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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st in Translation Nov 29. 2017

한국의 무슬림들

라두 디아코누, 아테나 테이셋, 2017년 11월 15일, 알자지라

원문: The Muslims of South Korea


1984년에 이슬람교를 접한 이주화 이맘(Imam A. Rahman Lee Ju-Hwa)은 친구들에게 술과 고기를 먹자고 연락하는 일은 없다고 처음 말할 때가 괴로웠다고 한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제 친구들은 저의 종교를 이해하지 못해서 저에게 술을 계속 강요했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이제는 그들도 저를 이해해줘요." 한국 이슬람교 교단의 이맘인 이주화는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한국인 단체 피랍 사건을 회고하면서, 당시 납치 소식에 성난 한국인 군중과 그들의 폭발 위협을 방지하려고 경찰이 이태원의 이슬람 사원에 배치되었던 순간을 떠올린다. "한국인 피랍 사건은 우리나라의 이슬람교 역사에 있어 매우 중대한 이정표(critical point)가 되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2017년은 한국의 이슬람교 역사에서 전환점이 되었던 아프가니스탄 내 한국인 피랍 사건이 벌어진 지 딱 10년이 되는 해이다. 오늘날 유교 사회와 기독교계의 강력한 영향력의 아래에 놓은 한국에서 이슬람교 교도 비율은 0.2%로써 아주 적은 소수자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를 배치 및 운영한다고 대외적으로 밝힌 한국은 곧바로 중국인 관광객의 수의 엄청난 급감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떠난 빈자리를 이제는 아랍 지역에서 온 무슬림 관광객들로 대체하고자 문을 활짝 열고 있다. 작금의 상황에서 한국인 무슬림들의 다양한 세대들은 한국인과 무슬림이라는 두 가지의 정체성에 자신들을 투영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무슬림 관광객 수는 2015년과 비교해서 작년에 33%나 증가했고, 올해 말까지는 100~200만 명으로 늘어날 거라고 한국관광공사는 추산했다. 


무슬림 관광객들로 인한 경제적 효과를 미리 염두에 둔 한국 정부는 할랄(Halal)의 공식 인증을 받은 레스토랑과 기도실의 수를 늘리고 있다. 서울관광마케팅(Seoul Tourism Organization)은 한국의 수도에 친무슬림적인 레스토랑을 여러 곳 소개하는 동영상을 만들어 홍보하기도 했다.


한반도와 이슬람 문화는 상호 간의 매력과 호기심을 매개하는 공통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9세기의 실크로드 시대부터 오늘날의 상호 연결된 세계까지, 한때 바닷길을 통해 여행을 다니던 사람들로부터 구축된 양측 간의 유대감은 바야흐로 한국인 무슬림의 젊은 세대로 전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한국 문화와 새로운 종교 사이의 균형을 찾고자 심혈의 노력을 기울인다. 


한국에서의 이슬람교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되면, 특히 1950~53년까지 벌어졌던 한국전쟁에서 연합군으로 참전한 터키 군인들에 의해 다시 소개되었다는 시기를 특정하면서, 우리 알자지라는 그 이후의 한국인 무슬림의 다양한 세대에 속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했다. 사회적 계층, 나이에 따른 대접 차이, 매우 독한 음주 성향으로 나타나는 한국적 유교 문화와 더불어 엄청난 이슬람 불신에 따른 어려움을 그들은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이슬람 서울성원은 말레이시아의 기부금과 한국 정부의 무상 부지 제공 등에 힘입어 지난 1976년 5월 21일에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한 남성이 이슬람 서울성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1991년 이슬람 개발은행인 제다의 경제적 지원 덕택에 이 성원은 3층 높이로 건물을 확장했다.


예배실로 들어가는 입구의 발판에 슬리퍼가 놓여져 있다. 매주 금요일 통합예배가 열리는 이곳의 수용 규모는 800명 정도이며, 1974년에 착공되었고 2년 후에 완공되었다.



하룬 카라(Harun Kara, 왼쪽)는 터키인으로서 현재 이태원 지역주민들이 "무슬림 스트리트"라고 부르는 골목의 초입에 위치한 [미스터 케밥]이라는 가게에서 일을 한다. 골목은 꽤 비탈졌는데, 이슬람 서울성원으로 이어져 있으며, 양쪽에는 아랍 음식 전문 레스토랑과 터키 과자점 등이 있다. 카라는 한국에 거주하는 소수의 터키인들의 공동체의 일원이다. 이 공동체의 선구자격으로 불리는 일련의 사람들은 1950~53년 동안 계속 발발된 한국전에서 남한군을 지원하기 위해 한반도로 온 터키 군인들이었다. 그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이슬람교를 다시 소개하고자 한국에 남기로 결심했다. 전투가 계속 벌어지고 있었을 때도 자신들을 위해 "텐트 모스크(tent mosque)"를 스스로 고안한 터키인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한국인들의 이슬람교 개종을 촉진시켰고, 20세기에 이슬람교가 이곳에서 널리 확산될 수 있는 토대를 단단히 마련했다. 한국전 참전과 한국인들을 향한 그들의 우호는 역사에 변치 않을 자취를 남겨 놓았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터키인들을 "피로 나눈 형제"라고 종종 묘사한다. 


사피야 강(Safiya Kang, 오른쪽)은 이슬람 서울성원에서 행정 및 운영 매니저로 약 10년 동안 일을 한 후, 이슬람교로 개종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가 2015년이었다. "제 주변 친구들 대다수처럼, 이슬람에 대해 제대로 모른 저는 그저 미국 9/11 사건이나 테러리즘과 연관 지었을 뿐이었죠."라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저는 선지자 무하마드나 알라, 그리고 이슬람이 진짜 무엇인지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었어요. 저는 이슬람이 진실을 말한다고 믿습니다. 제가 이슬람교로 개종한 이유가 바로 이거죠."라고 그녀는 이어 말했다. 그녀의 가족은 개종을 이해하고, 심지어 남편은 아내가 만들어 준 이슬람식 요리를 대단히 좋아하지만, 그녀는 아주 드문 경우에만 히잡을 착용하고 거리로 나간다. "사람들이 쳐다볼 때가 싫어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이슬람에서 평화를 찾았다고 말한 사피야이지만 인간으로서, 한 여성으로서,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무슬림으로서 자신의 여러 정체성 가운데 균형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다. "무슬림보다는 한국인으로서 더 많은 자유를 느끼는 듯합니다."라고 말한 그녀는 이어 "하지만 저는 인간이기 때문에 제 심정은 변화될 수도 있는 거죠."라고 덧붙였다.


 

올해 48세인 아마드 조(Ahmad Cho)는 탤런트 코스메틱에서 마케팅 담당으로 일을 한다. 말레이시아의 공식 할랄 지정 한국 화장품 가게인 탤런트 코스메틱은 이슬람 서울성원의 거리 건너편에 있다. 그는 1990년에 이슬람교로 개종했고, 오직 2천 명 밖에 오지 못하는 메카 하지 순례에 참여한 한국인 40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에미르 김(Emir Kim)은 28살이고 인천 출생이며 지금은 서울성원의 이슬람 센터에서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과 이슬람, 양측 간의 강력한 유대감을 믿는 사람이다. 2010년에 중국에서 여행을 하던 도중 터키 친구들에게 이슬람교를 알게 되었고, 종교에 대해서 간단한 호기심 이상의 많은 것을 갈구했다. "이슬람과 연계된 사람의 일상에 맨 먼저 관심을 두었습니다."라고 말한 그는 "하지만 종교 안에서의 평등과 형제애를 우선으로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한국은 노인에 대한 공경을 그 무엇보다도 가장 우선시하는, 연령에 따른 인구구조(age structure)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보수적 경향의 유교적 영향력이 있는 사회다. 특히 나이에 따른 계층 구별과 사람들 사이의 친밀도 관계에 따라서 아주 복잡한 경어 체계를 구사함으로써 한국의 일상사는 결국 언어적 문법에 반영된다. 아미르에게 있어 이런 사회적 기준은 종종 스스로를 억제하는 기제로 나타난다. "나이나 문화, 혹은 배경과 상관없이 나의 동료 무슬림 형제들과 함께 있으면 편안한 기분이 든다."라고 말한 그는 "계층 체계가 없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자유를 선사한다."라고 덧붙였다.



이태원 지역은 서울의 무슬림 공동체의 본고장이다. 또한 이곳은 한국군과 미군의 부대가 주둔하는 곳이다. 이태원은 서울에서 제일 국제화가 잘 진행된 곳이며 한국에 배치된 미국 군인들의 주요 활동지가 되기도 한다. 문화적으로 부유하고 다양성을 강조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할랄 음식(한국인, 혹은 외국인 전용), 나이트클럽, 술집을 즐기고자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한국인들이 이슬람과 소통하고 중앙성원에 들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태원이다.



한 어린 소년이 이태원 지역의 길거리에서 놀고 있다. 한국 내의 무슬림 수는 대략 10만 명에 이르고, 이태원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비율이 제일 높다. 출신지는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세네갈, 터키, 그리고 기타 국가들이 있다.



젊은 여성들이 (1395년에 지어진) 한복을 입은 채 경복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한복은 한국의 전통적인 복장으로서 조선시대(1392년부터 1910년까지)의 생활상을 재현한다. 조선 왕조는 외세의 영향력을 최소한으로 제한하고자 고립 정책을 내세웠고, 그 결과 이슬람 의식과 무슬림들의 전통적인 복장 착용을 금지하는 칙령을 공포한 바 있다. 



전쟁기념관사업추진위원회는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기리고자 1994년 6월 10일에 전쟁기념관을 건립했다. 추념뿐 아니라 한국의 국방력을 대외적으로 홍보하는 기능도 갖추었다. 터키는 한국전쟁 내내 한국군을 옆에서 도운 연합군 참전국 가운데 한 곳이다. 미국 다음에 가장 많은 병력을 한반도에 배치한 국가가 바로 터키다.



무스타파 이동조(Mustafa Lee Dong Cho)는 1975년 5월에 사우디 아라비아의 한 건설현장에서 일을 했었다. 1970년대는 사우디 왕국을 재건하는 일환으로 수많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건설현장에 투입되었다. 그는 이슬람교로 개종했고 1981년 귀국했다. 그는 여기서 자신의 이름을 무스타파로 개명했다.


이슬람 서울성원은 매주 금요일마다 합동 예배를 드리는데 신도 800명 정도가 방문한다.


이슬람 서울성원은 이태원 지역에 1976년 5월 21일에 건립되었다.



우마르 대식 최(Umar Daesik Choi, 왼쪽)는 SNS를 통해 한국에서 이슬람 인식을 널리 고취시키고자 노력하는 젊은 한국인 무슬림 세대의 신조류나 다를 바 없다. 그는 서울관광마케팅 팀과 협력을 하면서 유튜브에 "케밥에서 케밥으로(From Kebab to Kebab)"이라는 시리즈 동영상을 업로드하며 서울 내 무슬림과 연관된 여러 레스토랑을 홍보한다. 그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아랍어와 이슬람학을 전공했다. 올라 보라 송(Ola Bora Song, 오른쪽)은 2007년에 이슬람교로 개종한 한국인이다. 그녀가 개종했을 때는 한국인과 무슬림의 연관성에 대한 전환점이 촉발시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가 있었던 시기였다. "몇몇 사람들은 나에게 고함을 치거나 '나의 나라'로 돌아가로고 종용했어요. 또한 어떤 사람들은 제가 상의에 폭탄을 숨겨놓았다고 주장하기도 했지요."라고 올라는 말했다. "그들은 외국인 무슬림을 인정했지만, 한국인 무슬림을 도저히 용납하지 않더군요. 국내 미디어에 의해 날조된, 이슬람의 선입견을 그들은 지금껏 가지고 있어요."라고 송보라는 이어서 말했다. 그녀는 개종을 결심할 때 온라인에서 확실한 정보를 찾기가 어려워 매우 고생했다고 한다. 지금 그녀는 서울성원에서 일을 하면서 이슬람교에 관심이 있는 기독교인 등 여러 한국인들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있다. 불필요한 오해를 제공하고 싶지 않아서 그녀는 모든 문의에 답변을 해준다. "저도 한때는 무슬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의 오해를 이해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이 이슬람이 과연 무엇인지를, 평화와 존경, 그 자체인 종교를 제대로 알게끔 정확한 정보를 매번 제공하고 있습니다." 올라 보라 송의 강의는 꽤 성공적으로 먹혔다. "이슬람교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강의가 끝난 후에 저에게 다가와 자신의 무지에 대해서 유감을 나타내시더라고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보라 송의 강의는 지금까지 1,000 ~ 2,000명의 사람들을 불러모았는데, 그녀는 이들 가운데서 평균적으로, 대략 10% 정도는 이슬람에 대해 더욱 많이 알고 싶어 하고, 개종의 의지를 보인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팔로우 수만 하더라도 14만 명이 넘어가는 그녀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아시아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에게 있어 온라인 센세이션처럼 느껴졌고, 한 명의 영적 신도라는 이미지로 비쳤다. 아름다움이 사회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작동되는 한국에서 그녀는 한국인과 무슬림이라는 두 가지의 정체성을 다채롭게 표현한 상징으로 자신의 히잡(head scarf)을 이용하면서  독특한 복장을 뽐내는 것을 좋아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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