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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omo Nov 19. 2021

모병제와 대립군

모병제를 위한 전제조건

오랜 시간 국방과 관련하여 진보의 가치는 반전과 평화가 주류를 이루었다. 물론 지금도 적대적 공생보다는 대화를 통한 평화를 추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지만 예전과 달리 국방의제에 있어서도 진보정당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최근 정의당에서 발표한 대선공약 중 모병제 전환 역시 여러가지 의미에서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징병제도 하에서 발생한 수많은 인권문제와 희생만을 강요하는 병역의무에 대한 개선은 2030세대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의제가 아닐 수 없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지난 11월 15일 한국형 모병제를 공약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과연 진보적 관점에서 모병제가 징병제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또는 대한민국이라는 전시국가에서 모병제는 전쟁을 대비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인가? 청년세대에게 모병제는 든든한 사다리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점은 머릿속에 계속 맴돌 수 밖에 없다. 




첫번째, 평등적 관점에서 모병제는 불평등한 제도이다. 직업주의로의 전환을 이야기하지만 헌법 상 명시되어 있는 병역은 시민의 의무로서 우선 기능할 수 밖에 없다. 대표적 공공재인 국방서비스를 일부만 제공자로서 머물게 한다면 이 것 역시 불평등의 관점에서 부당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징병제를 전면 모병제로 전환할 경우 결국 빈부계층에 따른 비자의적 모병제가 진행될 우려가 높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 미국에서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떨어지는 입영대상을 만회하기 위해 사면을 대가로 민간인들을 입대시키기도 하였으며 미국 시민권을 부여하는 조건으로 체류중인 외국인을 입대시키기도 했다. 절박한 상황에 있던 하층 청년들을 모병으로 유인한 사례인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평등적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징병제가 모병제보다 진보적인 측면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두번째, 전시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모병제는 가능할 것인가? 128만명 수준의 북한군을 경계하기 위해 현행 55만명에서 대폭 축소된 30만명의 직업군인으로 전쟁억지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적정 병력에 대한 논쟁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으나 2차세계대전 당시 독소전의 교환비가 1:3인 점, 현 공군, 해군, 해병대 병력 유지를 감안하더라도 최소 40만명은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 중론이다. TOD 등을 통한 경계병력을 최대한 줄이더라도 결국 40만명 수준의 병력은 유지해야 전쟁도발 없는 평화로운 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2030년 전면 모병제가 시행되는 시기에는 한반도정세가 현재와 다르다면 이야기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겠지만 종전선언도 이루어지지 않은 현시점에서 전면모병제가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국방비 부담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2019년 기준 병사에 대한 인건비 부담은 1.7조원 수준이었지만 3600만원 수준으로 연봉체계를 변경하게 된다면 최소 6조원 이상으로 증가하게 된다. 병사뿐 아니라 10조원 규모의 간부 인건비 역시 대폭 상승할 수 밖에 없다. 현재 50조원 규모의 국방비 예산 역시 60조원 이상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세번째, 2030 청년에게 모병제는 계급사다리가 되어 줄 것인가?


2018년 기준 일본자위대의 실제 병사 충원률은 75%에 그치고 있다. 1억3천만명의 경제대국 일본에서도 22만 7000여명 규모의 자위대의 인력 수급이 매우 힘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식 군인이 아닌 '직업인'으로서의 자위대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저조한 인력 충원의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이다. 직업군인이 될 수도 있고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학군단(ROTC) 역시 2014년 6.1대1의 경쟁률을 자랑했지만 작년 기준 2.8대1까지 지원 경쟁률이 떨어지고 있다. 사병에 비해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장교복무라는 매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긴 복무기간에 따른 부담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연봉 3600만원의 안정적인 직장으로서의 국군의 전환, 청년들에게 단순한 금전급부는 결코 매력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단순하게 임금을 올리는 것만으로 병역은 매력적인 직장이 될 수 없다. 긴 시간 자유를 억압받고 통제되고 상명하복의 수직적 조직에서 나라를 지킨다는 일념으로 희생하는 자리를 금전급부로 단순하게 취급할 수 있는 자리가 결코 아닌 것이다. 직업으로서의 병역전환은 다른 원인들을 우선 해결하지 않고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군대 특성을 배제하고 무작정 자율성과 창의성을 보장하는 조직으로 개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성과위주로 승진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위계질서와 상명하복이 필연적으로 허용되는 공간이 군대이다. 이러한 군대를 어떤 식으로 개선하여 젊은 청년들의 자부심있는 직장으로 만들 수 있는가?


군인을 군바리라고 폄하하고 군장병에 대한 어떠한 예우도 없는 현재의 인식에서 결코 한국군은 청년들의 사다리가 될 수 없다. 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소거하고 국민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국군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국방부 역시 군부독재, 일제잔재를 청산하고 국민들을 위한 국군으로 다시 태어나는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국민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미군처럼 존경받는 군인을 만들기 위해 국방부 차원에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인식 제고 뿐 아니라 실질적인 병역이행자에 대한 예우와 우대 역시 필요하다. 병역을 마친 국민들이 군휴양지를 쓸 수 있거나 국군마트를 이용할 수 있는 등 일상적인 혜택과 취업 또는 연금에 있어서도 필요한 지원혜택을 마련하는 것도 군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시키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모병제를 3600만원짜리 일자리로 단순하게 치부하는 것은 자칫 조선시대 군역을 대신 살아주던 대립군을 연상시킨다. 가난한 이들에게 지워지던 군역의 부당함,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칼을 잡아야만 했던 민초들의 비극. 21세기 대한민국은 과연 그러한 불평등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을까?


모병제를 실행하기 위한 선제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종전선언을 통한 평화체제 확립, 군에 대한 국민신뢰도 제고가 지금은 우선이다. 그리고 불평등의 계급장벽이 공고한 한국사회의 개선이 우선이다. 모병제는 불평등을 극복하고 존경받고 가고싶은 국군이 만들어졌을때 다시 이야기해도 결코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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