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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 번째 근무지는 지방청 112 상황실이었다. 이곳은 해당 도 전체의 모든 신고 전화를 받아서 관할에 따라 각 지역 지구대와 파출소로 배정하는 곳이었다. 전국에서 112로 걸려오는 신고는 이런 지방청 상황실을 거쳐 최종 현장으로 전달되는 시스템이었다. 5-6명이 한 팀을 이루던 파출소에서 지방청으로 옮기니 규모가 완전히 달랐다. 한 팀이 35명이었다. 상황실 자체도 영화에서 보던 관제센터를 연상시켰다. 수십 대의 컴퓨터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고, 전화벨이 쉬지 않고 울려댔다. 이곳에서의 업무는 파출소와는 성격이 달랐다. 직접 현장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신고를 받아서 배정하는 일이었다.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만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그에 따라 출동 여부와 긴급도를 결정해야 했다.
나는 경찰 되기 전 콜센터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전화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전화로 욕도 많이 먹어봤고, 까다로운 고객들도 많이 상대해 봤다. 오히려 전화 응대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다른 동료들보다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콜센터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예전 콜센터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하루 콜 수가 그리 많지 않았고, 어쩌다 콜이 밀려도 100건 근처였다. 복잡한 사안은 전문 응대팀으로 넘겨주면 됐다.
하지만 경찰 신고는 차원이 달랐다. 하루 근무 기준으로 주간에는 150건, 야간에는 200건을 상회했다. 한 건의 신고가 끝나자마자 바로 다음 신고가 들어오는 식이었다. 화장실 갈 시간도 제대로 없을 정도였다.
신고하는 사람들의 다양성도 놀라웠다. 나는 평생 112에 신고를 해본 적이 없었는데, 사람들은 정말 다양한 이유로 신고를 했다.
가장 힘든 건 신고자들과의 소통이었다. 신고자들은 바로 옆 동네 경찰서에서 신고를 받는 줄 알고, "ㅇㅇ사거리", "ㅇㅇ마트 앞", "ㅇㅇ아파트 뒤쪽" 이런 식으로 말했다.
ㅇㅇ도 전체를 관할하는 상황실에서는 그런 세부 지명을 바로 알아듣기 어렵다. "ㅇㅇ사거리가 어느 시 어느 동인지 정확히 말씀해 주세요"라고 다시 물어보면, 신고자들은 "뭘 그런 것도 모르냐"며 짜증을 냈다.
그럴 때마다 "저희는 도 전체의 신고를 받고 있어서 정확한 주소를 말씀해 주셔야 빠르게 출동할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해야 했다.
더 힘든 건 이런 주소 확인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되면, 신고는 뒷전인 채 "왜 못 알아듣냐"며 항의부터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정작 중요한 신고 내용보다 주소 문제로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112 신고는 무료다. 긴급신고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일부 신고자들은 112를 개인적인 하소연이나 상담 창구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소연을 길게 하거나 입씨름을 하면, 정작 생명이 위급한 중요한 신고는 받을 수가 없다.
특히 술에 취한 신고자들이 가장 힘들었다.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거나, 횡설수설하거나, 아예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서도 뻔한 협박성 발언을 한다.
"나 이러다 사고 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해주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선생님, 지금 옆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 신고를 선생님 때문에 놓친 건 책임지실 건가요?"
하지만 그런 말은 할 수 없었다. 우리는 모든 신고를 정중하게 받아야 했고, 신고자가 아무리 불합리해도 끝까지 들어야 했다.
하루 200건의 신고라는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었다. 그 각각이 누군가의 급한 상황이고,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였다. 물론 그중에는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신고들도 섞여 있었지만, 진짜 중요한 신고를 놓칠 위험은 감수할 수 없었다. 매 신고마다 적절한 판단을 내려야 했고, 그 과정에서 지속적인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작은 실수 하나가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항상 존재했다. 그런 부담감은 일과 시간 내내 따라다녔다. 돌이켜보면 그 시기가 경찰 생활 중 가장 강도 높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업무의 밀도와 집중도가 요구되는 정도가 다른 시기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조금씩 깨달아가는 것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특별한 사명감 없이 시작한 일이었지만, 결국 내가 받는 전화 한 통 한 통이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도움 요청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내가 어떻게 응답하느냐가 때로는 누군가의 생명과 직결될 수도 있다는 현실이었다.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신고들 속에서도 진짜 위급한 상황은 언제든 섞여 들어올 수 있었다. 사소해 보이는 신고와 긴급한 신고를 구분하는 것, 그리고 그 순간의 판단이 갖는 무게를 점차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이 경찰 업무가 갖는 또 다른 차원이었다. 거창한 사명감이나 정의감과는 별개로,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요구되는 책임의 무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