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을 부르는 존중
말과 말투가 내 가치의 출발점을 정한다
다른 분들이 저를 보면, 외향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다양한 검사에서는 내향적인 성향이 조금 더 강하게 나옵니다. 저도 스스로를 내향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모르는 사람을 처음 만나면 매우 긴장합니다. 적절한 관계가 설정되기까지 항상 긴장하고 있습니다. 저만의 관계를 정의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들으려고 먼저 노력합니다. 동시에 평소보다 말수를 줄이고, 말과 행동에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관계를 만들어가시는지요? 저는 서로 존중하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존중이 신뢰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경험적으로 서로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사무적이고 계산적인 관계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경청이 존중의 기본이라는 것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경청에 덧붙여서, 저는 처음 모르는 사람을 뵈면, 그분의 말투에 큰 관심을 가집니다. 눈에 보이는 외모는 잠시 관심을 끌게 되지만, 상대방을 제 방식대로 이해하는 데는 말이 더 큰 작용을 합니다. 말과 말투에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이 있는지가 담겨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함께 상대방의 말에 진실이 담겨 있는지, 상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지를 저는 봅니다.
웨이터 룰이라고 하나요? 모르는 사람과 만났는데, 그 사람이 주변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는 것이지요. 자신에게 친절한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직접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친절한가를 보는 것입니다. 관계나 상황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사람이라면, 주변 상황이 달라지고 관계가 변해도, 저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최근 많은 회사들이 직급 대신에 “님”이라고 호칭을 통일한 것도 회사의 구성원이고, 조직의 한 명이기 이전에 성숙한 한 사람으로 서로를 대하자는 것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 어떤 상황에서도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존중받는다고 느껴지면, 그 사람을 더 만나고 싶어지고, 존경하게 되곤 합니다.
존중은 다름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합니다. 회사에서 하는 일에는 절차가 있고, 정답이 있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모든 사람이 같을 수도 없고, 같아서도 안 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설비를 이용해서 제품을 만든다면, 누가 해도 같은 제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사람의 개입이 가능한 적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동화 공정이나 스마트 팩토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설비의 능력을 믿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능력을 믿는 것이라면 우리는 항상 다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를 존중할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데, 비행기로, 기차로, 배로, 자전거로, 또는 도보로 간다고 생각하면 상황에 따라서는 빨리 가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지만, 가는 방법에 따라 과정 중에 만나게 되는 사람과 풍경이 다르고, 배움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부산에 도착했을 때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 또한 다름을 배워가는 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목표가 같으면 같은 방식으로만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열이 나뉩니다. 선후, 상하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그러면 존중보다 평가가, 호기심보다는 판단이 개입하게 됩니다.
다음은 말에 진실함이 있는지를 파악하고자 합니다. 짧은 시간에 진실인지 아닌지를 알기는 어렵지만, 아마 여러분들도 상대방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신만의 느낌으로 진실함을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 번 만나도 같은 이야기를 하는지, 상황에 관계없이 자신의 의견이 있는지를 봅니다. 만일 의견이 바뀌게 되었다면, 스스로가 의견이 바뀐 것을 인지하는지가 말에 진실성이 담겨있는지를 보는 기준이 됩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만 진실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진실한 사람이 다른 사람도 진실하게 대합니다. 진정성이 담겨 있는 응대가 존중의 다른 말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하면 제 이야기를 더 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가능합니다. 그러나, 자신만의 의견을, 또는 자신의 부족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할 수밖에 없을 때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저는 더 믿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서 약점을 찾기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제 의견이라고 해서 반드시 채택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논의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가끔은 더 강하게 주장하지 못했음을 후회하기도 하지만, 결정에 참여한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면, 저는 어떤 결정이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상대를 존중하는 사람의 말속에는 겸손함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식이 쌓이면 교만해지거나 겸손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위치가 올라가고 지식이 쌓이면서 그렇지 못한 사람을 무시합니다. 자신이 아는 것이 더 중요하고, 다른 사람이 잘 아는 분야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지식이 쌓일수록 겸손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배우면 배울수록 모르는 것이 늘어나고, 과거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 틀렸거나, 지금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이 어렵고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만큼 다른 사람들의 역할도 어렵고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느 자리에 있던 그 사람의 깊이를 존중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존중받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는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내가 먼저 상대방을 존중하면 대부분의 경우에 상대방도 나를 존중하는 것을 느낍니다. 물론 모든 말에는 행동이 뒤따라야만 힘이 생기고, 신뢰를 지킬 수 있습니다. 말보다 행동이 더 중요하다는 것에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결과가 좋다고 해도, 말에 존중이 담겨 있지 않으면, 존경받을 수 없습니다.
존중은 사람을 가려서 할 수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드러나는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습니다. 한 번쯤 자신의 말투를 돌아보십시오. 상대에 대한 존중이 내 말과 말투에 담겨있는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