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를 주는 일관성
예측가능한 사람이어야 믿을 수 있다.
1%의 확률로 10억 받기와 90%의 확률로 1000만 원 받기를 한다면 어느 것을 택하시나요? 액수의 차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람의 성향을 알아볼 수 있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이나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가끔 큰 선물을 하는 사람과 자주 작은 기쁨을 주는 사람,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확률이 낮은 사람과 이 사람에게 맡기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이 가능한 사람 중에는 누구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불확실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뒤가 궁금한 추리물보다는 결말이 예상되는 액션물을 좋아합니다. 회사에서는 불확실한 것을 하나씩 지워가는 것이 리더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결과가 명확한 것은 실행만 하면 되니, 실행이 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면 됩니다. 그러나 미래가 불확실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함께 고민하고, 찾는 것이 선행되어야 함께 한 수고를 성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이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는 어떨까요? 불확실이라는 표현보다는 일관성이라는 표현이 사람들에게는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여기 두 가지 부류의 부모가 있습니다. 아이가 85점을 받아왔습니다. 그러자 한 부모는 잘했다고 하면서 앞으로 더 잘하자고 했습니다. 다른 한 부모는 적어도 90점은 받아야지라고 하면서 칭찬을 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아이가 다음 시험에는 90점을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틀린 문제가 너무 쉬운 것이었습니다. 지난번에 85점에 잘했다고 했던 부모가 이번에는 이렇게 쉬운 것을 틀리면 어떻게 하냐고 하면서 앞으로는 더 잘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부모는 90점을 받느라 정말 고생했구나 했습니다. 아이에게 어느 부모가 더 좋을까요? 아이에게는 예측 가능한 부모가 더 좋다고 합니다. 같은 행동에 칭찬을 하기도 하고, 야단을 치기도 한다면, 아이는 자신의 행동이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에 혼란을 느낀다고 합니다. 자주 칭찬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칭찬받을 일에 칭찬하고, 질책받을 일에 질책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부모가 다른 일로 너무 기분이 안 좋아서 평소에는 화를 내지 않던 일에 아이에게 심하게 화를 낸다면 아이는 지금 칭찬을 받고 있는 모든 행동도 언제 비난을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하게 된다고 합니다. 특히나 가치관이 완전히 확립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더 중요하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부모와 자녀 간에만 성립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관계에서는 항상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상황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면, 행동이 달라지는 원인과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함께 있으면 불안할 수도 있습니다.
같은 식으로 회사에서도 리더는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팀장이라면 이런 상황에는 이렇게 결정하고, 행동할 것이라고 함께 일하는 분들이 생각한다면,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면, 팀원들은 팀장의 결정이 없어도 스스로 움직이게 됩니다. 문제가 발생해도, 주저하지 않고 문제 해결을 시작하게 됩니다. 팀장이 같은 상황에서 과거에 어떻게 했는지 알고 있고, 팀장의 일관성을 믿는다면 다시 같은 결정을 팀장이 내리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팀장이 같은 문제라도 상황에 따라 접근하는 방법이 달랐다면, 어느 누구도 선뜻 앞장서서 문제 해결을 시도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무리 반복되는 일이라도 팀장의 이번 문제에 대한 결정을 받아야만 합니다. 이것이 팀장과 팀원 간의 신뢰가 됩니다.
제가 과거에 함께 한 상사분 중에 모든 결정을 해야만 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작은 일도 다 확인하고, 결정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적인 자리에서 모든 결정을 하려고 하니 시간도 없고, 너무 힘들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참 의외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몇 가지 일은 앞으로 제가 결정하고 진행하겠습니다라고 하고, 그날부터 의사 결정권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제 의사 결정이 그분의 맘에 들지 않으셨고, 모두 있는 자리에서 왜 이런 결정을 본인과 상의하지 않았냐고 하셨습니다. 결국 그날 이후 다시 모든 결정은 그분께로 돌아갔고, 그분은 다시 과거와 같이 작은 일까지 다 결정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분의 생각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 상황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 저는 가끔 회의 중에 참석자들이 지난번 논의한 적이 있다고 말씀하시면 뜨끔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어떤 의견을 드렸는지 기억을 못 할 때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면 저는 제가 그때는 뭐라고 했나요라고 묻습니다. 다행히도 그때도 같은 의견을 주셨습니다라는 답을 들으면 마음이 놓이고 편하게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그때는 다르게 이야기하셨습니다라고 하면 그때부터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제 스스로 왜 그때와 다른 의견을 지금은 가지고 있는지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못 찾으면 저는 그 문제를 대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냥 시험문제를 찍은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때의 상황을 더 물어보고,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고,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다르기 때문에 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리더의 생각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예측 가능하도록 리더가 생각을 정리하고 전달하는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이유로 저는 보고받는 내용이 지난번과 달라지면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분명히 달라진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이유를 어쩌면 더 집요하게 물어볼 수밖에 없습니다. 보고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제가 함께 일해온 대부분의 리더분도 작은 차이에 민감하게 질문하셨습니다. 항상 많은 결정을 해야 하는 자리에 계시다 보니, 작은 숫자 또는 달라진 사실 하나가 전체 결정을 바꿔야 할 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리더들은 역할이 커지면서 그러한 성향이 더 커졌었습니다. 그래서 논의할 내용이 이미 논의가 된 적이 있는 것이라면, 지난 논의와 결론을 꼭 다시 한번 확인하고, 같은 것은 왜 여전히 같고, 다른 것은 왜 달라졌는지를 함께 고민한다면, 실행력이 더 높아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항상 같은 생각을 가지고 지낼 수는 없습니다. 아니, 그래서도 안됩니다. 안되었던 것을 되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달라지고 기술이 발전하면 안 되는 것도 되어야 하고, 당연한 것도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100의 노력으로 안되었던 것이 150의 투자로는 될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상황에 맞춰 변화해야 합니다. 생각도 행동도 변해야 합니다. 그러나 꼭 알아야 할 것은 왜 변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누군가 왜 지난번과 다른 결과를 가져왔는가라고 묻기 이전에 지난번과 이러저러한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른 결론을 가져왔습니다라고 먼저 이야기해야 합니다. 가끔은 지난번 것을 본인이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인지하는 그 순간에 무엇이 차이를 만들었는지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생각이 바뀌는 것은 나약하거나 창피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생각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강하고 용기 있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먼저 자신의 생각이 잘 정리되어 있어야만 바뀐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결정이 과거보다 더 좋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를 항상 하고 있어야만 주변이 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예측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약속 장소에 갈 때도 몇 시에 출발하면 제시간에 도착할 것인지를 따져봅니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대부분은 예상하는 양과 맛이 있습니다. 그 예측이 맞으면 별생각 없이 지나가지만, 예측과 다른 결과를 얻으면, 행복해하기도 하고 때로는 실망하기도 합니다. 일상은 예측하지 못한 행복으로 더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지만, 회사 일은 예측하지 못한 성과는 결국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사람도 그랬습니다. 매번 약속을 지키던 사람이 한번 약속을 못 지켰다면,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다음에는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이번이 예외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매번 늦던 사람이 한번 제시간에 온다고 해서 다음번에도 제시간에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여러 번 제시간에 오다 한번 늦으면, 그렇지 역시 원래 얘는 약속에 늦는 사람이야라고 합니다.
저는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변화에 유연해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그 사람만의 고유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 특징을 잃으면 자신을 잃는 것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새로운 자극에 변화하면서 더 나은 자신의 고유한 특징을 만들어가는 것이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일관성으로 시작해서 유연성으로 글을 마치는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일관성이 없이는 유연한 것이 아니라 우유부단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기억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