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st in Translation Nov 01. 2017

인생은 뫼비우스의 띠와 똑같죠

재나 레빈, 2011년 6월 4일, 더 모스 이벤트

원문: Life on a Mobius Strip - The Greatest Moth Story Ever Told, About the Unlikely Paths That Lead Us Back to Ourselves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오직 두 가지만이 무한하다. 우주와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는 하나를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우주가 무한한지를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 말은 옳습니다. 수학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 가능해야 우주 전체가 무한하다는 것은 사실이 됩니다.


한때 저는 연구를 하면서 이 주제에 엄청나게 매달린 적이 있었습니다. 지구를 떠난 인간이 직접 식별 가능한 우주의 가장자리까지 일직선으로 날아가 어떤 은하계에 있는 행성에 도착합니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뒤에 있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은하수이고, 자신이 도착한 그곳이 바로 지구라는 점을 깨닫습니다. 지구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약간 기묘한 가능성도 있습니다. 지구를 떠날 때는 왼손 장갑을 꼈지만, 다시 도착할 때에는 오른손에 장갑이 껴져 있다는 얘기입니다.


난해한 주제만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난관은 애초에 그것이 사실이 아니거나, 어쩌면 풀기 어려운 문제라는 점을 알게 되는 겁니다. 저는 마치 한쪽에는 발견이, 다른 한쪽에는 불확실성이 도사리는 벼랑에 내몰린 사람처럼 느끼곤 합니다. 버클리 대학에서 일을 할 때 저는 샌프란시스코에 살았습니다. 제가 살았던 아파트 건너편에 카페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땅 위에서 벌어지는 현실과 확실히 매개될 수 있는 무언가를 갈구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바로 그곳에서 워렌이라는 남성을 만났습니다.


워렌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였습니다. 그는 저를 향해 빠르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던 도중에, 파란 눈으로 저를 계속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천체물리학자이시군요." 용기를 내서 나에게 말을 건 그였지만, 추진력을 너무나 쓴 나머지 걸음을 멈출 수 없었던 그는, 제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카페 밖으로 나가더니 결국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저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워렌은 제가 원했던 이상형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남자입니다. 운전할 줄도 몰랐고, 자기 명의 집을 소유한 적도, 고등교육을 제대로 받았던 적도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강박 신경증을 앓는 환자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영국 맨체스터의 노동자 계층 가운데 제일 비참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또한 그는 이런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주정뱅이였지..

아버지는 가수였어..

아버지는 주정뱅이 가수였다고..

그리고 인사불성인 채로 어떤 값싼 여인숙에서 살해당했다네.


무슨 말인지 여러분들은 이제 아실 겁니다. 그렇게 좋은 환경은 아니죠. 그래서 저는 그에게 홀딱 반했습니다. 완전히 넋이 빠져들었죠. 그의 인상은 강렬하고, 활기는 매우 넘칩니다. 뭐든지 자신만의 의견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그때 그는 자신의 음악방송을 개시하려고 했었습니다. 이름은 "셧 더 폭 업(Shut the Folk Up)"이었죠. 


저의 예상은 이랬습니다. "아무도 너의 말투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게 너의 방송의 주요 포인트야. 그 누구도 너의 단어 하나조차 듣지를 못할 거라니까. 너는 그저 고함만 지를 거야." 워렌의 맨체스터 사투리는 생각 이상으로 복잡했습니다. 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의 악센트와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말을 매우 빨리 구사했는데, 단어들이 서로 뭉개졌기 때문에 저로서는 독해가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노래를 부를 때면 그의 목에서는 우렁차지만 아름답고 꽤 따스한 음색이 들려 나왔습니다. 마치 발라드 가수가 노래를 사랑스럽게 부르며 옛날 추억을 회고하듯이, 그의 목소리는 산뜻하면서도 청명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과거에 이렇게 주문한 적도 있었습니다. "위급한 일이 있을 시에 내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주기를 바란다면, 노래를 불러 주면 돼. 알겠지?"


그렇게 저와 워렌은 연인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단 한 번도 저의 일에 대해 물어본 적이 없었고, 이는 제 심리 상태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 둘 다 어디론가 도망치는 사람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워렌은 자신의 고향으로부터, 그리고 저는 제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워렌은 하루 종일 음악과 멜로디를, 저는 하루 종일 숫자와 수학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어쩌면 우리 둘 다 어디론가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양쪽에서 서로를 단단히 끌어당겼다고 생각합니다. 


연애를 시작하고 몇 주쯤 지나자 워렌은 우리가 같이 살아야 한다고 결심했나 봅니다. 그가 제 집으로 들어와서 살아야 한다고 저를 설득했습니다. 몇 가지 독창적인 논리를 내세워 이유를 말하는 워렌을 보며 저는 약간은 의심을 품었지만, 결국 저는 그의 뜻을 받아들여만 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구사하는 맨체스터 은어들을 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그랬습니다. 하지만 워렌은 뭐든지 간에 저를 설득시켰고, 저는 그때마다 수긍했습니다. "곧 돌아올 거야."라고 그는 흥분한 듯 말했습니다. 채 1시간도 되지 않아 그는 돌아왔고, 저의 집에 들어왔습니다. 기타 한 대와 언제든지 멜 수 있는 가방 하나가 유일한 그의 이삿짐이었습니다. "가지고 돌아다닐 수 없는 것은 소유하지 않는다"가 그의 철학이었죠. 우리는 동거를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오싹할 정도로 깜짝 놀랐습니다. 대학원 박사과정을 최근에 끝낸 자신의 딸이 (저는 당시에 MIT에서 이론물리학 박사학위를 따냈습니다) "생활력이 없는(nonviable)", "실천도 못하는(unfeasible)" 같은 단어를 제대로 발음하지도 못하는 불법 이민자와 함께 산다는 사실에 직면하셨기 때문입니다. 제 친구들도 의심에 가득 찬 눈길을 보냈습니다. 우리의 친한 친구이자 음악가인 숀 헤이스는 이런 가사를 썼습니다.


우리는 이 노래를 계속 부르겠어

노래가 완전히 터져서 천 개의 조각으로 나뉠 때까지

너의 이야기 세계는 과연 무엇일까

너는 멜로디, 너는 숫자들

너는 형태, 너는 리듬이야


워렌과 저는 이 노래를 듣자마자 우리와 관련된 내용이라고 깨달았습니다. 저 역시 제 행동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정말로 예상하지 못한 나날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팔로우십 기간이 끝날 조짐이 보이자 영국에서 제안이 왔습니다. 팔만 올리면 닿을 것 같은 매우 낮은 하늘, 현지서 놀림을 받는 자신의 영어 악센트, 그리고 출신 계급으로부터 결코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예상 등 여러 이유를 말하며 워렌은 영국을 극도로 혐오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야, 너도 알겠지만,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나는 따라갈 거야. 그곳이 심지어 영국이라 할 자리도." 하지만 저는 마치 지옥의 가장 무서운 곳까지 그를 끌어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영국에 가려면) 우리가 소유하는 물건 대부분을 이곳에서 먼저 팔고 가야 한다며 저를 설득하는 것으로 그는 동의를 나타냈습니다. 가지고 다닐 짐이 아니라면 애초에 소유해서는 안 되니까요. 그래서 저는 아파트 계단에 앉아 제 평생과 함께 했던 물건들이 갑자기 어디에 실려 사라지는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카페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종종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점성술사예요?"


저는 대답을 합니다. "아니요. 저는 천문학자이에요." 그러면 그들은 우주가 유한하다는 가설이 왜 가능성이 있는지를 덧붙여 묻습니다. 저는 우리가 어떻게 해서 샌프란시스코에서 런던까지 가게 되었는지를 먼저 설명하고, 만약 가능한 일직선으로 이동을 한다면 이곳에 다시 도착할 거라고 얘기해 줍니다. 왜냐하면 지구는 오밀조밀하고 연결되어 있고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우주도 지구와 비슷할 겁니다. 워렌의 왼손이 제 오른손을 잡으면서 이주가 마침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탑승했습니다.


비행은 끔찍했습니다.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결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환상적인 펠로우십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매우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전까지 몇 주 동안 우리는 브라이턴(Brighton)에 있는 동전 투입식의 단칸방에 머물렀습니다. 동전을 넣지 않으면 전기와 불이 곧바로 꺼지는 방이었습니다. 어쩔 때는 투입해야 할 동전조차 없어서 우리는 매우 낙담한 채로 어둠 속에서 바닥에 앉아야만 했었습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워렌이 저에게 "적어도 지금은 우드칩 벽지를 보지 않아 다행이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영국에서 만들어진 우드칩 벽지를 보면 기분이 저절로 나빠진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케임브리지 대학 캠퍼스에 들어갔고, 저는 그곳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이뤄냈습니다. 저는 우주에서 수십 킬로미터 크기에 1초에 수백 번이나 회전하면서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블랙홀을 연구했습니다. 과거와 달리 구체적인 연구였습니다. 그래서 연구 방향이 좀 더 흥미로웠습니다. 케임브리지에서 저는 스티븐 호킹의 연구원으로 일을 했었고, 이 때문에 저는 들떠있었지만, 그는 저에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초대를 받아 트리티니 컬리지에서 저녁 만찬을 먹기도 했습니다. 오래되었지만 참 고풍스러웠던 대학 건물에서 저는 귀빈석에 앉아 행사를 지켜보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한편 워렌은 다른 대학 건물에서 그릇을 닦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설거지는 그가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일자리였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각자의 정신세계로 도망갔습니다. 저는 수학에, 그는 음악에 말이죠.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양쪽에서 서로를 끌어당기며 잡아주지는 않았습니다.


이윽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도저히 멈출 기미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우디 앨런은 "영원은 정말로 긴 시간이다. 특히 그 끝이 가까워질수록.."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케임브리지에서 비가 내리는 겨울은 엄청나게 길었습니다. 워렌은 만돌린을 꺼내더니 미국 컨트리 음악 노래들을 계속 연주했습니다. 뭔지 아실 겁니다. "나나나나나 나나나" 이 미친 음악은 서서히 미쳐가는 우리의 OST로 변질되었고, 마침내 우리는 폭발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겨울 6개월은 버틴 우리지만 음악 때문에 결국 폭발한 셈이었습니다. 끝이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현실을 보지 못했는지, 우리는"생활력도 없고(nonviable)", "실천도 좀처럼 못하는(unfeasible)" 상태라는 점을 인식했습니다. 참고로 그때 워렌은 저 단어들을 읊조릴 수는 있었습니다.


우리는 각자 길로 떠났습니다. 각자 메고 떠날 수 있을 만큼의 짐을 모조리 챙겼습니다. 우리는 손을 붙잡은 채로 런던의 버스터미널까지 함께 이동했습니다. 저는 거기서라도 워렌이 저를 설득해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언제나 나를 설득시켰고, 그로 인해 우리는 불가능을 헤쳐 나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 워렌의 눈빛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런던 속으로 사라졌고, 그는... 그냥 사라졌습니다. 오직 침묵만이 남았습니다.


친한 대학원생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해줬습니다. "감성어휘는 인간의 경험에 있어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야." 저 역시도 과학자들의 언어가 약간 이질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동료의 말에는 동의했습니다. "그래, 네 말이 뭔지 알 것 같아." 저는 그날 밤이 얼마나 어두웠는지를 묘사하는 게 어렵습니다. 가장 최악의 순간이었을 때 느꼈던 그날의 절망감은 흥미와는 거리가 대단히 멀었습니다. 수학과 우주의 연관성에 대해서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주제는 그 존재 자체만 하더라도 제 개인적 아픔을 상쇄해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사할 만한 완벽한 공간을 찾을 때까지 저는 런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습니다. 이제는 연구를 하면서, 동시에 땅 위의 현실이라는 매개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고 싶었습니다. 저는 드디어 완벽한 곳을 찾았습니다. 창문은 깨졌고, 출입문 역시 부서져 있었습니다. 화장실도 없는 그곳은 정확히 죽은 공터(dead empty)였습니다. 저는 창문을 새 걸로 교체했고 화장실을 간이로나마 설치했습니다. 저의 공간은 런던 동쪽 끝 강 주변에 위치한 예술가 집단 마을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멋진 동네에 살면서 저는 글을 쓰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책 출판 계약도 맺었습니다. 저의 책은 우주의 유한성에 관련된 찬반양론을 다루는 동시에 발견과 완전한 망각 사이에서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는 한 과학자가 실제로 느끼는 두려움을 서술한 일기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강박 신경증을 앓는다고 실토를 한 남성, 워렌이라는 사람이 관련된 일화 책이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의 책은 그를 계속 연결해주는 매체였습니다. 저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출간하기까지 약 1년 정도가 걸렸습니다.


원고 작업이 다 마무리되자 저는 출판사 담당자에게 그것을 건네주었고, 런던 특유의 우울함과 지난날의 향수가 동시에 느껴져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자 저는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출간한 책의 내용이 시작되는 곳, 그리고 현관문 앞에 모든 물건을 모조리 팔았던 곳으로 다시 가고 싶었습니다.


저는 캘리포니아에 도착했고, 이곳저곳을 활보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는 화려한 도시입니다. 그러다가 저는 옛 동네로 걸어가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도 말입니다. 마침내 저는 문제의 그 카페를 지나쳤습니다. 저는 한 시간에 3마일씩, 1마일 당 약 5천 걸음을, 1시간은 3600초니까, 1초에 약 4.5 피트씩 걸었습니다. 카페의 커다란 창가를 완전히 지나가는 데 소요 시간은 2초쯤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감상에 젖은 채로 옛 건물이나 아파트를 바라봤기 때문에 그 창가를 기준으로 건너편에, 다시 말해서 카페 내부에 워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런던의 버스터미널에서 저랑 헤어진 이후로 캘리포니아로 갔다가, 다시 런던으로 갔다가, 프랑스에 잠시 들렀다가, 또 런던으로 갔다가, 최근에 샌프란시스코로 또 거처를 옮긴 워렌 말입니다. 그는 카페에서 자신의 여행기를 얘기하며 고객들을 기쁘게 해줬습니다. 그는 역마살,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눈에서 빛이 보였습니다. 커피를 테이블로 가져다주려고 뒤돌아섰을 때 그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갑자기 커피를 주문하는 테이블 위에 놓고 창가로 달려 나오면서 그는 고객에게 이렇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셀프서비스요!"


워렌은 흥분한 채로 비틀거리며 가게 밖으로 나가려고 했었습니다. 사람들은 머핀과 커피잔을 집어 들면서 "워렌, 도대체 무슨 일이야?"라고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카페에서 나오고자 문의 손잡이를 향해 팔을 뻗던 도중에 그의 머리가 문 유리에 계속 부딪혔습니다. 새장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한 마리의 새와 비슷했습니다. 그러다 문이 열렸고, 제 눈앞에 워렌이 나타났습니다.


"전 남친을 우연히 만나면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라고 여러분들도 종종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저와 그 사람 사이에 전기처럼 짜릿한 감정이 오고 갔습니다. 따스한 가멎이 전해지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샌프란시스코의 한 카페에서 조우했다는 사실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저는 워렌에게 그간 있었던 주요 경험을 열거했습니다. 현재 런던 필즈(London Fields)에 살고 있다고 말하자 그는 19살이었을 때 자신이 무단으로 거주했던 지역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곳은 런던에서 확연히 멀리 떨어진 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기억하는 여러 도시의 지명들을 그는 전부 기억해냈습니다. 대화가 끝이 나자, 그는 "너랑 같이 런던으로 돌아갈래. 그래도 되지?"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생각했습니다. "정말로 미친 게 아닐까, 얘는?" 제 의미는 생각이 똑바로 박힌 여성이 과연 이 미친 남자와 함께 런던으로 함께 가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1년 후에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친구 한 명이 만들어준 결혼반지에는 "멜로디와 숫자, 형태와 리듬"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노래에서는 더 이상 빈정거림이나 심술 같은 감정은 전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결혼한 지 1년 후에 우리에게는 아기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아기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떠올리며 종종 웃곤 합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제가 출산한 아기는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곧이어 젊은 레지던트 한 분이 병실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달려왔습니다. 너무나 흥분을 한 나머지 저를 계속 쳐다보시더군요. 저는 '이 의사가 아기가 매우 예뻐서 기분이 좋은가 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엑스레이 사진을 가지고 있었고, 햇빛에 비치도록 그것을 창문에 붙였습니다. 그러자 사진이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사진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지는 여전히 몰랐습니다.


그 레지던트가 "당신 아들의 심장이 오른쪽에 있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심장이 그릇된 위치에 있다고, 혹은 왼쪽에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제 아이의 심장이 오른쪽에 있다는 점만을 명기시켜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갑자기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면서 워렌을 불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워렌을 불러주세요."


레지던트는 작금의 상황을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주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자기가 아는 범위 내에서 이런 현상을 목격한 의료인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얘기까지 해주었습니다. 너무나 희귀한 경우이기 때문에 관련 연구도 오로지 12번의 비슷한 사례에만 의지한다고 했습니다.


워렌이 제 옆으로 왔습니다. 오직 저를 설득할 때만 들리는 그의 유별난 소리. 저음의 거칠지만 아름다운 목소리와 악센트로 지금의 믿기 어려운 상황을 해석했습니다. "우리 아이는 완벽해." 


올해 8살인 우리 아들의 몸 내부는 종래의 인간 해부학의 표본 형태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매우 희귀하고 드문 사례인 것입니다. 마치 이것은 워렌과 제가 우주라는 뫼비우스 띠의 왼쪽 편에 서서 오른쪽이 신체의 중심이 된 아이를 데려온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아빠처럼 열정적이고 활기가 넘치는 이 아이는 우리 두 사람이 겪은 이 믿기 어려운 삶의 여행의 살아있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