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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직원 Jan 13. 2022

돌핀과 G샥의 상관 관계

누구나 견뎌내야 할 어린시절이 있다.


어렸을 때 '돌핀' 시계가 유행을 했었다. 카시오 제품을 모방한 국내업체의 브랜드였고 초딩 남자 열의 일고여덟은 차고 있었다.(남은 둘셋 중 한둘은 카시오의 데이터뱅크를 차고 있었다)


검은색 레진 소재로 제작된 동그란 모양의 검은색 시계였는데 디지털계기판 주변이 오렌지색 테두리로 둘려 있었다. 특이하게 시계 글래스 하단에 누르기 편안하게 디자인된 케이크를 사등분한 형태의 버튼이 두개 붙어있었다. 스톱워치로 쓰거나 시간을 맞추는데 유용했다. 100미터 달리기 연습을 하면 친한녀석들이 옆에 붙어서 기록을 재어주기도 했다. 


아마도 내 또래 사이서 G-샥의 인기가 여전한 이유 중 하나는 나처럼 돌핀의 추억을, 혹은 아픔을 지닌 이들이 지닌 레진 재질을 한 터프한 외모의 시계에 대한 향수 덕일 것이다.


너나할 것 없이 차고 있으니 나도 하나 쯤은 가지고 싶었다. 주로 내 시계는 아버지 회사 거래처에서 나온 가죽 끈이 달린 어른들의 아날로그 시계였다. 넉넉치 않은 사정에 워낙에 어머니가 소비재 구매에 대해 엄격하셨던 터라 졸라 보지도 못하고 지레 포기했었다.


2019년 어머니와 둘이 떠났던 제주여행. 출국장 면세점에서 쇼케이스 너머로 들여다 보던 G샥 5600 모델을 어머니께서 사주셨다. 태양열로 충전되는 터프솔라모델이다.

 

칠순을 넘긴 모친이 마흔 넘은 아들한테 사줄만한 시계는 물론 아니다. 10만 윈이 채 안 되는 시계는 비싸지 않았지만 기쁨의 크기 만큼은 컸다. 


누구나 견뎌내야 하는 어린시절이 있다.  왠지 그 부분에 대해 어머니께 칭찬 받은 느낌이었다. 


"잘 견뎌주어서 고맙다, 아들아."


인생을 견디다 보면 종종 치유의 순간이 찾아온다. 운이 좋으면 치유가 물리적인 징표를 남겨 주기도 한다. 나에게는 이 플라스틱 시계가 그렇다. 빛만 받고도 잘 가고, 아이스하키 퍽으로 써도 될 만큼 튼튼한 녀석을 선물로 받았으니 앞으로 종종 우울할 때 볕도 좀 쬐고 씩씩하게 잘 견뎌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무엇보다 시계가 참 예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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