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0일, 이코노미스트
원문 : Asia's lonely hearts
약 20년 전쯤에 "아시아적 가치관(Asian Values)"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 있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 서양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아시아 대륙에 뿌리내리지 못했다면서 애매모호한 스탠스를 취하는 몇몇 국가의 독재자들의 주장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것보다 더욱 흥미로우면서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는 논의가 하나 있었는데, 아시아의 가족 중심적 가치관이 미국이나 유럽보다 더욱 공고화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가족을 강조하는 문화가 아시아 경제의 성장을 이끈 중요한 요인이라는 분석이 뒤따라 나오기도 했다. 전 싱가포르 총리였던 리콴유(Lee Kuan Yew)는 아시아적 가치관을 옹호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중국의 가족 중심 전통을 예로 들면서, "학식, 근면, 성실, 검소, 그리고 미래를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유보하는 것"을 주된 요소로 꼽은 바 있다.
리콴유의 이러한 주장은 표면적으로는 지금까지도 꽤 설득력 있어 보인다. 아시아의 대부분 국가들에서 결혼은 널리 퍼져 있는 가치에 가깝다. 이혼과 같은 부정 사례를 범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있더라 하더라도 조용히 숨기는 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서양 국가들의 이혼율은 절반에 육박하고, 반 이상의 아이들은 혼외자식으로 태어나고 있다. 최근 영국 곳곳에서 발생한 대규모 유혈사태도 부모의 돌봄이나 사회적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한 청소년들이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금의 상황은 동양과 서양의 매우 극심한 대조를 나타낸다.
하지만 동양에서도 결혼 관련해서 주목할 만한 변화가 벌어지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등 각각 지역의 고유한 문화가 각기 다르더라도, 변화의 속도는 매우 빠르다. 그리고 이것은 지난 20세기 후반에 서양에서 나타난 사회적 변화와도 양상이 다르다. 아시아의 몇몇 국가들에서만 이혼율이 늘어난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혼은 서양과 달리 평균적으로 낮은 편이다. 그렇다면 지금 아시아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현상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결혼으로부터 도망(flight from marriage)'이다.
오늘날 아시아 대륙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결혼율은 급속도로 낮아지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가능하면 결혼을 멀리하거나 연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결혼 적령기도 과거와 다르다. 전 세계적인 추세이기는 하지만 유독 아시아에서만 결혼 적령기가 매우 높다. 가급적이면 혼인을 훗날로 미루는 젊은 사람들의 비율은 서양 국가보다 아시아 국가가 훨씬 많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아시아 대륙에서 선진국으로 손꼽히는 국가들, 일본이나 한국, 혹은 홍콩이나 대만 같은 지역에서는 결혼 적령기 나이가 점점 높아져서, 여자는 보통 29~30세, 남자는 31~33세에 결혼 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시아의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무조건적으로 미루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그저 결혼을 안 할 뿐이다. 30대 초반의 일본 여성 가운데서 약 30%는 미혼이다. 이 30%에 속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절반은 앞으로도 결혼을 안 할 가능성이 높다. 30대 후반의 대만 여성들 가운데서 20% 정도는 싱글이다. 그들 대다수도 혼인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시아 대륙에서 비혼(non-marriage) 비율이 극적으로 상승하는 지역이 몇 군데 있는데, 40~44 여성들 가운데서 결혼을 안 한 비율은 태국 방콕에서 20%, 일본 도쿄에서 21%, 그리고 대학 졸업자들이 많은 싱가포르에서는 27%에 육박했다.
아시아의 거인이라 손꼽히는 중국과 인도에서는 이런 새로운 조류가 아직까지는 많이 관찰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경제 상황이 점차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이들 국가도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이와 더불어 남성만 중시해 성별에 따른 차별 낙태가 무려 한 세대 동안 공공연하게 이뤄졌고, 그로 인해서 남녀 성비가 불균형을 이룬 지금 이 상황에서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현상은 앞으로 닥칠 공산이 매우 크다. 2050년이 되면 법적으로 결혼이 가능한 연령대를 기준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무려 6천만 명 이상 많다는 전망이 벌써 나타나고 있다.
The joy of staying single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부터 여성들은 결혼에 대해서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다. 왜냐하면, 맞벌이를 하는 여성의 삶은 너무나 도전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결혼을 한 아시아 여성은 대체로 남편, 자식들, 그리고 때로는, 양가 부모님을 돌보는 역할을 떠맡는다. 풀타임으로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역할을 피할 핑계로는 고려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여성에게 이런 역할을 요구하는 것은 비단 아시아 뿐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서양 여성과 다르게 아시아 여성이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는 대단히 무겁다는 게 문제다. 일주일에 사무실에서 40시간 이상 일하는 일본 여성들은 집에서도 따로 30시간 정도를 집안일로 소비한다. 하지만 일본 남성들이 집안일에 투자하는 시간은 3시간도 넘지 않는다. 또한 육아를 위해서 아시아 여성들은 커리어를 중단하거나 일을 그만둔다. 자식이 어느 정도 장성했을 때 다시 일을 하는 여성들의 수는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바라보는 아시아 여성들의 시각은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2011년에 발표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결혼에 우호적인 의견을 피력한 일본 여성의 비율은 일본 남성, 미국 여성, 그리고 미국 남성보다 훨씬 적었다.
직장에 나가서 고된 임금을 받고 일을 한다는 것은 여성의 입장에서 결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다. 하지만 이것은 여성에게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과거와 다르게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면서 독신 생활의 여러 이점을 맛보는 여성들의 수가 많아지고 있다. 전통적인 결혼 생활에서 비롯된 여러 고된 일(drudgery)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독신으로 살아가는 게 더 낫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교육도 결혼율을 감소시키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대학원 졸업 등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일수록 자신의 인생을 남에게 헌신해야 할 결혼을 머뭇거린다. 오늘날에는 고등교육의 기회를 가지거나, 우수한 성적을 받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욱 많다.
No marriage, no babies
결혼으로부터 도망을 치는 여성들이 아시아 대륙에서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이들 여성이 자유를 맛 볼 가능성이 크다는 시사점을 던져준다. 과거에는 차별받거나 수동적 역할만을 떠안아야 했던 여성들의 지위가 달라졌다는 사실은 축하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결혼을 멀리하는 양상은 사회문제를 촉발시킨다. 서양과 비교해서 동양 국가들은 사회안전망 확충과 연금과 같은 사회복지 서비스에 투자를 적게 했다. 이것은 노화(ageing)나 의료도 가족 차원에서 결정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전통적 논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결혼율 감소 추세는 곧바로 출생률 감소로 이어진다. 1960년대 동아시아 지역에서 성인 여성 1명당 보살피는 아이의 수는 5.3명이었지만, 지금은 1.6명으로 곤두박질쳤다. 결혼율이 현저히 낮은 지역에서는 출생률이 한 명도 안 되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노령화 추세가 엄청 빨리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출생률이 아주 낮다는 점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악영향을 끼친다. 결혼은 남성의 사회화에 일정 부분 도움을 주는데,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낮게 해주기 때문에 범죄 행위를 덜 저지르게 유도한다. 결혼이 적어지는 사회는 범죄율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아시아 지역 내에서 결혼이 다시 늘어날 수가 있을까? 남성과 여성, 양성의 역할이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면 늘어날 여지는 매우 높다. 하지만 전통이라 여기는 가치를 한 번에 전복시키기란 대단히 어려울 따름이다. 정부들도 성차별에 가까운 사회적 관례를 바로잡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주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사회에 변화를 이끌어낼 수는 힘을 지닌다. 이혼 관련 법률을 완화시키면 오히려 여성들이 결혼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끔 도움을 준다. 결혼생활이 자신의 인생에 피해를 준다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이혼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남자도 여성이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곁을 떠나갈 수 있다는 경각심을 받아들이도록, 이혼 법률을 새롭게 고치면 결혼율이 올라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이혼할 시 여성에게 보다 관대로운 몫을 챙겨줘야 한다. 각국 정부는 남성과 여성에게 똑같이 출산 및 양육 휴가를 주는 경영자들을 육성해야 한다. 아동을 지원하는 보조금이나 관련 복지 서비스도 확충해야 한다. 이런 조치들이 제대로 실현이 된다면, 가정생활의 질은 한층 높아질 테고, 노년층을 부양할 사회적 짐도 덜어질 수가 있다.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은 가족 중심의 사회체계의 우수성을 가장 큰 장점이라고 서양 세계에 은근히 강조했었다. 하지만 이런 자신감은 이제 아무런 쓸모가 없어졌다. 이제 아시아 국가들은 거대한 사회변혁에 맞춰 개혁을 이끌어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고, 그 결과를 어떻게 슬기롭게 적용할지를 두고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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