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봉헌 축일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by 맘가는대로

간절하다는 것이 무엇일까? 내가 온 맘 다해 간절히 바라고 기다린 것은 무엇일까?


오늘 복음을 읽고 듣고 생각하며 내 마음에 남는 것은 주님 봉헌이라는 사건보다 시메온과 한나라는 두 사람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성전으로 불렀을까? 왜 그들은 성전에 머무르며 하느님 섬겼을까? 그들의 믿음과 간절함이 아니었을까. 세상을 구원하실 그리스도를 볼 것이라는 간절한 믿음이 그들을 성전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성전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그들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었다. 아마도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저 40일 된 사내아이와 그 부모로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시메온과 한나에게는 세상을 구원하실 그리스도로 보였다.


운이 좋다, 나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성공한 사람을 보면서 실력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노력을 한 것 같지도 않은데, 그 사람은 운이 좋다고 말을 한다. 나는 최선의 노력을 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했는데 운이 나빠서 안된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저 운이 좋았을 수도, 단지 운이 나빴을 수도 있다. 그 운은 무엇이 만들었을까? 이 또한 간절함이 아닐까? 간절함이 없이 찾아온 행운은 내게 머무르지 않고, 스쳐 지나간다. 몇 번의 행운이 계속된다 해도 그저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간절함을 가진 사람에게 운이 따르지 않는 것은 어쩌면 행운이 오고 있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과연 나는 무엇을 정말 간절히 바랐던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과 그것을 넘어서 간절히 바라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어느 순간 필요한 것을 구하는 수준의 간절함이 그저 내가 가졌던 간절함은 아닌가 부끄럽다. 지나고 생각하면 그리 소중한 것이 아니기도 하고, 때로는 그냥 잊혀지는 것을 바랐던 내가 떠오른다. 나만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시험이 다가와도 아는 것을 틀리지 않기를 바랐지, 모르는 것을 맞추기를 바란 적이 없다. 내가 준비한 일만 벌어지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내 실력에 맞는 결과를 얻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성공을 행운이라고 가볍게 생각하는 일도 있었다. 아직도 그 마음을 모두 지우지는 못했다. 운보다는 실력을 믿는다. 과대포장이 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평가받기를 원한다.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음에는 아직도 내가 하면 된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나는 충분히 했다는 교만이 숨어 있다.


시메온과 한나만이 만날 수 있었던 그리스도는 두 사람의 믿음이 뛰어나고, 하느님 곁에서 살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이 최선을 다하면 나머지는 하느님이 채워주실 것이라는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할 만큼 했으니 이제는 어쩔 수 없다가 아니라,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는 하느님의 손에 맡기겠다는 마음이 지금 내게 필요하다. 이것이 주님 봉헌 축일에 함께 기념하는 봉헌의 의미와도 연결된다. 나의 완전함에 기대는 교만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겸손을 내게 이야기하고 계신다.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루카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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