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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st in Translation Jul 06. 2016

누구나 사랑에 빠지는 방법

맨디 렌 카트론, 2015년 1월 9일, 뉴욕타임스

원문 : To Fall in Love With Anyone, Do This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 심리학자인 아서 아론(Arthur Aron)은 실험에 참가한 남녀가 서로 그 자리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나는 아론의 방법론을 지난해 여름에 적용해 보기로 했다. 어느 한밤중에 나는 다리 위에서 한 남자를, 그것도 그의 눈을 4분 동안 지긋이 쳐다보았다.

먼저 그날 저녁에 있었던 일을 설명해야겠다. 다리 위에서 내가 쳐다본 남자를 원래 일찍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나에게 "당신이라면, 말이 통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누구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그런 사람을 만나나요?"라고 물어왔다.

나에게 질문을 던진 그는 학교 동료로서 실내 암벽등반 훈련장에서 종종 마주치는 사이였다. 예전에 나는 그 사람이 어떤 부류인지가 궁금해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접속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저녁을 단둘이 먹은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사실, 그간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도록 도와주는 방법을 찾곤 했어요."라고 말한 나는 곧바로 아서 아론의 연구결과를 머릿속에 끄집어냈다. "아론의 실험은 매우 흥미로웠죠. 아론의 연구를 제가 적용하는 걸 언제나 학수고대하기도 했고요."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아론의 논문을 애인과 이별했을 때 처음 접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매번 결별을 할 때마다 나의 객관적 이성은 주관적 감성 앞에서 무참히 패배했다. 나는 불안하고 답답했으며 힘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소위 가방끈 긴 사람들이 아마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법을 과학적인 연구로 통해 어느 정도 알아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감을 가졌던 것 같다.

그날 저녁 식사 시간에 나는 학교 동료인 그에게 아론의 연구를 자세히 설명했다. 이성애자라고 밝힌 남녀 각각 1명씩 실험실에 들어온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면서 매우 사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한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매우 지긋이 서로의 눈을 4분 정도 쳐다보는데, 여기서 가장 충격적인 결말은, 실험에 참여한 그들이 6개월 후 결혼에 골인했다는 사실이다. 그 커플은 아론을 비롯해 일련의 실험 주도자들을 결혼식에 초대했다고 한다.

"우리도 한번 해 보죠." 
그 남자가 나에게 짤막하게 말했다.

우리의 실험은 막 급조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아론의 연구와는 똑같이 진행될 수는 없었다. 대학 실험실이 아닌 시끌벅적한 술집 안이었고, 나는 그를 과거부터 쭉 알고 지냈었다. 아,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당시 아론의 실험에 참여한 청춘들은 일말의 기대감을 품었으니 그런 실험에 참여하지 않았을까 싶다.

일단 스마트폰으로 구글링을 해서 아서 아론의 질문 36가지를 찾아냈다. 나와 그는 이 질문들을 서로에게 물어보았다. 약 2시간이 소비되었다. 초반 질문 몇 개는 조금 지루하긴 했었다.

"유명해지고 싶으세요?"
"어떻게 유명해지고 싶으세요?"
"언제 자기 자신에게 노래를 불러 주었죠?"
"그 노래를 다른 사람에게 불러 준 적은 있나요?"

이윽고 시간이 지나면서 아론의 질문들의 세기는 더욱 강해져만 갔다.

"당신이 보기에 현재 마주 보고 있는 사람과의 공통점을 세 가지 얘기해 보세요."

이 질문에 그 남성은 나를 보며 "내가 보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맥주를 마셨다. 그가 말한 나머지 두 가지의 공통점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한 우리는 가장 마지막으로 울었던 때가 언제인지를, 점쟁이 앞에 있다면 무엇을 물어볼 것인지를 서로 털어놓았다. 자신과 어머니 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서로 물어보았다. 

이러한 질문들은 점점 끓어가는 냄비 속에 있는 개구리 실험(개구리가 뜨거운 곳에 있다는 걸 매우 늦게 깨달은 것)과 비슷해 보였다. 나와 그 남성 사이에 존재했던 마음의 장막은 서서히 걷혔고,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서로 간의 심리적 친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은 대체로 몇 주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도 말이다.

질문과 답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동시에 그에 대해서도 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우리가 처음에 도착했을 때는 한산했던 술집의 분위기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화장실을 가고자 몸을 움직였을 때 술집 안은 매우 복잡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처음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혹여 타인이 우리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만약 그랬다 하더라도 나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는 점도 눈치채지 못했을 게다.

평범한 사람들은 보통 타인에게 제 모습을 보여줄 기회를 준비한다. 그러나 아서 아론의 질문들은 그러한 기회가 무용지물이라는 점을 명백히 증명한다. 술집에서 내가 그와 같이 느꼈던 친밀감은 과거 내가 어렸을 때 종종 다녔던 여름방학 캠프에서 느꼈던 감정과 대체로 비슷했다. 새롭게 만난 또래 친구들과 밤을 새우고 수다를 떨면서 느꼈던 감정. 13살 이후로 나는 처음으로 집을 떠난 적이 있었는데, 당시는 누군가와 친해지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그렇게 친해지고 가까워지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내가 그때 그 남성과 질문을 서로 던지면서 약간 불편한 감정을 지녔던 순간이 있긴 있었다. 나 자신의 치부를 말하는 것이 아닌 상대방에 대해 어떤 것을 추측해야만 했을 때였다. 20번대의 질문 두 가지는 이런 것이었다.

"당신이 마주 보는 상대방의 장점 5가지 정도를 말해 보세요."
"상대방의 어떤 것이 당신에게 좋아 보였는지를, 상대방에게 솔직히 말해 보세요."

심리학자 아서 아론의 연구는 친밀감 증진 방법론에 기초한다. 그 가운데 몇몇 연구는 내가 타인을 나처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를 타진한다. 아론의 질문들은 '자기 확장'을 촉진시킨다. 이것은 예를 들어, "당신의 목소리가 좋은데요.", "당신의 맥주 취향(기호)이 마음에 들어요.", "당신네 친구들이 당신을 존중하는 것 같아 매우 좋아 보입니다." 따위의 얘기를 언급함으로써 상대방의 장점이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실례로 어떤 사람이 나의 특별한 점이나 장점을 얘기해주는 걸 듣는다면 매우 놀라워하며 고마운 감정이 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왜 사람들은 서로의 장점을 공개적으로 얘기하지 않는지를 궁금해했다.

나와 그는 술집에서 거의 자정이 다 되어서야 서로 간의 질문 던지기를 끝낼 수 있었다. 원래 연구에서는 90분을 주었다고 하는데 말이다. 주변을 둘러보면서 나는 마치 긴 잠에서 깨어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리 나쁘지 않은데요. 그저 당신의 눈을 계속 쳐다보는 것보다는 더 생산적이었던 것 같아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우리도 그것을 해야 되지 않을까요?"
그의 조심스러운 말투였다.

"여기서?"
나는 술집 안을 쳐다보았고, 사람들 있는 데서는 약간 부끄러울 것 같았다.

그가 창밖을 쳐다보며 대안을 내놓았다.
"저기 다리 위는 어때요?"

밤이었지만 공기는 따스했다. 정신이 맑아진 기분이었다. 우리는 다리 한가운데로 도착했고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는 부자연스럽게도 타이머를 맞췄다. 숨을 들이키며 나는 그에게 "준비됐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웃으며 "좋습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본래 스릴을 즐긴다. 급경사로 내려오는 스키 활강을 좋아했고, 가느다란 줄에 내 무게를 실으며 절벽에 매달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그것도 이성의 눈을 무려 4분 동안 쳐다보는 건 내 인생에서 제일 긴장되는 행위였다. 그의 눈을 쳐다보는 초반 2분 정도는 숨을 거칠게라도 내뱉고자 노력했다. 부끄러운 나머지 웃음이 계속 유발되었다.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르면서 나 자신이 진정되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눈이 '영혼의 창(window)'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 순간에 내가 진정으로 깨달았던 한 가지는 바로, 그저 내가 타인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나 자신을 진정으로 바라보는 그 누군가를 내가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결론을 내리고 나서 나는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어떤 기분을 느끼고 말았다. 일종의 경이감 같은 감정이 내 심장을 스쳐 지나갔다. 그 감정의 어떤 부분은 내 두려움에서, 또 다른 어떤 부분은 생소한 심리적 상태에서 비롯되었다. 마치 어떤 단어를 자꾸 언급함으로써 본래의 뜻은 잃어버리고 형태소의 소리만이 잔존한 듯한 느낌에 가까웠다.

이것은 서로의 눈을 지그시 쳐다보았을 때 나타난 생리학적 결과물이다. 눈은 유용한 세포 덩어리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 눈을 통해 생물학적 경이감을 느꼈다. 정말로 기이하고도 특별했다.

결국 타이머는 울렸다. 알람이 울리자는 나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솔직히 허탈감도 느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순간부터 초현실적인 상황이었던 그날 술집에서의 저녁식사 시간 때로 돌아가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혹자는 사랑을 저절로 일어나는 것, 그런 우연성을 강조한다. 사람들 각자가 사랑에 빠지고, 서로에게 반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아서 아론의 연구를 비추어 볼 때면, 사랑은 어떤 행동이나 다름없는 성질을 지닌다. 그의 연구결과는 서로의 공통점을 찾게 유도함으로써, 예를 들어 어머니와의 관계나 서로를 지긋이 쳐다보게 하는 행위를 하게 유도하면서 상대방이 중요시하는 것이 나에게도 중요하게 작용될 수 있는 여지를 제시한다.

나는 그날의 실험이 어떤 결과로 도출될지 꽤 궁금해했다. 한낱 해프닝으로 끝나더라도 오래간만에 경험한 재미난 과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날 밤의 이야기가 우리 둘만에만 해당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날 밤의 이야기는 누군가를 알기 원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수반하는지,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안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져다주는지를 알려준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자로서 나도 그간 사랑 관련 여러 방법론을 연구했다.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을 우리가 직접 고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사랑이 일궈질 감정을 나 혼자서 만들 수도 없다. 그렇지만 과학에서 사랑에 대하여 우리에게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생물학적 조건의 중요성이다. 페로몬과 호르몬은 우리 기대 이상으로 많은 일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날 밤의 경험을 통해 나의 감정, 특히 사랑이라는 것을 내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었다. 아서 아론의 연구 결과는 스스로의 조절이 가능하다는 걸 암시한다. 그것도 매우 간단한 방법에 의해서 말이다. 사랑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서로의 거리감을 좁히며 신뢰를 구축하면 되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내가 그와 사랑에 빠졌는지 매우 궁금해할 것이다. 그렇다. 나와 그는 사랑에 빠졌다. 그렇다면 그 실험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일까? 물론 그것은 아니다. 다만 그날의 실험은 우리 사이에 어떤 강제적인 힘을 작용시켜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오르게 했다. 당시 우리 사이에 설계된 친밀한 기운을 몇 주 동안 유지하고 즐기면서 그다음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기대하게 만들었다.

사랑은 그저 우연히 우리 사이에 생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에 빠진 것은 우리가 우리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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