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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직원 Dec 14. 2020

PC하기 위해 돈이 드는 사회

- 윤리적이 되기 위해 돈이 드는 사회는 우울하다.


워낙 열이 많고 추위를 타지 않는 체질이라 겨울 외투도 얇은 걸 선호한다. 


그래도 제대로 된, 전문용어로 "돕바" 하나쯤은 있어야 할 듯 하여 새벽 세 시에 인터넷으로 한벌 샀다.


유럽산 침구에서 수집한 오리털을 재가공한 재생 다운이 들어 있고, 외피의 20퍼센트는 리싸이클한 페트 병에서 뽑아낸 폴리에스터 원사로 만든 원단으로 제작한 제품이다. 방풍이나 방수 등 기능성도 떨어지지 않고 여기저기 사용하기 편리한 디자인적 요소들이 있다. 오래간만에 쏙 마음에 드는 외투.


언젠가도 밝혔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난 10만 원이 넘는 옷은 거의 사 입지 않는다. 이 돕바 역시 마찬가진데, 내가 스톡 제품을 잘 골라서 그렇다. 


문제는 이 돕바의 실제 가격. 정가가 70만원 쯤 된다. 대개 친환경에다가 동물복지를 고려하고, 디자인까지 괜찮은 녀석들을 사려면 셔츠나 플리스 제품 같은 기본 아이템도 수십만원은 줘야 한다. 부담되는 가격이 아닐 수 없다. 


파타고니아에서 "이 자켓을 사지 마세요"란 비소비 캠페인으로 대박을 냈지만, 난 그 비싼 자켓을 살 돈이 없다 - 거리의 똑같은 디자인의 그 수 많은 고가의 파타고니아 플리스를 생각해보면 그 캠페인도 시효를 다 한 게 아닌가 싶기도.



요지는 뭔가 생태 친화적이고, 재생을 하고, 재활용을 하고, 동물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은 제품을 사려면 경제적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유니클로에서 3~4만원이며 살 수 있는 플리스를 생태 친화적 간지를 내려면 몇 십만원을 주고 사야 한다. 


이 이슈는 여러 책이나 기획 기사 등에서도 지적하는 부분인데 왜 재생제품, 동물에게 착하게 대하는 제품들은 더 비싸야 하는 것일까? 


의류라는 게 팔리지 않으면 백화점과 아울렛을 돌고 돌아 스톡 제품을 파는 인터넷 사이트에 도달한다. 거기서도 안 팔리면 정말 킬로그램 단위로 떨이 치기를 하는데 심지어 그렇게 해도 남는 장사라고 한다. 왜 파타고니아나, 캐나다 구즈, 프라이탁은 그렇게 비싸야 하는 것인지. 


노동자들이 일한 대가를 제대로 쳐주고 죽은 오리의 깃털만 쓰고, 생태를 파괴하는 화학약품 처리를 하지 않은 방수 원단을 쓴다고 해도 원가를 따져 보면 좀 의아한 구석이 많다.


윤리적 행위도 경제적 대가를 치루고 사야하는 세상이 꽤 오래 전에 도래했다. 결국 생태친화적으로 멋지게 차려 입고 다니려면 수백만원이 드는 세상이다. 과연 나 같은 소시민은 염색 약품을 그대로 하천에 흘려보내고, 15살쯤 된 소녀가 코피를 흘려가며 미싱질을 한 SPA 브랜드의 옷을 입어야 한다, 십 만원 이하의 예산으로는 말이다.


세계화된 신자유주의 치하의 경제 시스템에서 부유한 사람들은 여러 가지면에서 더 윤리적이 될 수 있다. 그들은 돈으로 도덕성을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십만원의 예산은 쇼핑으로 도덕성을 구현해 내기에 불가능한 액수다, 나처럼 우울증 걸린 새벽 세시 쇼퍼가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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