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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문영 May 23. 2017

침대는모다


#타율적글쓰기 

그곳은 A씨가 어쩐지 가고 싶었던 곳이었다.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을 것도 같았다. 그래도 큰 마음 먹고 왔으니…“여보세요오~.” 라고 A씨가 말하기 무섭게 굳게 닫힌 철문은 스스륵 열렸다.
 A씨는 결혼을 하였다. 별로 끌리지도 않는데 그럭저럭 밥은 먹고 산다는 남자의 말을 듣고서였다. 아이 하나를 낳았고 맞벌이 중이었다.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오로지 A씨가 해결해야 했다. A씨는 가끔 회사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가 텅 빈 동공으로 어딘가를 바라보는데 좀 무서운 데가 있었다. 그 눈은 세상에 대한 체념 같기도 했고 뭔가에 대한 항변 같기도 했다. 교회에 가면 무서운 집중력으로 통성기도를 바치는데 그 모습도 좀 무서운 데가 있었다. 마치 평소 타인에게 히스테릭하게 반응한 자신에 대한 자책감 때문 같기도 하였다. A씨는 좋은 가정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부당하다 생각하면서도 남편의 모든 말에 순종하였다. 가정이 ...없는 삶은 A씨에게 너무 두렵고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히스테리를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야 왜 저 사람이 내게 신경질을 부릴까, 하는데, A씨는 A씨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그것을 조리 있게 타인에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딱히 조리 있게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그저 세상은 A씨에게 폭력이었고 그 폭력을 내면에 쌓아두고 있다가 자신보다 약한 이에게 풀 뿐이었다. 별로 잘못한 것도 아니지 않나? 교회에서 제대로 참회만 한다면. A씨의 남편이 말했다. “침대가 뭔가 이상한데?” 그러고 보니 침대를 산지 이제 7년이 지났다. 그 정도면 망가질 법도 하였다. “어, 다른 침대를 찾아 볼게. 중고로.”
희한하게도 창고 내부에는 가구나 가전보다는 만화책이 더 많았다. 그 큰 창고에 전 세계의 모든 만화책이 다 모인 것 같았다. 창고 한 가운데에 놓인 침대가 있었다. 그곳에 드러누운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만화책을 보고 있었다. 아이는 벌떡 일어나며 A씨에게 말했다. “어 왔어? 기다리고 있었어.” A씨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주인은….” “신경 쓸 것 없어. 자, 자.” 아이는 침대에 A씨를 눕혔다. 아이가 말했다. “최근에 꾼 꿈이 뭐야?” “어, 요즘에는 꿈을 별로 꾸지 않는데…” A씨는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아이의 말에 대꾸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럼 좋은 꿈 꿔.” 라고 아이가 말하자마자 A씨는 꼬무룩 잠에 빠져들었다. A씨는 흙장난을 하고 있는 자신을 확인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꿈속에서 5살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간 것이다. 한 시간에 한 대꼴로 A씨 위로 비행기가 스쳐지나갔다. A씨는 그 비행기를 볼 때마다 무슨 생각을 했던가. 비행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찰라적인 그 생각은 A씨를 묶어놓지 못했고 결국에는 그 꿈은 정말 물거품이 되었다. A씨는 그때로부터 삽십년에 가까운 인생을 꿈속에서 되짚었다. 하고 싶은 걸 이룬 것보다 체념하고 포기한 것이 더 많았다. 그것 때문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죄도 지었다. 생각해 보면 간단한 것이었다. A씨는 눈을 떴다. A씨의 인생에서 이렇게 활기 넘치고 생명력이 넘쳤던 적은 없었다. 당장 A씨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우리 이혼해.” 남편은 바로 그러자고 말했다. 아이는 자신이 키우겠다고 말하면서. 그동안 고생이 많았겠다고 말했다. 재산도 당신이 하자는 대로 나누자고 하였다. 아직도 문젯거리는 산재했으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A씨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살아가고 싶다는 의지로 불탔다. A씨는 경비행기든 여객기든 비행기 조종을 할 작정이었다. 지금껏 그 길을 가로 막는 것은 오로지 자신뿐이었다. 그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A씨는 아이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아이는 싱긋 웃었다. “제대로 설명할 자신은 없어. 내가 문과라서.”아이는 말을 이었다. “침대는 과학이거든.”
#침대는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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