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신정에는 전부 일출을 보러 갈까?
새해에는 왜 전부 일출을 보러갈까? 신정이 달이 기우는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명절은 대부분 만월과 연결되어 있고 소원을 비는 행위는 달과 관련있다.
어김 없이 초하루의 달은 손톱깎이에서 막 튀어나간 듯한 그믐달이다. 바람을 담기에는 초라해 보인다.
나의 가장 큰 증세랄까, 진단명은 무망감이다. 바라는 바가 없음의 상태가 지속된지 오래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모종의 희망을 가져보고 싶지만 그믐 달에 서린 서늘한 불안이 나에게는 더 익숙하게 되었다.
다행인 사실은 달은 기울면 반드시 차오른다는 점이다. 해는 언제나 가득 채우고 채워져 있고 기울어지지 않는데 이것이야 말로 절망이 아닐까? 누구도 그런 상태로 살 수 없다. 충만한 상태의 지속이야 말로 인간에게는 지옥과 같은 상태다. 지옥의 이미지가 어두운 달의 이미지가 아닌 불타오르는 과에너지의 세계인 것에는 이유가 있다.
언젠가는 차오를 그믐달의 싸늘함이 가능성 따위로 느껴지는 첫날이다. 어차피 어제에 이은 오늘이고 그믐달 역시 12월 31일에 떠올랐다 여전히 하늘에 떠 있다. 전년이니 새해니 하는 것은 이제 크게 의미가 없다. 언제 차오를 것이냐의 문제다. 그리고 기우는 시기를 어떻게 비우는 시기로 만들고 그렇게 태도나 방법을 바꾸어 살아갈 것이냐의 문제다.
새해 아침에 기운 달을 보는 행위가 남다르고 그렇게 건강하지 못한 시선일 수 있겠다. 언젠가 차오르고 부풀어 오를 달을 생각해보면 이미 넘쳐버린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일출을 관망하는 것보다 희망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말이지.
조증에 걸린 태양보다 우울하더라도 때에 맞춰 회복하는 탄력성을 지닌 달이 좋다. 달과 같이 기울고 비울 때, 다시 모양을 갖추고 채울 때를 아는 지혜와 요령, 끈기를 가지고 싶다. 왜 끈기냐면 우울이나 삶이라는게 늘 되풀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