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맘가는대로 Feb 09. 2024

연중 제6주일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세상은 정말 다양합니다. 점점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군대조차도 이제는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개인의 능력 차이와는 상관없이 똑같은 공부를 하던 학교도 더 이상 없습니다. 질문을 하면 수업 시간에 방해가 된다는 소리까지 들었고, 선생님이 칠판에 적은 것을 공책에 깨끗이 옮겨 적고, 그대로 외워서 정해진 답을 누가 더 잘 기억하는가를 확인하던 시대는 더 이상 없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던 것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가지 말라고 하는 길을 가면서 새로운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이 다양해졌음에도 아직도 우리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장애와 질병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장애를 가지면, 천벌을 받았다고 생각했고, 질병은 죄악에서 시작되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들을 피하게 되고, 심지어는 죄인 취급을 하였습니다. 모두가 율법 뒤에 숨어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했습니다. 단 한 사람, 예수님만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면서 시작된 신약시대는 예수님으로 인해 정말 많은 것이 구약시대와는 달라집니다. 세상의 죄인들, 소외받은 사람들에게 어쩌면 공개적으로 다가간 사람은 예수님이 처음이 아닐까 합니다. 인간이 정한 선과 악으로 나뉘어진 세상에 하느님 기준의 선과 악을 보여주셨습니다. 아픈가 성한가가 아니라 하느님 말씀을 따라 사는가 아닌가로 그 기준을 바꾸십니다.


아직도 우리는 장애인, 노약자, 질병을 가진 사람, 가난한 사람에게 어디까지 해주면 되는지를 논쟁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일원으로 완전히 받아주기 위해 그 불편함을 해소할 방법을 찾는 것도 하지만, 그 한계를 가지고 갑론을박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디까지 할 수 있습니다라고 아무리 말해도 당신들은 여기까지만 하면 됩니다고 한계를 정합니다. 저 역시 모든 논의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밖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래도 상대방을 배려하려고 하지만, 때로는 다른 의미의 개인적 기준으로 사람을 분류하기도 합니다. 의식적으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지만, 무의식 중에 세상의 기준으로 사람을 다르게 대하기도 합니다. 온전히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을 제 맘대로 나누는 큰 잘못을 합니다. 했습니다라고 과거로 적고 싶지만, 지금 묵상 중에는 아직도 예수님처럼 모두를 완벽한 하느님의 창조물로 대하지 못하는 제가 보입니다. 잠시 다시 한번 반성합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마르코 1,40


오늘 복음에는 병자를 고쳐주시는 예수님이 나옵니다. 저는 예수님과 함께 병자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은 모두 매우 단순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복권을 샀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받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복권이 없는 사람이 복권에 당첨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치유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도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굳은 믿음과 예수님께 나아가는 용기입니다. 오늘 나병 환자도 예수님이 고쳐주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믿음도 중요하지만, 믿음 향해 가는 용기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 곁에서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기다리시지만, 곁에 계신 예수님을 느끼지 못하고, 한 발 더 다가가지 못하면 어떠한 은총도 받을 수 없습니다.


기적은 간절히 바라는 것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기적은 가만히 있는데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끔 우리는 기적을 알아채지 못하기도 합니다. 소풍 전날 맑은 날씨를 간절히 바라는 아이에게 소풍날 화창한 날씨는 하느님의 선물이고, 놀라운 기적입니다. 같은 날 아침에 눈을 떠서 오늘 날씨 참 좋네라고 하는 사람의 상쾌한 아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햇살이 됩니다. 중요한 약속에 늦어서 막 뛰어가고 있는 사람 앞에 평소에 그렇게 보이지 않던 택시가 서있다면 그것이 기적입니다. 기적은 지금도 우리에게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간절히 바라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으면, 생각하지도 못하는 순간에 바로 그 일이 이뤄집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도 같은 의미가 아닌가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간절히 바라는 것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풍족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실패도 많이 경험하고, 희망도 줄어들고, 현실에 안주하고, 도전보다는 안정을 바라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다시 한번 하느님의 은총은 간절히 바라는 사람에게만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이전 11화 연중 제5주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