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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가는대로 Feb 02. 2024

연중 제5주일

약한 이들을 얻으려고 약한 이들에게는 약한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가끔 아내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너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이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함께 한 시간이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당신은 이해할 수 없어라는 다소 단정적인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니야 내가 왜 이해를 못 해, 나도 이해할 수 있어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 있습니다. 아내가 거쳐온 시간과 공간을 제가 함께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함께 했더라도, 감각과 정서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감정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당신은 이해 못 해라는 말을 들으면 그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제 감정과 경험도 아내는 저와 똑같이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이 있을 겁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모임 또는 조직이 있습니다. 종교도 그중에 하나이고, 나라도 회사도 가정도 모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특히 그 많은 종교 중에 그리스도교만이 가지는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신이 스스로 인간이 되어 인간들 안에서 힘없고 작은 인간으로 함께 사셨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옥좌에서 내려다 보아도 다 알 수 있으셨지만, 거룩하고 전지전능한 하느님의 모습을 잠시 뒤고 하고, 누가 돌봐주지 않으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아기로 태어나셨습니다. 그것도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마구간에서 말입니다.


박사학위를 받고 회사에 들어왔을 때의 일입니다. 지금은 장비를 사면 물건을 배달하고 설치까지 해주지만, 당시에는 설치는 해주었지만, 물건을 건물 앞에 놓고 가던 시절이었습니다. 냉장고 보다 더 큰 장비는 나무상자에 포장되어 있었습니다. 실험실로 장비를 옮기려면, 먼저 포장을 뜯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장도리를 들고 상자 위로 올라갔습니다. 포장을 풀어 실험실에 옮기고 나니, 한 후배가 제게 박사 맞습니까, 어디서 이런 걸 배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냥 웃고 넘어갔지만, 어떻게 제가 할 줄 알았을까요? 저는 대학원 시절에 같은 일을 여러 번 해봤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해서 심지어는 설치도 교수님과 함께 직접 했었기에 포장을 뜯는 것은 제게 큰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일하는 방식이 바뀌어서 별 도움은 되지 않지만, 사원 생활을 하고 난 후에 박사 공부를 하고, 관리자가 된 것도 당시에는 큰 행운이었습니다. 사원들이 실제 어떻게 일하는지 그래도 조금은 알고 있었기에, 업무를 고민하고 방향을 정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한 명에게라도 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예수님을 따라 백성들과 같은 모습으로 같은 마음으로 살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성직자, 수도자들이 예수님이 사셨던 방식 그대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도 필요하지만, 하느님을 몸으로 보여주시는 분들 덕분에 세상은 살만 한 곳으로 남아 있습니다. 소록도에서 환우들과 함께 하셨던 수녀님들, 한 끼 따뜻한 밥을 제공하기 위해 소외된 사람 곁에 머무르시는 신부님들, 노숙자들의 치료를 맡아 주시는 의사 선생님들이 세상을 따뜻하게 합니다. 예수님을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하라고 했지만, 잘 못합니다.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은 있습니다. 지금은 제 경험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내가 해봤어, 내가 잘 알아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그렇구나, 그랬겠네, 그렇게 합시다 하고 말입니다. 세상이 제게 더 겸손해지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 중에 기억하고 함께 하겠습니다.


“약한 이들을 얻으려고 약한 이들에게는 약한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 고린토 1서 9,22


예수님이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지 않고, 아기로 태어나셔서 너무 다행입니다. 권력으로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삶 안에서 우리를 부르셔서 너무나 좋습니다. 말로만 우리에게 지시하신 것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에 감사하며, 우리도 주님과 함께 할 것을 약속합니다.


주님 항상 우리와 함께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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