만, 직업이 불분명하다. 종수는 불편해하면서도 종종 둘과 어울리는데, 어느 날 벤이 자신의 비밀스러운 취미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후 해미가 사라지면서 종수의 불안은 커진다.


청춘은 불안하다. 가난하고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요즘 세대의 젊은이들은 어쩌면 더 불안할 것이다. 이전 세대들이 제시했던 삶의 방향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수는 불안하다. 소설가를 지망하지만 무슨 소설을 왜 써야 하는지 잘 모른다. 그의 부모들은 그에게 어떠한 삶의 방향도 제시해주지 못한다. 15년 전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아버지는 공무원 폭행죄로 구속 재판 중이다. 기댈 수 있는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불안감을 극복하는 종수의 첫 번째 방법은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종수는 택배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살아간다. 소설을 쓴다지만 아직 뭘 제대로 써본 적이 없다. 밥을 먹기 위해 음식을 해야 하니까, 그래서 호박을 썰듯 그렇게 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신경 쓰이는 대상이 생기면서 (즉, 해미를 좋아하게 되고, 벤을 질투하게 되면서) 이런 방법은 유효하지 않게 된다.


종수가 택한 두 번째 전략은 어른들이 정한 규칙을 따라는 것이다. 닮고 싶지는 않지만 딱히 답을 모르기에 보고 배운 대로, 해미에게 꼰대스러운 충고를 해본다. “남자들 앞에서 창녀처럼 굴지 말라”라고… 당연히 결과가 좋을 리 없다. 해미는 종수를 떠난다.


종수가 택한 세 번째 전략은 “열심히 하기”이다. 사라진 해미를 찾기 위해 성실하게 해미 주변을 조사한다. 하루 종일 벤을 미행하기도 하고, 그녀의 집을 찾아가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의문만 커져간다.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도대체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 걸까?


종수가 택한 마지막 수단은 분노와 폭력이다. 믿기 힘든 진실을 마주했을 때, 도저히 자기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을 무렵… 종수는 극단적인 방법을 쓴다.


이 중 어떤 것도 ‘어른’들이 ‘청년’들에게 바라는 건설적인 해결안은 없다. 우리는 젊은이들이 스스로 노력해서 경제적 기반도 만들고 건설적인 삶의 의미도 찾기를 기대한다. 이 중 세 번째 “열심히 하기”가 가장 바람직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수습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능동적인 방안은 아니다. 


어쩌면 <버닝>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은 해미다. 그녀는 가난에 쪼들리지만, 팬터마임을 통해 감각의 본질을 고민하고, 여행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해미가 아프리카 여행에서 보고 싶었던 것은 육체적인 배고픔을 가진 ‘리틀 헝거’들이 인생의 의미를 찾는 ‘그레이트 헝거’로 변화해 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해미는 카드빚만 잔뜩 내고, 성형수술로 이뻐진 후 돈 많은 남자를 찾는 전형적인 된장녀이기도 하다. 


해미 (전종서)

<버닝>에서 가장 아쉬운 점 중 하나는 해미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미스터리 사건의 대상이기에 신비스럽게 감추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그녀가 능동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줬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이런 영화에서조차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노력하는 젊음을 보고 싶은 것은 역시 꼰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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