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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st in Translation Dec 14. 2016

한국 성형수술의 시초가 된 미국인 의사

로라 쿠렉, 2015년 가을호, 윌슨 쿼터리

원문 : Eyes Wid Cut - American Origins of Korea's Plastic Surgery Craze


한국은 성형수술에 대한 일종의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다. 한국 여성의 약 20%가 이런 수술을 받은 바 있다. 이는 미국 여성의 5%보다 절대적으로 높은 수치다. 성형수술의 대중화에 따라 한국에서는 성공적인 커리어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성형수술이 필수적이라는 말도 나온다. 구직을 하기 위해서 미국인들이 헬스장에 가서 몸을 근육질로 만드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성형수술 가운데서 가장 인기 많은 분야는 바로 쌍꺼풀 수술이다. 아시아인 특유의 외꺼풀을 의과적 수술로 변형시키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 다음에 인기 많은 분야는 코 성형술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이런 수술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질문 한 가지가 있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서양인과 비슷한 외모를 추구하는 걸까?" 

의과의사들과 학자들은 이런 질문과 논쟁에 조심스럽게 반대 의견을 내놓는다. 추상적이고 넓은 의미에서 사용된 서양 문화가 보다 커다란 눈을 강조하는 한국인들의 의식에 그다지 작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부류도 있다. 또 다른 부류는 아시아인의 절반만이 외꺼풀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말한다. 서울 강남의 오즈 클리닉의 의과의사와 미국 베벌리힐스의 성형외과 의사도 쌍꺼풀 수술은 서양인의 얼굴을 가지려는 동양인의 열등감에서 비롯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한국에서의 성형수술 대중화와 열풍은 1950년대 6.25 전쟁 이후에 나타난 한 미국인 외과의사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


데이비드 랄프 밀라드는 성형수술 영역에서 대가로 불린다. 여러 의학 저널은 밀라드가 선천성 얼굴갈림증(안열)을 가진 전 세계의 어린 아이들의 구세주라고 평가한다. 미국 성형의과학회는 밀레니엄 시대 최고의 성형외과 의사 10명 가운데 한 명이라고 소개한다. 

에일 대학과 하버드 의과대학원을 졸업한 밀라드는 현대 성형수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해롤드 길리스를 만나서 수학한다. 1차 세계대전이 벌어졌을 무렵에 길리스는 영국군 의사로 활약하면서 부상을 당한 군인들을 치료하는데, 특히 얼굴 재건과 봉합 수술을 전담한다. 새로운 수술기법을 적용하면서 폭탄 파편에 의해 얼굴의 형체를 다시 복원한 것이다. 영국 런던에서 길리스를 만나 그의 기법을 전수받은 밀라드는 1954년에 6.25 전쟁이 끝난 직후 한국에 와서 미국 군인들과 한국의 어린 아동들을 치료하기 시작한다. 

전쟁의 휴우증으로 외과 환자들이 넘쳐나는 상황을 밀라드는 "성형수술의 파라다이스"라고 묘사한다. 얼굴에 심한 부상을 입은 군인과 선천성 질환을 앓는 한국의 유아들을 치료하는 그는 특히 구개열에 주목한다. 이상한 모양으로 뒤틀린 입술을 원래 위치로 되돌려 놓으면서 피부 조각을 통해 제거된 부분을 채워 놓는 획기적인 방법을 사용하면서 밀라드는 당시에 대중화된 봉합수술보다 더욱 나은 결과를 보인다. 이 기법은 지금까지도 사용한다. 하지만 그의 획기적인 방법은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쌍꺼풀 수술이다.

화상 환자들을 위한 눈꺼풀 재건수술을 고안한 밀라드는 눈에 관한 모든 부위를 연구한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Oriental to Occidental"이라고 묘사한다. 쌍꺼풀 수술과 관련된 논문이 홍콩이나 일본, 한국 의과대학에서 발간되지만, 영어로 된 저술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밀라드는 스스로 실험을 할 수밖에 없다. 외국인 의사에 연구용 교재로 자신의 살아있는 신체를 기증하는 한국인은 존재할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해병대에서 통역가로 일을 한 한국인이 그에게 다가가서 자신의 눈을 좀 더 동그랗고 커다랗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자신의 눈이 사팔뜨기라서 미국인들이 신뢰를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밀라드는 그 통역사를 수술하면서 비량을 늘리는 동시에 눈을 크게 변형시키기로 결정한다. 먼저 코에 연골을 이식하고, 눈꺼풀 안쪽 주름을 절개한 뒤 눈 위쪽의 남아있는 지방을 제거한다. 그런 다음에 피부 조각을 함께 봉합하면 쌍꺼풀이 생기게 마련이다. 수술을 다 받은 통역사는 자신의 얼굴에 만족감을 내세우면서, 주변 사람들이 멕시코인이나 이탈리아인으로 헷깔려 하는 모습에 흡족감을 느낀다.

첫 번째 쌍꺼풀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밀라드는 미국으로 떠날 때까지 한국에서 수많은 현지 환자들을 담당한다. 그의 주요 고객들은 미국 군인들에게 성적으로 어필하려는 성매매 여성들이다. 또한 그는 한국인 의사들에게 자신의 기법을 전수한다. 이 밖에도 밀라드는 자신의 행적을 기록한 글인 [Oriental Peregrinations]와 [The Oriental Eyelid and Its Surgical Revision]을 발간한다. 

하지만 후세의 의사들과 학자들은 밀라드의 글과 행동에 약간의 인종차별적 냄새를 맡는다. 서양인, 정확히 말하자면 백인의 외모가 아시아인보다 더욱 월등하다는 뉘앙스를 품긴다는 게 이유다. 1989년에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은 성형수술의 목적이 서양인의 얼굴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이와 더불어서 1895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기사를 인용하며 쌍꺼풀 수술은 일본에서 시작되었다며 밀라드가 현대 쌍꺼풀 수술의 창시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밀라드가 의도를 했든, 아니면 미국 해병대가 계속 남아서 영향을 끼쳤든, 한국의 수도인 서울은 오늘날 성형수술의 메카가 된다. 1960년대 이후로 급속도로 늘어난 병원과 수술 사례는 오늘날이 되서 임계질량을 넘어서고 있다. 수많은 한국인들은 쌍꺼풀 수술과 더불어 엉덩이 확대수술, 얼굴 임플란트, 미백 시술, 심지어 종아리 축소술까지 받으려고 한다. 

이런 경향은 분명히 엄청난 위험을 내포하기 마련이다. 과도할 정도로 엄청난 성형수술 수요는 자격이 없는 의사들을 대거 양산한다. 한 통계에 따르면 부적격 의사의 비율은 80%를 넘는다. 이로 인해서 매우 치명적이면서도 위험한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다. 가장 위험하면서도 어려운 수술인 V-Line 수술은 턱뼈를 깎거나 부수는 것인데, 이런 수술이 많아지면서 서울 길거리에는 비슷한 외모를 지니는 한국인 여성들이 늘어난다.


(...)


1986년에 펴낸 자신의 저서 [Principalzation of Plastic Surgery]에서 밀라드는 성형 외과의사들이 꼭 지녀야 할 몇 가지 원칙들을 리스트로 내세운다. 8번째 원칙은 "이상적이면서 아름다운 평범함"이다. 밀라드는 이 구절에 유달리 집착한다. 

쌍꺼풀 수술과 V-Line 수술이 대중화되면서 한국인들은 밀라드의 8번째 원칙을 중요시하고 고수하는 듯 보인다. 또한 한국인들의 이상적인 미를 추구하는 형태는, 오늘날 한국 사회 내에서 목격되는 이상적인 상황을 갈구하는 움직임과 궤를 같이 한다. 엄청난 대가를 치루는 것은 그리 상관 없다.

아니면, 밀라드의 8번째 원칙은 한국과 전 세계에서 나타나는 성형수술 열풍에 대해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상적이면서 아름다운 평범함"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나 하는 걸까? 누가 그것을 정의내리고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원칙을 계속 끝까지 추구하면 과연 나중에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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