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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st in Translation Jun 08. 2017

최초로 공개된 스티브 잡스의 마지막 유산

스티븐 레비, 2017년 5월 16일, 와이어드

원문: One More Thing - Inside Apple's Insanely Great (Or Just Insane) New Mothership


2011년 6월 7일에 열렸던 쿠퍼티노 시의회 회의에서 한 지역 사업가가 짤막한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였다. 그에게는 별다른 안건이 있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시의회에 모습을 보였다는 게 그리 엄청난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그해 초쯤에 이 남성은 쿠퍼티노 시 북쪽 경계선을 따라 새로운 건물을 연달아 짓겠다는 자신의 제안을 시의회에서 꼭 언급하리라는 의지를 대외적으로 피력한 바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이러한 의지를 제대로 표명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왜냐하면, 지금은 우리 모두가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 그는 심각한 건강 문제를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퍼티노 시의회 회의가 열리기 전에 크리스 왱(Kris Wang) 시의원은 책상 뒤편에 있는 창문을 통해 그 사업가가 건물 입구를 향해 걸어오는 광경을 내려다봤다. 사업가는 걷는 것조차 어려워했다. 또한 그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새로운 제품을 선보였던 날보다 훨씬 이전부터 입었던 복장을 그날도 역시 착용했는데, 이 말인즉슨 누구나 봤을 법한 그만의 고유한 의상이었다. 시의회에서 연설을 할 차례가 되자 그 사업가는 연단을 향해 걸어갔다. 초반에는 약간 머뭇거리는 어투였지만, 금세 과거의 키노트 프레젠테이션 할 때와 비슷하게 대화체 형식이지만 최면술사 같은 강렬한 어조가 그의 입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 사업가는 자신의 회사가 "대마가 잘 자라듯이 성장(grown like weed)"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의 인력 규모는 10년 동안 눈에 띌 정도로 엄청나게 커졌는데, 세계를 뒤흔드는 자사 제품을 연달아 내놓게 되면서 당시 기준으로 100여 군데가 넘는 회사 건물에는 직원들이 바글바글할 정도로 가득했다고 한다. 사무 인력을 보다 공고하게 통합하고자 그는 새로운 캠퍼스를 건립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자연과 건물 사이의 경계를 허물면서 초록으로 뒤덮인 하나의 거대한 경관을 만들고 싶다는 게 캠퍼스의 주요 목적이었다. 다른 기업의 캠퍼스를 그는 "꽤 지루하다"라고 표현했었는데, 그것과 달리 이 신설 캠퍼스는 직원 1만 2천 명을 수용하는 (가운데가 뻥 뚫린) 원형 모양의 건물 구조를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이것은 꽤 위대한 건물입니다."라고 그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우주선이 착륙한 형태와 약간 유사합니다."


크리스 왱 의원이 이런 거대한 캠퍼스 조성이 쿠퍼티노 지역에 어떤 혜택을 가져다 줄지 질의하자 그 사업가는 마치 어린이한테 설명하듯이 목소리 어조에 약간 변화를 주며 자신의 회사가 캘리포니아에 쭉 정착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렇지 않으면, 최근에 구입한 그 부지를 팔고 직원들과 함께 마운틴뷰(Mountain View) 같은 근처 지역으로 터를 옮길 수 있다고 언급했다. 아주 찰나의 불쾌한 순간을 끝내기 위해서 그는 어떤 캠퍼스를 만들지 관련 주제로 다시 돌아가기를 원했다.


"우리가 이런 것을 시도해보지 않을까 싶습니다."라고 그 사업가는 의원들에게 말했다. "전 세계에서 최고의 사무용 빌딩을 건설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당시 그가 언급하지 않았던 것은, 물론 그 자리에 있었던 그 누구도 사업가가 시의회에 등장한 것이 마지막 순간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던 점을 차치하더라도, 자신이 그 기업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저 새로운 캠퍼스를 계획하거나, 짓거나, 이곳에 남겨두거나, 아니면 소멸을 미연에 방지하려고 한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새로운 본사 건물과 상관없이 스티브 잡스(Steve Jobs)애플 그 자체의 미래를 미리 계획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미래는 잡스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도 우리 모두의 예상 범위를 뛰어넘는 형태이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지 5년도 넘은, 청명하면서도 서늘한 3월의 어느 날에 나는 지프 랭글러 차량 안에서 조나단 아이브(Jonathan Ive)와 동석하고 있다. 우리는 거의 완공된 애플 파크(Apple Park)로 갈 준비를 마쳤는데, 참고로 이 명칭은 2011년 쿠퍼티노 시의회에서 잡스가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나온 단어로써 캠퍼스 명칭으로 최근에 결정되었다. 애플 내 디자인 부족의 우두머리이자 올해 50세가 된 조나단 아이브는 여전히 럭비 선수처럼 건장한 체격을 뿜내고 있다. 아이브는 한때 진짜 럭비선수로 활동했었다. 명성, 재산, 그리고 기사 작위를 뒤로 한 채 그는 내가 20년 전에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이 영국식 영어를 우아하게 구사한다. 우리는 창 위에 은색으로 애플 로고가 새겨진, 전체적으로 하얀색 바탕의 안전모를 쓴다. 아이브의 안전모는 애플 로고 바로 밑에 "조니(Jony)"라고 새겨져 있다. 애플의 시설을 관리하는 동시에 실질적으로 이번 건설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댄 와이젠헌트(Dan Whisenhunt)도 우리와 함께 한다. 그도 역시 아이브와 마찬가지로 개인용 안전모를 소지하고 있다. 며칠 안 남은 착공 완료 시점 때문인지 몰라도 건설 현장에는 활기가 가득하다. 내가 방문한 이후, 앞으로 30일 동안에 과거의 본사에서 근무한 직원들이 첫 번째 순서로 자리를 이곳에 옮길 예정이다. 그리고 그 후로 매주 500 명 정도로 다른 건물에서 근무한 직원들이 순차적으로 이곳에 도착한다. 나는 마치 쥐라기 공원에 첫 번째로 방문하는 여행객들 가운데 한 명이라고 느꼈다.


우리는 노스 탄토 거리(North Tantau Avenue)로 차를 몰던 도중에 애플의 메인 본사에 배치되지 못한 불운한 직원들을 수용하는 여러 건물들을 지나친다. 물론 이 가운데에는 방문자 전용 센터도 있다. 약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 대부분은 평평한 실외 주차장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인공으로 만든 언덕으로 인해 거대한 둔덕이 생겨 도로를 양쪽으로 감싸 안은 듯 보인다. 둔덕 때문에 번잡한 울프 로드(Wolfe Road)나 280번 고속도로(Interstate 280)는 시야에서 사라진다. 또한 도로를 따라 나무 수백 그루가 둘러싼 멋진 장관이 이뤄질 계획인데, 수목들 뿌리는 흑으로 쌓인 나무 상자에 반쯤 파묻혀 있다. 계획에 따라 이곳에 옮겨 심어질 것이다. 우리는 운전을 하면서 캠퍼스 주변을 둘러보고, 원형 건물인 링(the Ring) 안으로 연결되는 입구에 도착한다.  



물론 나도 애플 신사옥 관련 사진을 봤지만, 이것은 대중이 모처럼 기대하는 블록버스터 급 영화의 예고편과 맞먹는 건축학적 자료나 다를 바 없다. 스티브 잡스가 쿠퍼티노 시의회에서 최초로 공식적인 언급을 한 이후로, 이런 기대감은 애플이 새로운 본사라고 지칭한 링의 디지털 렌더링이 널리 퍼지면서 더욱 증폭되었다. 특히 공사가 한창일 때, 모험심 강한 조종사들이 현장 위로 드론을 띄웠고, 공중에서 사진을 대량으로 찍었으며, 그것을 편집한 후 뉴에이지 풍의 음악을 곁들여 유튜브에 공개했다. 젊은 마니아들의 열정에 곤란을 겪은 애플은 신사옥 건설 프로젝트의 규모와 예산 때문에 대외적으로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일찍이 애플로 하여금 주주들에게 더 많은 배당금을 돌려주라고 강력히 권고한 투자자들은 언론 보도에 알려진 캠퍼스 건설 비용 50억 달러가 역사에 남을만한 직장을 만드는 것보다는, 자신들의 바지 주머니에 다시 돌아갈 수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사옥이 완성될 때는 아주 공교롭게도, 물론 뛰어난 매출 실적을 발표하지만, 잡스 사후에 이렇다 할 만한 끝내주는 제품이 없는 애플의 시기와 맞닿을 상황이다. 애플의 임원진은 현재 공정이 진행되고 있는 캠퍼스가 얼마나 쿨한지를 우리가 알아가기를 원했다. (그래서 나를 초대했나 보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는 나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로 하여금 애플 특유의 열정적인 헌신을 그저 거대한 유리 패널과 주문 제작형 문 손잡이, 그리고 10만 평방 피트(약 3천 평) 크기의 피트니스 센터, 아니면 칸자스 주의 한 채석장에서 공급받은 석조로 이뤄진 2층 높이의 요가 전용 트레이닝 룸이 들어갈 웰빙(wellness) 센터에만 허비하는 게 아닌지, 의구심을 자아내는 데 충분했다. 특히 이 시설은 잡스가 유달리 좋아했던 요세미티의 한 호텔의 주요 뼈대인 석조와 비슷해서, 보는 이가 약간은 피로감을 호소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755 피트(약 240 미터) 길이를 자랑하는 터널 내부는 벽면을 따라 하얀 타일들이 쭉 이어져 있어서, 막 완성된 최고급 화장실을 연상케 한다. 자동차 배기가스의 그을림에 의해 하얀 벽이 점차 영향을 받으며 검은 얼룩이 곳곳에 지기 전에 링컨 터널(Lincoln Tunnel)이 개통 첫날에 시민들에게 얼른 보여주려고 했었던 시도와 비슷했다. 불빛을 따라 안 쪽을 향해 걸어가자 저 멀리 소위 링이라 불리는 원형 건물이 시야에 등장했다. 우리가 탄 지프가 주변을 한 바퀴 둘러 주행하자, 햇빛 때문에 건물 곡선 유리 표면 부분이 반짝거린다. 링의 매 층마다 유리 표면에서 돌출된 하얀 지느러미 같은 구조물은 소위 "캐노피(canopies)"라고 하는데, 1950년대 싸구려 잡지에 연재된 공상과학 소설에 등장하는 그림처럼 이국적이고 레트로-미래주의적 산물처럼 다가온다. 건물 안 쪽의 바깥 경계선을 따라 한 사람이 홀로 조용히 걸을 수 있는 0.75 마일(약 1.2 킬로미터)짜리 산책로가 있다. 자유로운 움직임과 개방성의 증표라고 하지만, 두 가지 가운데 하나는 애플과 그다지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다. 논쟁의 한 지점이다.



입구를 거쳐 나아가면 우리는 건물 지하로 들어가게 된다. 다시 나오기 전까지 주변 안뜰도 둘러본다. 물론 구조상, 가운데가 뚫린 원형이기 때문에 메인 로비는 없지만, 대신 건물 안과 밖을 드나드는 출입구 9군데가 있다. 조나단 아이브는 나를 데리고 카페(cafe)를 지나쳐 이동하려고 하는데, 이곳은 건물 4층 높이를 커버하는 아주 거대한 공간이다. 추후에 완공이 된다면 아주 광활한 지상 1층의 바닥부터 정찬 식사를 위한 발코니까지, 4천 명이 한꺼번에 이용 가능하다고 한다. 카페 외벽에는 매우 큰 유리문이 두 곳에 설치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야외에서 맛있게 식사할 수 있도록 해 놓는다.


"아마도 우문일 수 있겠습니다만,"라고 내가 운을 뗀다. "왜 4층 높이의 유리문을 설치하셨는지요?"


내 질문을 들은 후 아이브는 눈썹을 추켜올린다. "음.." 그가 말한다. "당신이 '니드(need)'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질 것 같은데요. 안 그런가요?"


우리는 위층으로 올라간다. 그곳에서 나는 바깥 전경을 바라본다.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착륙하려는 비행기에 탄 사람들의 육안에서, 아니면 심지어 지상으로부터 수백 피트 위의 상공에서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이동하는 드론의 촬영 렌즈에서 보면 이 건물은 애플이 가진 권력을 공포하는 수단으로 보이거나, 쇼핑몰과 고속도로, 그리고 건물 주차장이 가득해서 이제는 단조로울 지경에 이른 실리콘밸리의 교외 지역에서 "뭐야, 씨발, 저 좃 같은 것은(a what-the-fuck oddity)"이라고 느낄 수가 있다. 하지만 창문을 통해 외관을 자세히 바라보면, 특히 광활한 언덕들이 쭉 펼쳐져 있는 주변 안뜰을 보게 될 시에 그러한 부정적인 시각은 차례로 벗겨진다. 건설 현장에서 들리는 천둥소리 같은 소음과 덜커덕 거리는 소리 속에서도 분위기는 평화롭다. 고층빌딩을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뒤집을 때, 모든 부조리한 권력(bullying power)은 겸허한 일상 속에서 용해되어 사라질 거라고 당신은 깨닫는다.


그로부터 약 2시간 동안, 조나단 아이브와 댄 와이젠헌트는 나와 함께 걸으면서 건물 내외부를 안내한다. 아이브와 와이젠헌트는 공정의 모든 사소한 부분까지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이를테면 올바른 건축 자재를 찾고자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를 검색하려고 했던 의지와 완벽함을 추구하고자 극복했던 여러 장애물들을 자세히 언급하는데, 이 모든 과정은 생산비용이 수백만 단위로 상각(amortize)되는 애플의 소비자 제품과도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 하지만 이 건물은 단일 크기만 하더라도 280만 평방피트(약 8만 평)이고, 공사기간만 하더라도 8년째이며 수용 인원은 무려 1만 2천 명이다. 과연 어떠한 사람이 이런 장대한 노력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불합리하게 그저 엄청난 숫자만 가지고 이 건물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에요."라고 아이브가 말한다. "물론 꽤 인상적인 기록을 만들었지만, 당신은 그저 이런 것에만 기대어 살지는 않잖아요. 저 문의 유리를 이 크기까지 만들어내는 게 기술적으로 놀라운 일이지만 우리의 업적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업적은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협력하며 걸어 다니면서 말을 하는 건물을 만드는 것이죠." 따로 아이브가 언급하는 진가(the value)는 건물에 없다. 그것은 아마도 나중에 밝혀질 것이다.


링(a Ring)은 잡스가 생전에 캠퍼스에 대해서 첫 번째로 공론화했었을 때 마음속에 품었던 구조와는 다르다. 아이브는 자신의 상사와 함께 새롭게 구상 중인 본사 건물을 주제로 처음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던 때가 2004년이라고 생각한다. "제 생각에, 하이드 파크(Hyde Park)에 있었을 때였을 겁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는 종종 런던 거리를 걸은 적이 있었는데, 하이드 파크 같은 공원에 들려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거든요. 넓은 정원을 둘러싼 건물에 있다는 느낌이 우선적으로 들 수 있게 하는 대학 캠퍼스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대학이 기능하는 여러 요소들도 덧붙였고요. 당신이 어디에 있었던지 간에, 부지와 지어진 건물 사이의 접속성은 즉각적으로 이뤄졌을 것 같은 캠퍼스를 얘기했어요."


이런 논의는 계속되었고, 회사 전체 안에서 좀 더 활성화가 되었지만 애플이 건설 프로젝트에 실제로 착수했던 때는 2009년에 이르러서였다. 쿠퍼티노에서 비어 있는 땅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애플은 원래 본사인 인피니트 루프(Infinite Loop)에서 몇 마일 떨어진 용지 75 에이커(약 9만 1천 평)를 가까스로 구입했다. 또한 애플은 프로젝트를 맡아 줄 알맞은 건축회사를 찾아 나섰는데, 이때 잡스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이자 독일 베를린 국회의사당(Berlin Reichstag), 홍콩 국제공항, 그리고 런던의 악명 높은 거킨 타워를 설계한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에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잡스는 그를 2009년 7월에 연락했고, 포스터의 기억에 따르면, 애플은 "도움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2개월 후에 노먼 포스터는 쿠퍼티노에 도착했고, 그날 온종일 잡스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인피니트 루프에 있는 잡스의 사무실에서, 나중에는 팔로알토에 있는 잡스의 집에서 함께 했었다. 그때 포스터는 자신의 새로운 클라이언트가 애플의 새로운 집을 구성할 유리나 석조, 나무와 철에 대해서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잡스가 운을 떼면 포스터는 자신의 일생에서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바로 그 자리에서 A4 규격 스케치북에 미친 듯이 스케치하면서 잡스가 꿈꾸고 있었던 세계를 암시하는 "단어의 그림"을 만들어냈다. "잡스의 기준은 스탠퍼드 대학 내 사각형 안뜰 공간이었습니다." 광활한 외부 녹지가 주변에 배치되어 있고, 건물 가장자리를 따라 한 사람이 산책할 수 있는 야외 오솔길이 주위에 딸린, 지면에 가까울 정도로 낮은 학교 건물이 있는 대학 캠퍼스의 중심 공간을 참고하면서, 곳곳에서 이런 느낌이 나도록 해야 한다는 게 잡스의 주문이었고 포스터는 말한다.


잡스와 좀 더 많은 수의 건축가들의 함께 논의하는 일련의 회의 가운데 첫 번째 시간이 다가오자, 포스터는 곧바로 영국 런던에 위치한 자신의 회사인 '포스터+파트너스(Foster + Partners)'의 인력을 이곳에 추가로 불러 모았다. 과거의 추억 따위를 질색한다고 매번 공언한 잡스이지만, 어린 시절을 보낸 베이 에이리어(Bay Area, 샌프란시스코 만안 지역)의 특색 가운데 자신이 선호하는 것을 바탕으로 여러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의 브리핑은 모든 것이 다 캘리포니아였습니다. 그가 꿈꾸던 캘리포니아였지요."라고 포스터의 파트너이자 건축 프로젝트를 이끈 스테판 베흘링(Stefan Behling)이 말한다. 애플이 구입한 부지는 원래 아스팔트로 덮인 공업단지였다. 하지만 잡스는 이 지역이 산책로가 곳곳에 존재하는 구릉지대(hilly terrain)로 탈바꿈되는 것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다. 또한 그는 디쉬(Dish)라는 지역을 언급하고자 스탠퍼드를 다시 한번 끄집어냈다. 디쉬는 스탠퍼드 대학 캠퍼스 부근에 있는 매우 유명한 하이킹 지역이고, 구불구불한 언덕 아래에 무선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다.


캠퍼스 건축에 관련된 회의는 매번 5~6시간을 넘기곤 했는데, 잡스는 생애의 마지막 1~2년 가운데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에 소비했다. 자신이 매우 까다롭게 요구한 부분에 대해서는 극도로 신경을 쓰는 잡스였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무서운 당혹감을 느꼈다. 베흘링은 한 가지 사례를 잠시 회고한다. 잡스가 사무실 내벽에 대해서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어떤 목재를 원하는지 정확히 꿰뚫고 있었죠. 그저 '나는 참나무가 좋아요', 혹은 '나는 단풍나무가 좋아요' 수준이 아니었어요. 그는 목재를 커터퀏(quarter-cut)으로 잘라야 한다고, 자르려면 무조건 겨울에 하고, 특히 1월이 좋은데, 그 이유로 당분과 수액이 제일 적다는 것을 들더군요. 흰머리가 난, 경험이 많은 건축가들도 그저 앉아서 그의 말을 들으며 '씨발, 장난 아닌데..(Holy Shit!)'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유수의 애플 제품처럼, 건물도 그 자체의 기능에 따라 외부 모양이 결정된다. 이곳은 직원들끼리 서로 개방되어 있고, 바깥 자연과도 연결된 일터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그 핵심은 소위 '팟(pods)'이라고 불리는, 협업과 작업을 위한 모듈형 구역 분할 방식에 있다. 잡스의 아이디어는 이러한 팟들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형태였다. 사무공간을 위한 팟, 협업을 위한 팟, 그리고 친교를 위한 팟 등. 마치 필립 글라스(Phlip Glass)가 만든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런 팟들은 보다 민주적으로 분배될 것이다. CEO조차도 특별한 공간을 가지지 못하고, 공간 배치에 그 어떠한 부조화를 일으킬 수가 없다. 애플은 그간 철저한 기밀주의 때문에 악명이 높았지만, 이 프로젝트를 "필요할 때는 밝히는 기준(need-to-know basis)"으로 분류함에 따라 잡스가 자유롭게 도출된 아이디어가 평이한 공간을 넘나들며 곳곳에 침투할 수 있는 다공성(porous)의 뼈대를 제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모든 공간이 개방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조나단 아이브의 디자인 스튜디오는 반투명 유리로 둘러싸여 있다. 하지만 인피니트 루프 시절보다는 확실하게 더욱 개방적일 것이다.


"처음에는 잡스가 이러한 팟들을 가지고 얘기를 할 때 무슨 소리인지 도통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주 세밀하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해주었죠. 딱 1분 정도 혼자서 집중한 다음에 일련의 사람들과 우연히 부딪힐 수 있는 공간 같은 걸 말이죠."라고 베흘링이 말한다. "이 건물 안에 레스토랑을 과연 몇 군데나 만들 수 있을까요? 단 하나입니다. 모든 직원들을 한 공간에 수용 가능한 엄청난 크기의 레스토랑이어야 합니다. 당신이 그곳에 가면 또 우연히 다른 팀의 동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눌 수밖에 없겠죠." 스스로 만든 공간적 개념을 부분적으로나마 좀 더 발전시키는 동시에 잡스는 자신이 운영하던 또 다른 기업인 픽사(Pixar)에서도 직원들로 하여금 평상시에 화장실 가는 것보다 더욱 많은 시간을 홀로 돌아다니게 만들어 다른 사람들과의 우연한 협업을 유도하는 것을 골자로 한 본사의 내부 디자인에도 관여를 했었다. (그 프로젝트에서 잡스가 너무나 많이 개입을 했었기 때문에 픽사 부족원들은 본사 건물을 "스티브의 영화"라고 따로 불렀다) 애플의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잡스는 혁신을 일궈내는 브레인스토밍과 함께 고도화된 집중력을 원하는 엔지니어의 욕구를 유지시키는 편에 머물렀다.


수많은 팟들을 구현하기 위해서 본사 건물의 전체적인 형태는 원래 약간 부푼 클로버 잎 모양에 가까웠다. 애플 쪽 사람들은 이것을 프로펠러라고 불렀다. 클로버 잎사귀 세 잎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중앙의 둥근 핵 부분을 감싸는 구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잡스는 이런 구조가 통용되지 못할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우린 지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잡스는 2010년 초봄에 여러 건축가들에게 말했다. "내부는 매우 비좁을 테고, 외부는 매우 헐거워질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잡스의 이 한 마디를 필두로, 100여 명이 넘는 노먼 포스터의 팀은 몇 주 동안 초과근무까지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한때 팀원 수는 250명에 육박하기도 했다) 2010년 5월에 스케치북에 스케치를 하면서 포스터는 하나의 짧은 구절을 휘갈겼다. "원형으로 갑시다(on the way to a circle)."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이 쓴 스티브 잡스의 전기에 따르면 이 부분에 대해서 다른 일화가 나오기도 한다. 잡스가 자신의 아들인 리드(Reed)에게 클로버 잎 모양의 구조를 그린 스케치를 보여주자, 위에서 보면 남성 성기 모양과 비슷해 보일 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음날, 잡스는 아들의 의견을 건축가들에게 계속 언급하면서 "여러분들의 머릿속에서 이 이야기는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거예요."라며 환기를 시켰다. (포스터나 베흘링은 잡스의 언급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한다)


2010년 6월에 다다르서야 가운데가 뻥 뚫린 원형 건물(a circle)로 결정이 났다. 그 누구도 이 구조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이것이 필연적이라고 느꼈다. "잡스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착수했습니다."라고 포스터가 말한다.


댄 와이젠헌트는 그해 가을이 되면 쿠퍼티노에 역시 위치한 휴렛팩커드(HP)의 과거 본사 캠퍼스 부지를 이용할 수도 있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 캠퍼스는 애플이 사용할 부지 바로 북쪽에 있었으며 100 에이커(약 123만 평) 넓이였다. 게다가, 이 소식은 잡스에게 있어 큰 의미로 다가왔다. 10대 시절에 잡스는 교묘한 전략을 취하며 휴렛팩커드에 인턴으로 들어갔는데, 당시는 그가 영웅이라고 생각했던, 휴렛팩커드 창업가들이 건물 곳곳을 걸어 다니면서 자사의 컴퓨터 사업 부서 분할을 위해 복합상업지구를 마음속에 그리던 바로 그때였다. 현재 휴렛팩커드는 위세가 많이 꺾였고 더 이상 부지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와이젠헌트는 계약을 성사시켰고, 결국 애플은 자사 건축부지를 175 에이커(약 21만 평)로 확대했다.



스티브 잡스는 언제나 건물 부지 대부분을 나무 조경으로 꾸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볼 법한 아름답고 신비로운 정원에 둘러싸인 건물을 만들고자 최고의 나무 전문가까지 섭외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잡스는 디쉬 지역의 난풍을 유달리 좋아했기 때문에 수목관리사 한 명을 채용해 일을 맡겼다. 얼굴에 수염이 가득했고, 성격은 명랑한, 그리고 품행은 영화 [위대한 레보스키]의 주인공처럼 호탕한 데이비드 머플리(David Muffly)는 자신의 사무실에 와서 나무에 대해 얘기 좀 해달라는 잡스의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그때 머플리는 먼로 파크(Menlo Park)에 위치한 한 고객의 집 뒤뜰에 있었다. 그는 애플 CEO 특유의 취향과 지식으로 인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 "잡스는 대부분의 수목관리사들 보다 월등한 감각을 지녔습니다." 머플리는 말한다. "그는 어느 나무가 좋은 재질을 지니고 있는지 시각적으로 구분했습니다." 잡스는 캠퍼스가 고유한 식물상(相)의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에 단호했고,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성장하고 있었을 때 자주 봤던 과수원을 떠올리면서 유실수를 특히 원했다고 한다.


애플은 궁극적으로 나무 9천 종 정도를 심을 계획이다. 머플리는 풍경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하고, 가뭄에 강한 품종을 선택해서 앞으로 자신이 가꿀 조그마한 숲과 초원이 기후위기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주문을 들었다. (애플은 이러한 위기를 예방하기 위한 생태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건물 자체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 가동이 될 것이며, 그 에너지는 지붕 위 태양열 집열기에서 생성된다고 설명했다) 잡스의 목표는 단순히 미학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걸어 다닐 때도 최고의 아이디어를 구상했는데, 특히 자연이 펼쳐진 곳에서 느릿느릿 걸음을 옮길 때가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그는 애플의 직원들도 자신과 비슷한 방식을 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국립공원에서 업무를 본 다는 게 상상이나 되세요?"라고 팀 쿡(Tim Cook)이 말한다. 그는 2011년에 잡스에 이어서 애플의 CEO 자리를 물려받았다. "해결하기 어려운 현안을 가지고 고민할 때 저는 자연으로 나갑니다. 우리는 지금도 나갈 수 있습니다! 실리콘밸리 같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겁니다."


쿡은 자신의 친구이자 상사인 잡스와 함께 캠퍼스 조성 계획에 관하여 마지막으로 의견을 나누었던 2011년을 잠시 떠올린다. "제가 그와 실질적으로 대화를 나눈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그가 죽기 전날인 금요일이었죠." 쿡은 말한다. "저와 잡스는 영화 [리멤버 타이탄]을 함께 시청했습니다. 제가 원래 좋아했던 작품이었어요. 하지만 잡스도 이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 후에 캠퍼스 부지에 대해 얘기를 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그것은 잡스가 제 몸을 지탱하는 유일한 원천이었죠. 처리하기 힘든 몇 가지 사항 때문에 우리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투의 농담을 그에게 던졌습니다만, 실제로 우리는 그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빼먹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모든 현안 가운데 가장 힘든 난제였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어느 직원에게 캠퍼스 본사 건물의 자리를 마련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어느 직원을 본사가 아닌 다른 건물에 배치해야 하는지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자 잡스는 갑자기 큰 웃음을 터뜨리더군요."


한 바퀴 순환 가능한 원형 건물(Full Circle). 그렇다. 이것은 마치 우주선과 닮아 있다. 하지만 이 거룩한 장관 이면에는 애플 임원진이 염원하는 근무자 생산성 향상과 지진 및 가뭄의 대비, 그리고 모든 것을 꿈꿨던 한 사람의 비전이 실현될 마스터플랜이 고스란히 존재한다. (블랑카 메이어스, Blanca Myers)



1. Hilltop Theater

1,000석 규모로써 '스티브 잡스 극장'이라 불리며, 금속 탄소섬유 지붕으로 덮인 높이 20피트 (6 미터), 길이 165 피트 (50 미터) 유리 실린더가 특징이다. "캠퍼스에서 제일 높은 언덕 꼭대기에 위치합니다."라고 팀 쿡은 말한다. "잡스 느낌이 확 옵니다."

2. Parking Space

2012년에 애플 임원진은 이 프로젝트의 예산이 초과될까 봐 전전긍긍했다. "예상을 꽤 벗어났던 일이었습니다." 쿡이 말하기를, 여러 건축가들 가운데 한 명이 묘사한 대로 예산의 "긴축(diet)"이 필요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나의 절충안이 나왔다. 6천대 수용 가능한 지하 주차장과 3천대 수용 가능한 지상 주차장(원래 계획의 비용이 더 많이 나왔다)을 건설하는 대신에, 이 비율을 추후에 뒤집었다.

3. Shock Absorbers

지진에 견디고자 이 원형 건물에는 커다란 크기의 강철 면진 장치들(steel base isolators)이 설치되어 있어서 파동이 생길 시 건물은 어느 방향이든지 간에 약 4.5피트(약 1.3 미터) 정도 떠 있게 되며, 중요한 기능은 계속 유지될 수가 있다. "그저 살아남는 것에 지나지 않겠다는 우리의 포부를 저는 사랑하는 편입니다."라고 아이브가 말한다. "이 건물은 여전히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4. Tiled Tunnel

하얀 타일로 실내를 이룬 755 피트(약 230 미터)짜리 터널은 월프 로드와 캠퍼스 및 원형 건물의 지하주차장을 이어준다. 조나단 아이브의 디자인 팀이 모양과 타일의 기능을 승인하기 전까지 애플 측은 터널의 구석을 프로토타입으로 만든 바 있다.

5. Wellness Facility

체력 단련실과 2층 높이의 요가 전용 공간 외에도 10만 평방피트(약 2천8백여 평) 넓이의 피트니스 & 웰빙 센터에서는 직원들에게 의료 및 치과 혜택을 제공한다. "저는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꽤나 믿는 편입니다. 더 나은 기분과 활기찬 움직을 보이거든요." 팀 쿡은 말한다. "이 모든 것은 고객만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주의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이곳에 고객들은 바로 우리 사람들, 애플 직원들입니다."

6. Breathing Building

건물은 살아 숨 쉬여야 한다는 잡스의 소망을 받들기 위해서 건축공학 팀은 포뮬러 원(Formula One) 레이싱 팀에서 공기의 흐름을 최적화하는 것을 연구한 전문가들로부터 협의를 진행했다. 이 원형 건물은 외부 겉면에 따라 설치된 소피트(soffits, 돌출된 캐노피의 밑바닥)를 통해 공기를 빨아들인다. 다른 곳에서는, 굴뚝 역할을 맡는 샤프트(shafts)가 따스한 공기를 외부로 뿜어낸다.

7. Solar System

280만 평방피트(약 7만 8천 평) 넓이의 이 원형 건물은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 전원 공급을 받을 텐데, 대부분은 캠퍼스에 위치한 2만 2천 평 넓이의 대형 태양열 집열기로부터 생성된다.

8. Giant Doors

카페 외부 벽면에 설치된 유리 미닫이 문은 건물 4층 높이까지 이뤄져 있다. 문 하나만 보더라도 무게가 44만 파운드(약 20만 킬로그램)에 다다른다. 이런 문들은 건물 지하의 전자 메커니즘으로 인해서 슬며시 닫히거나 열린다.

9. Native Landscape

잡스는 자연 속을 거닐면서 최고의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한 건축가가 잡스의 "이상화된 캘리포니아"라고 묘사한, 나무로 이뤄진 녹음이 가득한 그곳에서 애플 직원들이 영감을 받는 순간을 상상하기도 했다. 애플은 나무 9천 종 가까이를 심을 예정이고 가뭄에 강한 종을 선별하기 때문에 급격한 기후변화에도 끄떡없다. 


이제 남은 건 애플이 착공만 하는 것이었다.


애플 임원진은 2012년에 포스터+파트너스의 디자인을 최종 승인했다. 애플이 병적으로 소비자 제품을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어내는 것처럼, 새로운 본사 건물도 그런 방식과 별 차이 없었다. 링의 곳곳에 위치한 다양한 구역을 위한 준용 모델(working model)이 있을 것이다. 휴렛팩커드 건물 가운데 하나였던, 파괴되기 전에 그 건물에 있었던 터널의 길이를 본뜬 모형이거나 인피니트 루프 부근에서 영업하는 애플 파크에 들어설 것보다 약간 작은 규모의 실제 카페 등이 있겠다. "우리는 공정 과정을 하나의 생산 프로젝트라고 여겼고, 이곳 안에서 가능하면 많은 것을 해보려고 했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가능한 것들을 모아서 레고 조각처럼 조립하면 되었죠."라고 쿡이 말한다. 효율적인 공급망 구축에 있어 쿡은 한 명의 대가(大家)이다.


소비자 제품을 공급할 때와 마찬가지로 애플은 계약업자들에게도 그간 그들이 전혀 경험하지 못한 문제들을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어떻게 하면 세계에서 제일 크고 내구성이 강한 유리를 만들 수 있을까요? 아, 물론 그 유리는 곡선으로 휘어져야 하는 조건이 있습니다만. "잡스는 엄청난 크기의 유리에 대한 아이디어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베흘링이 말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애플 스토어를 자체 디자인 한 이력을 바탕으로 애플은 독일 기업인 질레 그룹(Seele Group)과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특히 이들 기업 간의 협력은 뉴욕 5번가에 있는 매장의 대형 유리 큐브 작업에 빚을 발한 바 있다. 전 세계적으로 궁금증을 자아내는 링은 마치 수표를 현금화하는 카운터를 가린 보안 장막과 비슷한 형국이다. 물론 이곳에서의 벽은 높이가 45 피트(약 13 미터)나 되는 안전유리로 구성되어 있다. 질레 그룹은 이런 대형 유리 패널을 만들 수 있는 장치를 소유하고 있지만, 한 번에 패널 1개 이상을 만들지는 못한다. 패널 하나를 공정하는 데 14시간 정도 걸린다. 그런데 애플은 패널 800개를 주문했다. 질레 그룹은 이 주문을 따라갈 능력이 없다. 그래서 이 그룹은 오토클레브(auto clave) 성형법이 가능한 자사 가압로를 사용하면서 더욱 큰 자재를 생성하는데, 한꺼번에 패널 5개짜리를 만들어낼 수가 있다. 질레 그룹의 생산감독인 넬리 딜러(Nelli Diller)는 "당시 저희가 작업했던 유리 패널 크기는 업계에서 가장 컸습니다만, 지금 작업하는 것은.. 정말로 거대합니다."라고 말한다.


물론 유리 패널 제조는 쉬운 과정에 속했다. 또한 질레 그룹은 원형 건물에 초현대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지느러미들, 다시 말해 캐노피를 생산할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이번 프로젝트에 섭외가 되었던 것이다. 캐노피가 지금은 건물의 상징적인 장식으로 기능하지만, 잡스가 원래 원하던 바는 아니었다. 추후에 그가 동의했을지는 몰라도 처음에는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의 완벽한 세계에서는 캐노피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라고 베흘링이 말한다. "맞아요. 저희는 모든 건물 면을 통째 유리로 덮을 수가 있습니다만, 이런 기후에서는 반드시 그늘이 져야 합니다. 챙이 넓은 야구모자의 중요한 작용을 반드시 이끌어내야 합니다." 포스터+파트너스와 조나단 아이브의 팀은 지느러미 같은 돌출구를 공동으로 작업했고, 질레 그룹은 그것을 어떻게 조형(造形)할지를 고민하는 동시에 그것도 가능하면 하얗게 만들어달라는 고객의 지시사항에 대해 뾰족한 수를 강구해야만 했다.


돌출부나 다름없는 캐노피를 역시 유리로 만들어달라는 게 난제였다. 그리고 모래 속 철분(물론 이것도 최종적으로 유리였다)때문에 생기는 연한 녹색을 띠는 성질도 없애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전 세계에서 품질이 제일 좋은 유리를 구입하더라도, 녹색을 띠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베흘링이 말한다. "이것은 모두를 죽이는 작업이었어요."


다행히도 아이브는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이후로 순백을 감정하는 데 있어 지구상에서 가장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초기 아이팟(iPod)에서의 흰돌고래 같은 백색의 순수함을 기억하는가? 아이브의 디자인 팀은 유리의 백색 뒷면을 덧칠한 후에, 한 쪽면에 하얀 실리콘을 바른 금속판을 구멍 내고, 그것에 고정시켜서 녹색 빛깔을 상쇄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베흘링의 말에 따르면 극소량의 분홍색도 하얀 안료에 혼합되었다) 이 방안은 효과를 거두었고, 유리처럼 보이는 캐노피를 제조할 때에도 남다른 이점을 안겨다 주었다.


이제는 빗물이 자칫 캐노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캐노피 디자인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유리로 수 마일(mile)이나 이뤄진 건물이 물줄기로 인해 가려진다면, 그런 실수를 했다고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라고 아이브가 공포에 휩싸인 표정을 지은 채 말한다. 빗물이 캐노피에 고여 남아있는 것이 아닌, 아래를 향해 떨어지는 방안을 수립하기 위해서 애플과 포스터+파트너스의 디자이너들은 미네소타 대학의 1994년도 연구보고서인 "찻주전자 효과: 편향, 습윤, 그리고 이력(履歷) 현상에 따른 판 변화(The Teapot Effect: Sheet-Forming Flows With Deflection, Wetting, and Hysteresis)"를 참고했다. 이 보고서는 빗물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 캐노피가 어떤 곡선으로 만들어져야 하는지를 알려줬다.


질레 그룹의 입장에서는 카페 출입용으로 엄청난 크기의 유리 미닫이 문을 제조하는 것이 제일 크나큰 난제였다. 높이만 하더라도 지상 1층에서 4층까지였으니 말이다. 각각의 문짝만 하더라도 85 피트(25.9 미터) x 54피트(16.4 미터)이다. "지구상에서 이 정도 유리가 쓰이는 곳은 비행기 격납고밖에 없을 겁니다."라고 딜러가 말한다.


한쪽 문을 감싸는 철의 무게는 165 메트릭 톤이며, 약 36만 파운드(약 16만 킬로그램)에 이른다. 또한 로드(rods) 같은 여타 건축 구조물도 따로 무게가 18만 파운드(약 8천1백 킬로그램)가 나간다. 여기에다 유리 패널 10개짜리 문이 들어갈 텐데, 패널 하나마다 하중은 어림잡아서 6천5백 파운드(약 3천 킬로그램)나 된다. 각각 44만 파운드(약 20만 킬로그램)짜리 문 두 개가 있어야 하고, 그것도 부드럽게 밀어서 계폐가 되어야 한다. "레스토랑에 있는 문 말이죠. 미닫이 문을 열거나 닫을 때 소음이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딜러가 말한다. 해결방안은 문 밑 지하에 관련 기계장치를 심는 것이었다.


애플과 포스터 + 파트너스의 팀원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산적해있었던 수십 가지의 난제들을 공동으로 풀고 해결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브 잡스가 원했던 내용과 거의 흡사하고, 초기에 세웠던 예산안과 얼추 맞아 들어간다고 주장한다. 지난 2012년에 건축 예산이 초과될 조짐을 보이자 프로젝트 담당자들은 "긴축"이라는 개념을 적용시켰다. 베흘링에 따르면 비용이 그나마 덜 나가는 지상 차고 공간을 활용해서 지하주차장의 원래 공간 일부분을 포기하는 절충안도 제시되었다. (현재까지 애플은 이번 공사비로 50억 달러가 들었다는 주장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나와 함께 있을 때도 팀 쿡은 이것을 일체 바로잡거나 정정하지 않았다) "큰 그림은 바뀌지 않았다는 점을 내세우고 싶군요." 포스터가 말한다. "잡스가 지금 되살아났다고 하더라도, 그가 마지막에 드로잉으로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받아들였을 것 같아요. 그가 살아생전에 발견하지 못했을 사소한 부분을 물론 찾아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승인할 거라고 믿습니다."


포스터 + 파트너스와 아이브의 디자인 팀은 잡스 이후의 세부적인 사항들을 손수 일궈냈다. 이들은 수도꼭지부터 화장실 벽에 고정되는 세면기까지 건물의 모든 단면을 사용자 중심주의로 개편했다. 이런 요소들은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잡스가 원했던 사항이라고 아이브가 처음으로 추측한 결과물은 아니었다. "잡스가 제품에 대해 세세히 관여하던 시점과 그렇게 하지 못한 시점이 있었습니다." 아이브는 잡스가 사망하기 몇 달 전을 언급한다. "안타깝게도 이 프로젝트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죠."


내가 애플 신사옥을 탐사할 동안에, 다시 말해서 일행이 지상 차고 공간을 막 빠져나올 때, 아이브는 우리가 바라보는 것을 소개하면서 들뜬 나머지 약간은 몸을 떤다. 그는 콘크리트 빔 모서리가 얼마나 부드럽게 만들어졌는지를, 그리고 사각형 건물의 귀퉁이를 곡선으로 얼마나 조심스럽게 주조했는지를 가리킨다. 마치 이것은 다이얼로그 박스(dialog box)에서 보이는 원형에 가까운 사각형과 비슷하다. 게다가, 배수관이나 전기 배선 같은 기초적인 시설은 콘크리트 빔 안에 가려져 있어서 모든 구조가 건물 지하실에 볼 법한 분위기를 풍기지 않는다. "우리는 값비싼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이브는 지상 주차 공간의 변환론적 본질이라고 스스로 묘사한 것을 재차 정의 내리면서 말한다. "하나의 디자인 아이디어를 배려하고 발전시키면서, 좀 더 견고해지는 과정. 음,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죠. 우리는 그저 표준화된 양식을 쉽고 간단하게 수행하지 않을 뿐입니다."


링 내부에서 아이브는 특별한 자존심을 이끌어내는 또 다른 기능 하나를 오랫동안 주목한다. 그것은 바로 계단들이다. 계단은 완벽한 하얀색을 일궈낸, 얇고 가벼운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또한 독특한 난관이 있는데, 마치 계단 옆에 나란히 세워진 벽에서 촉발된 느낌을 풍긴다. "조립된 판에 그저 나사를 조이면서 난관을 만드는 것은 본질적으로 부차적인 일이죠." 아이브는 그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아주 자유롭게 경멸을 나타내며 말을 한다. "하지만 당신은 디자인을 가지고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나는 계단통(계단을 포함하는 수직 축)이 비상계단 역할도 맡는다고 나중에 깨닫는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불길의 확산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육중한 문이 포함된다. 하지만 잡스는 요트의 비상계단이 작동하는 기능에 영감을 받아서 화재가 발생했을 시 천장에 툭 튀어나온 고압의 스프링클러가 강력한 수증기를 내뿜어 계단통을 둘러싼 유리 패널을 적시는 안을 내놓은 바 있다. 이 제안은 산타클라라 카운티의 소방당국으로부터 확실하게 승인을 받았다.



우리 일행이 막 완공된 팟들을 자세히 살필 때 나는 평범한 프로그래머 사원이 일하게 될 사무 공간을 본다. 애플과 포스터 + 파트너스가 공동으로 디자인 한 손잡이부터 보는데, 그들은 미닫이 문이나 여닫이 문에도 똑같은 모델을 장착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 후에 나는 여러 초기 프로토타입 모델 일부를 바라봤는데, 고도 추출 기술이 필요한 버제스 혈암(Burgess Shale)의 화석 기록을 체크하는 느낌을 받는다. 어떤 것들은 긴 모양에 거의 돌출되지 않은 완만한 형태였고, 또 어떤 것들은 짧고 촘촘한 면이 보여 당신이 어떻게 잡든지 간에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듯 했다. 이 모든 손잡이들은 맥북 프로(MacBook Pro)에 쓰였던 알루미늄과 동일한 것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물론 손잡이의 최종 버전은 문틀에 딱 맞는 형태로 고안될 텐데, 물론 하늘에 있는 그 사람은 애플의 본사 건물과 이질적인 무엇인가를 하도록 절대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사무공간 벽면에 쓰인 패널은 프로젝트가 가동될 초창기에 일련의 건축가들이 마음속에 "씨발, 장난 아닌데.."라고 외쳤던 순간에 잡스가 지시한 것과 엄청나게 비슷해 보이지만, 목재 대부분을 추운 겨울인 1월에 공급받지 않았다. 환경적인 고려 때문에 애플은 재활용된 재목으로부터 주문 맞춤형의 수목 합판을 얻었다. 사무용 책상은 그 자체로 높이가 조절 가능한데, 이것 역시 손잡이처럼 여러 버전으로 만들어졌고 대부분은 벽면에 고정되는 브래킷(brackets)의 외형을 각기 다르게 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이 브래킷에는 접속성 때문에 전깃줄처럼 광케이블이 포함되어 있다. 책상을 높이거나 낮게 하려면 밑에 설치된 두 개의 버튼을 사용한다. 사용자들은 단지 감으로 두 개의 버튼의 차이를 알 수가 있다. 볼록한 버튼이 높게, 그리고 오목한 버튼이 낮게 만들어 준다.



잡스는 에어컨 장치를 싫어했지만, 그 가운데서 팬(fans)을 극도로 혐오했다. (그는 매번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 에어컨과 같은 장치들을 자신의 컴퓨터와 멀리 떼어놓았다) 하지만 잡스는 또한 사람들이 건물 창문 여는 행위를 원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그는 자연 환기(natural ventilation)를 주장했고, 사람들이 안에 들어와서 숨을 쉬며 일하는 것처럼 빌딩 그 자체도 숨을 쉬도록 요구했다. "플랩(flaps)과 개방 메커니즘입니다." 베흘링이 설명한다. "이 모든 것은 바람이 어디서 들어오는지, 그리고 공기가 어떻게 실내 공간을 거쳐 이동하는지를 측정하는 센서와 연관이 있습니다." 내부 온도가 엄격하게 통제되는 밀폐된 건물과 달리, 링은 외부 공기를 순환시킨다. 층 바닥과 천장을 아우르는 콘크리트에는 물이 흐르는 튜브가 안에 삽입되어 있는데, 이는 내부 온도를 언제나 화씨 68~77도(섭씨 20~25도) 사이로 맞추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냉각 장치는 아주 더울 때나 추울 때만 가동한다. (이론적으로나마 직원들은 팟 안에 온도를 조절하기 위해 자동 온도 조절기의 전원 버튼을 누르지만 단지 몇 도 정도만 수정이 가능하다)


나중에 나는 애플의 환경부서 "짜르(czar)"나 다를 바 없는 리사 잭슨(Lisa Jackson)과 사무실 내부 온도에 대해 토론을 한다. 잭슨은 요점만 딱 잘라서 말한다. "우리가 직원들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에요." 그녀가 말한다. "우리는 외부세계와 접속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작금의 내부 온도가 스스로 작동되게끔 직원들에게 알리는 겁니다. 우리는 당신이 이곳에서 카지노에 와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아요. 우리는 당신이 이곳에서 하루 시간대 가운데 지금이 과연 몇 시인지, 그리고 바깥은 지금 몇 도인지를 스스로 인식하게 만들고 싶어요. 정말로 바람이 불고 있는 걸까요? 이러한 방식은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보다 흐릿하게 만들려고 했던 잡스의 초기 의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신의 감각을 일깨우고자 하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기능들에 의해 압도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언젠가 나에게 엘리베이터에 새겨진 글꼴이나 화장실 변기에 숨겨진 파이프 라인에 대해 물어보라. 또다시 원점으로 몇 번이나 돌아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애플 파크는 스티브 잡스가 기획한 목가적 이상향인가, 아니면 미칠 정도로 탐닉에만 빠진 아주 꼼꼼한 사람의 악몽에 지나지 않는가?


애플이 내놓는 답변은, 이곳에 존재하는 완벽함이 제품을 창조할 때 쏟아붓는 노력과 잘 조화되도록, 더 높은 단계의 양질과 혁신을 추구하도록 엔지니어들, 디자이너들, 그리고 심지어 카페 매니저들에게 동기 부여되는 환경 그 자체에도 잘 어울리도록 자사의 전체 인력에 영감을 골고루 주는 걸로 대신한다. (애플 파크 내부의 카페를 총괄 지휘한 프란세스코 롱고니(Francesco Longoni)는 애플이 피자 치즈 조각이 녹아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는 박스를 개발해 특허를 얻도록 많은 도움을 줬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노력의 결실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아이브가 말한다. "사람들 수가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평가를 달리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미래적 관점에서 평가를 할 뿐입니다. 목표는 하나의 회사나 다름없는 우리가 과연 누구인지를 반영하는 경험과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이 건물은 우리의 집이고, 앞으로 우리가 창조하는 모든 것들은 바로 여기서 시작될 겁니다."



애플 파크가 완공을 향해 서서히 나아갈 때 건축 비평가들은 좀 더 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os Angeles Times) 건축 비평 전문 기자가 링을 "퇴화하는 누에고치(retrograde cocoon)"라고 혹평한 이래로 온라인에 공개된 링의 디지털 렌더링을 향한 미학적 판단은 최근에 들어와서 사회, 혹은 문화비평가들의 타깃이 되고 말았다. 이 캠퍼스는 인간의 개별 영역을 배타적으로 분리시킨다는 이유로 여타 다른 기업의 본사에 관여한 도시재생 전문가들과 각을 세우고 있다.  (아마존, 트위터, 그리고 에어비엔비는 기름을 모조리 먹어치우는 자동차나 와이파이로 무장한 버스로 인력을 출퇴근하게 만드는 것과 대립하면서, 자사 기술 인력을 도시와 아예 통폐합시키는 정책을 수립하려는 움직임에 부분적으로나마 동참하고 있다) 이 원형 건물의 레이아웃은 유연함이 너무나 없는 편이고, 구글이 지금 계획하고 있는 마운틴 뷰(Mountain View)의 새로운 본사 건물(초소경량의 블록 구조라서 회사가 새로운 제품군에 투자할 때 건물을 쉽게 변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과는 다르게, 애플 파크는 사람들이 일을 하는 이유와 장소, 그리고 그 방식에 대해 훗날 있을 잠재적 변화를 지금이나마 준비하려는 자세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곳에는 탁아시설 따위가 전무하다. UC 버클리에서 도시디자인을 가르치는 루이스 모징고(Louise Mozingo) 교수는 "미래의 근무 조건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구식 모델에 지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정형적인 디자인 설계라도 부분적으로는 매우 화려하겠지만, IT 기술 업계에서 전반적으로 유행하는 기업 본사 건물에는 역행하는 편입니다."라고 구글, 아마존, 그리고 텐센트의 건물들을 디자인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설계 회사인 NBBJ의 건축가, 스콧 와이어트(Scott Wyatt)가 설명한다.


노먼 포스터는 와이어트의 평가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애플 파크 부지에서 이뤄지는 공사의 대표적 모델이라 할 수 있는 화려한 내부 카페에 앉아서 자신의 디자인을 대변하는 공식적인 논평이 후에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의문점에 묵과할 사람이 아니다. "이 건물은 스티브 잡스의 열정으로 꽃 피웠습니다." 그는 말한다. "초록에 둘러싸인, 아주 매혹적인 광경으로 이어지는 이 아름다운 건물은 사람만 1만 2천 명을 수용할 겁니다. 바로 이것이 진실된 유토피아적 구현입니다. 부분적으로나마 나의 임무는 곳곳에서 쏟아지는 비평에 대고 '당신은 미친 게 틀림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이겠죠."


애플 파크는 어쩌면 건축학적 역작(tour de force)이 되겠지만, 포스터는 본질적인 진실에 다가갔다. 자신이 만든 기업의 내부 일터를 영구적으로 만들겠다는, 죽어가는 한 남성의 소원을 진심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맞다. 애플은 캘리포니아 남부 모하비 사막(Mojave Desert)에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 농장으로부터 수송된 소나무들로 가득한 인공 언덕이 근처에 있기 때문에 자사 직원들이 더욱 나은 제품들을 만들어 낼 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기업은 경이로운 제품인 애플 II(Apple II)을 침실에서, 아주 획기적인 제품인 맥킨토시(Macintosh)를 상업복합지구의 한 저층 빌딩에서 만들지 않았나? 새로운 캠퍼스에서 근무할 직원들은 아이폰(iPhone)을 개발하는 데 충분한 영감을 줬던 예전 빌딩을 지금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애플 파크는 미래를 바라볼 줄 아는 어떤 한 남성의 건축학적 분신이고, 그는 앞서 언급한 상징적인 제품들을 만들도록 직원들을 극단으로 밀어붙인 사람이라는 게 좀 더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잡스 특유의 엄격함과 명쾌함은 이제 없지만, 그는 자신의 생애와 가치를 동시에 구현하는 본사 건물을 우리에게 남기고 떠났다. 애플의 주요 임원진과 대화를 할 때마다 등장하는 문구는 "스티브의 선물(Steve's gift)"이다. 이 구절 이면에는 생애 마지막 몇 개월 내내 잡스가 다음 세기의 애플 직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터를 구축하고자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했다는 사실이 숨겨져 있다. "이것은 백 년 가는 결정이었습니다." 쿡은 말한다. "그리고 스티브는 자신의 상태가 그리 썩 좋지 않다고 인지한 생애 마지막 몇 년을 이곳에 쏟아부었습니다."


"일을 편히 하고자 우리가 이 부분에서 그냥 건너뛰어야 했었을까요, 아니면 저 부분에서?" 팀 쿡은 수사학적으로 묻는다. "그랬다면 그것은 애플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리고 디테일이 중요하고, 관리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이곳에서 매일 일하는 모든 직원들에게도 보내지 않았을 겁니다." 바로 이 구절이 잡스가 원했던 것, 언제나 원했던 것이었다. 오늘날의 애플 리더들은 잡스에게 있어 틀림없이 가장 큰 규모인, 그리고 확실히 맨 마지막인 이 제품을 출시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실망을 끼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저는 그를 숭배합니다." 쿡은 말한다. "이것 역시 분명하게도 그의 비전이고, 그의 개념(concept)입니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이죠."


지난 겨울에 팀 쿡, 조나단 아이브, 그리고 애플 PR 총책임자인 스티브 다울링(Steve Dowling)은 잡스의 미망인인 로렌 파월 잡스(Laurene Powell Jobs)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건설 중이었던 캠퍼스의 정식 명칭은 없었다. 한 가지 선택사항은, 후임 CEO가 전체적인 공간의 명칭을 정하는 것이었지만, 그리 올바른 선택은 아니라는 느낌이 전해졌다. 더욱 친밀한 명예는 캠퍼스 남동부 구석에 위치한 1천 석 규모의 극장에 그의 이름이 걸려 있다는 것이었다. 잡스는 극장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엄청난 고민을 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과거에 신제품 출시에 맞춰 프레젠테이션을 했던 것처럼, 새로운 제품을 내놓을 때 극장이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 심사숙고했다. "이 캠퍼스 지역에서 제일 높은 언덕에 설치해달라." 쿡은 말한다. "딱 스티브 잡스 같은 생각이었죠."


그래서 그의 이름은 극장명으로 사용될 것이다. 하지만 애플 파크 안에서 스티브 잡스의 지문을 찾으려는 사람이라면 극장이 아닌 다른 곳에 가야 보다 뜻깊은 결과를 낼 것이다. 반짝 빛나는 원형 건물의 모서리 부분에서, 나무들의 흔들림에서, 그리고 우리가 볼 수 있거나, 혹은 볼 수 없는 수천 가지의 다른 세부적인 디테일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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