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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하고도 중요한 수행평가

긴급하지는 않지만 너무나 중요한 것들을 지킬 수 있을까.

by 포도나무

수행평가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다. 교사의 입장에서도 수행평가의 부담에 허덕이는 고등학생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다.


1. 학기당 최소 20개?


한 학기에 10과목을 수강한다고 가정해 보자. 과목당 2개 이상의 수행평가를 치르기 때문에 단순히 계산해 봐도 학생들은 한 학기에 최소 20번의 수행평가를 치르게 된다.


한 학기 17주를 기준으로 학기 초, 중간고사, 기말고사 기간을 제외하고 20번의 수행평가를 치르려면 사실상 늘 평가의 부담을 안고 있는 셈이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자신의 학습상태에 대해 되돌아보고 공부의 흐름을 기말고사까지 이어가야 하는데, 많은 학생들이 그 사이에 쏟아지는 수행평가에 온 에너지를 쓰게 되는 현실.


결국 수많은 수행평가로 인해 공부의 흐름을 이어가기가 어렵다.



2. '과목별 세부능력 특기사항(과세특)' 기록을 위한 수행평가


과목별로 논구술형 수행평가를 적어도 하나 포함하도록 권하기도 한다.


한 반 학생수를 25명으로 잡고, 4개 학급 수업을 맡고 있는 교사라면 약 100명의 학생들에게 약 500자의 과세특을 기록해야 하는 현실. (100명*500자=50,000자)


만약 한 반에 2시간씩 8개 반 수업을 담당하는 교사라면 학기당 200명의 과세특을 기록해야 한다. (200명*500자=100,000자)


여기서 학생별로 개별화가 되고 관심분야가 드러나게 과세특을 쓰려면 결국 과목별로 탐구보고서 형태의 수행평가를 하나씩 실시하게 된다.


요즘 수행평가 부담에 대해 사회적 이슈가 되다 보니 밤을 새워서 해오는 '과제형'이 아니라 '과정형'으로 수업시간 안에 평가를 실시하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아무리 '과정형'이라 하더라도 미리 주제를 탐색하고 자료를 찾아보고 준비하는 노력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과정형'이라고 학생들 부담이 줄어들까. 학생들 입장에서는 수행평가도 어쨌든 '평가'이므로 감점당하지 않고 만점을 받기 위해 완성도를 높이려고 최선을 다하게 마련이다.






또한 과정형 수행평가를 치르는 동안 교과 진도를 나갈 수업시간이 그만큼 할애된다는 것이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부담이다.



3. 대입(학생부종합전형)으로 이어지는 수행평가


수행평가는 고교 교사의 평가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학생부종합전형이라는 대학입시전형에서 학생 개개인의 학업역량, 진로역량을 평가하기 위해 입학사정관들이 눈에 불을 켜고 과세특 내용을 분석할 터인데... 학생들이 탐구보고서 형태의 수행평가에 얼마나 공을 들이겠는가.


실제로 학생들은 학년별로, 학기별로, 교과별로 연계성과 심화, 확장 여부까지도 신경 써야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와 탐구활동을 해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으니까.


이것은 학생의 부담에 그치지 않는다. 교사에게도 부담이 되는 지점이다. 학생생활기록부에서 숫자는 학생 몫, 글자는 교사 몫이라는 부담이 얼마나 큰 지. 교사 역시 학생을 평가하면서 동시에 대입에서 평가받는 느낌이랄까.



4. 평가방식이 다양하면 좋은 것 아니냐고요?


지필평가로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 방식이 다양하면 좋은 것 아니냐고요? 물론 지필고사 성적은 낮아도 수행평가를 성실히 잘 해내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상위권 학생들에게는 평가의 다양화는 감점 요소가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모든 평가를 완벽하게 챙기려다 보니 늘 긴장과 압박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94학년도 수능을 2번 시행했던 것도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두 번의 시험 부담을 안겨주었다고 하지 않는가. 게다가 중간고사, 기말이라는 지필고사와 여러 수행평가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서 100퍼센트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두를 합산하여 총점을 만드는 구조이니.. 결국 학생들에게 평가방식이 다양한 것은 감점당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5. 상대평가!! 결국 상위권 변별은 지필고사 성적!


한 학기 동안 20회의 수행평가를 치르느라 애쓴 학생들.. 그리고 그런 수행평가에서 학생들의 불만이나 학부모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계획부터 시행, 채점에 이르기까지 신경을 곤두세우는 교사들의 수고..


하지만 결국 상대평가에서 변별은 지필고사의 몫이다. 상위권 학생들의 수행평가 점수는 대체로 우수하다. 만약 상위권 학생들을 수행평가 점수로 무리하게 변별하려고 했다가는 채점 기준에 대한 민원이 쇄도할 것이 뻔하기에.. 결국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의 고난도 문제에서 상위권 변별이 이루어진다.


결국 치열한 상대평가 하에서 내신 경쟁을 해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점수가 가장 중요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차분히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절대적인 공부 시간이 충분히 확보되어야 하는데 어느새 수행평가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해 버렸다.



6. 대입을 위한 또 다른 관문, 수능!


게다가 이게 다가 아니었다. 결국 고등학생들의 대입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즉 수능이라는 어마어마한 관문도 남아있다. 눈앞에 닥친 수행평가에 신경 쓰고, 지필고사에 에너지를 다 쏟아붓는 동안 고3, 11월에 치르는 수능이라는 관문을 자꾸만 잊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 N수생이 늘어간다.)


시간관리법에 대한 책을 읽다 보면 4가지 분류를 소개한다. 긴급하고 중요한 일, 긴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 긴급하지만 중요하지는 않은 일, 긴급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


어쩌면 '수행평가', '지필평가'는 학생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자주 찾아오는 '긴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반면 '수능'은 고1들에게 '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시간관리를 잘하려면 바로 '긴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에 시간을 써야 한다는데.. 고등학교 현실에서 우리 학생들이 수능 준비에 마음을 쏟기에는 수행평가의 부담이 너무 크기만 하다.




그렇다면 고등학생들에게 '긴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이 수능뿐일까. 사실 고등학생들에게는 수능 못지않게, 아니 수능보다도 더 중요한 과업이 있다.


자신에 대해 탐색하고, 생기부 기록에 관계없이 읽고 싶은 책을 맘껏 읽기, 좋아하는 과목 파고들며 공부하기, 맘 편히(!) 합창대회나 체육대회, 현장체험학습으로 친구들과 소중한 우정과 추억 쌓기,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 보내기 등...


우리 고등학생들이 끝없는 수행평가의 부담에서 벗어나 긴급하지는 않지만 너무나 소중한 일들을 이루어갈 수 있기를.




※이미지 출처: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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