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히들스턴, 2012년 4월, 더 가디언
원문 : Superheroes movies like Avengers Assemble should not be scorned
올해 초였던가. 영국 남부 글로스터(Gloucester)의 영화 촬영장은 마치 채찍질하는 것 마냥 찬 바람이 매섭게 불고 있었다. 당시 나는 이동식 부페 음식이 있던 조그마한 텐트 안에서 동료인 말콤 싱클레어와 함께 있었다. 짜증날 정도로 매우 늦은 시각에 계란 스크램블을 먹으면서 그는 내가 그간 전혀 몰랐던 이야기 하나를 넌지시 전해줬다. 미국 유명 배우인 크리스토퍼 리브(Christopher Reeves)가 막 줄리아드 연기학교를 졸업했을 때 슈퍼맨 주인공 역할을 맡았다고 해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한 순간 놀림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이야기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영화배우들의 시각에서는 슈퍼맨 같은 역할을 맡는 것은 매우 비열하고 야비한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나는 슈퍼맨 영화를 보면서 자라났다. 어렸을 때 수영장 안에서 처음으로 다이빙을 배운 적이 있었다. 투명한 물로 뛰어든 게 아니라 하늘을 향해 높이 솟구쳤다. 마치 슈퍼맨 같이. 그리고 내가 짝사랑하는 소녀를 동네 불량배들로부터 구해주는 꿈을 종종 꾸곤 했었다. 나한테 있어 크리스토퍼 리브는 첫 영웅이나 다름없었다.
그 후로 위대한 몇몇 영화배우들은 슈퍼히어로 영화에 출연하면서 보다 진지한 연기를 보여줬다. 배트맨 시리즈의 잭 니콜슨과 마이클 키튼. 영화 엑스멘 (X-Men)의 품격 높은 기사 역할을 수행한 이언 맥컬런과 패트릭 스튜어트. 이제는 그들의 후배들인 마이클 패스팬더나 제임스 맥어보이가 바통을 건네 받아 선배들의 역할을 조심스럽게 수행하고 있다.
찰리 채플린 류의 코믹 연기나 [키스 키스 뱅 뱅] (Kiss Kiss Bang Bang)과 같은 영화들이 20년 동안 있었지만, 락 그룹 리더 마냥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는 결국 영화 [아이언 맨](Iron Man)의 토니 스타크에서 완성됐다. 이 역할을 맡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헌신적인 연기로 많은 관객들이 극장을 찾아줬다.
또한 [다크 나이트](Dark Knight)에서 보여준 히스 레저의 연기는 단순히 영화산업을 단번에 바꿔놓았다. 그의 출현은 대중이 슈퍼 히어로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 기대치를 한껏 높여 놓았고, 장르와 상관 없이 또래 배우들의 몸값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다크 나이트에서의 레저 연기는 어두웠고, 자유로웠고, 무정부주의적 색깔이 강했고, 몸서리칠 정도로 떨렸고, 불안했고, 위험했다.
어떤 유형이든지 간에, 아니면 어떤 성격이든지 간에 배우들은 삶의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을 탐구, 탐색해야 한다는 욕망과 더불어 자신들의 호기심으로 인해 영감을 주로 받는다. 아니면 영화 작업을 진행하면서 영감을 받기도 한다. 곳곳의 숨겨진 미덕과 활력, 혹은 그릇됨과 착오를 탐색해 나가면서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휴머니즘을 반영하고자 노력하는 게 바로 배우들의 숙명이다.
Actors in any capacity, artists of any stripe, are inspired by their curiosity, by their desire to explore all quarters of life, in light and in dark, and reflect what they find in their work. Artists instinctively want to reflect humanity, their own and each other's, in all its intermittent virtue and vitality, frailty and fallibility.
해롤드 핀터(Harold Pinter, 영국의 극작가, 시인, 연극배우)의 2005년 노벨상 문학상 수상 소감을 TV에서 시청했을 때, 초반부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크나큰 영감을 받을 줄 전혀 몰랐었다. 그는 “이야기 속에서 진실은 영원히 잡히지 않는다. 당신은 절대로 그것을 찾지 못하지만 어쩌면 찾으라고 강요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찾는 행위는 매우 절실한 노력을 요구한다. 찾는 행위는 당신들의 몫이다. 당신은 종종 어둠 속에서 진실에 부딪히거나 충돌할 수 있다. 또는 그랬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진실에 부합하는 형태나 형상을 힐끗 지나쳐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진실은 연극과 같은 예술장르에서 찾을 수 있는 하나의 진리가 결코 아니다. 길은 많이 있다. 진실은 서로 도전하게 하고, 서로 충돌하게 하고, 서로 반영하게 하고, 서로 무시하게 하고, 서로 괴롭히게 하고, 서로를 눈멀게 한다. 때때로 당신의 손에 진실이 있다고 느끼는 순간, 진실은 당신 손가락 사이로 스스로 빠져나가 버린다.”고 말한 바 있다.
"Truth in drama is forever elusive. You never quite find it but the search for it is compulsive. The search is clearly what drives the endeavour. The search is your task. More often than not you stumble upon the truth in the dark, colliding with it or just glimpsing an image or a shape which seems to correspond with the truth, often without realising that you have done so. But the real truth is that there never is any such thing as one truth to be found in dramatic art. There are many. These truths challenge each other, recoil from each other, reflect each other, ignore each other, tease each other, are blind to each other. Some times you feel you have the truth of a moment in your hand, then it slips through your fingers and is lost."
바보 같은 슈퍼 히어로 영화의 이러한 거대 담론을 적용시킨다는 게 어리석다고 누군가 얘기하겠지만, 이러한 영화 장르는 대중에게 공유 가능한, 그리고 종교적 성향이 희미해진, 현대화 된 신화를 제공한다. 영화를 통해 신화가 널리 퍼질 수 있다. 점점 세속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종교와 신념, 신 등이 존재하는 가운데 슈퍼 히어로 영화는 이미 실현되거나, 아니면 삶의 한 지표로 들어온 대중이 공유할 수 있는 희망, 꿈, 그리고 묵시록적인 악몽을 하나의 특별한 캔버스 위에 그려 놓는다.
고대 사회는 사람 모습과 비슷한 신(anthropomorphic gods)을 믿었다고 한다. 판테온 신전을 가 보면 대립하는 아버지와 아들, 순교를 당한 영웅들,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의 연인들, 왕의 죽음 등등 세기를 뛰어 넘는 장대한 드라마 왕국이 계속 펼쳐진다. 이야기는 어떤가. 교만하고 욕심을 부리면 결과가 좋지 않다는 권선징악 내용의 신화, 휴머니즘과 진실이 으뜸이라고 말하는 설화가 우리 곁에 당연히 존재한다. 모든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이야기를 현대 관객들은 매우 좋아한다. 물론 이것은 꽤 진부하긴 하지만 슈퍼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외롭거나 허영심이 있고, 아니면 건방지거나 자존심이 매우 강하다. 하지만 본질적인 덕을 구현하기 위해서 그들은 이러한 단점들을 극복한다. 구원의 가능성은 바로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점을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
헐크(Hulk)라는 캐릭터는 대중의 분노에서 표출된 불안감에 최적화된 일종의 은유다. 파괴적인 결론의 일환으로써 모든 것을 다 부셔버린다. 여러분들의 일생 가운데 단 한 번이라도 화가 너무 나서 자기 옆에 있는 어떤 것을 다 부셔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결코 들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영혼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분노가 서서히 가라앉을 때 우리에게 남은 것은 후회와 부끄러움일 뿐이다. 헐크의 평범한 자아였던 브루스 배너(Bruce Banner)는 우리가 화내는 것 똑같이 그의 분노를 표출하다가 가끔 깜짝 놀랐다고 한다. 비슷한 이름의 또 다른 영웅인 브루스 웨인(Bruce Wayne, 배트맨 주인공의 일상에서 쓰는 이름)은 슈퍼 히어로판 햄릿이다. 오랜 기간 심사숙고 하고, 착각도 하며, 홀로 지낸다. 또 자신의 부모를 살해한 사람에게 앙갚음 하기 위해 영원한 분노에 휩싸이기도 한다. 캡틴 아메리카(Captain America)는 전쟁 시 무협 장르에서 나올 만한 ‘포스터 보이’다. (포스터 보이는 특정 자질, 활동을 나타내는 전형으로 여겨지는 인물이라는 뜻) 전형적인 리더, 그리고 전쟁 영웅. 스파이더 맨은 앞으로도 청소년기의 영웅으로 존재할 것이다. 이 역할을 맡은 피터 파커는 절지동물의 한 종류인 거미와 거의 비슷한 한 쌍이나 다름없는 연기를 보여줬다.
슈퍼 히어로 영화는 또한 ‘모션 픽쳐’(motion picture)라는 영화적 특성에 방점을 찍는 것을 직접 재현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뤼미에르 형제는 아마 영화 [다크 나이트] 배경인 고담 시티라는 어둡고 황량한 길거리에서 쫓고 쫓기는 추적을 재현한 것을 보며 전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헬리콥터가 높은 전압선에 걸려 비틀거리면서 창공으로부터 수직 낙하하는 장면이든가, 아니면 러시아 곡예사마냥 조커가 운전하는 거대한 트럭이 180도 회전하며 엎어지는 장면에서 말이다. [어벤저스] 말미에도 역시 뉴욕 맨하튼 하늘에서 롤러코스터와 비슷한 움직임과 액션이 펼쳐질 것이다. 이것은 뤼메이르 형제가 지난 1895년 세계 최초의 영화로 제작한 [열차의 도착, Arrive d’un train a La Ciotat]에서 사용된 기본적인 ‘모션’ 원리가 밑바탕 돼 창의적인 도구를 활용함으로써 완성된 것이다. 오늘날 열차는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열차뿐만 아니다. 트럭, 버스, 오토바이, 배트맨 전용 고속 자동차, 심지어 창공에 있는 사람도 빠른 속도로 날라가며, 아이언 맨의 빛나는 철갑옷도 한 번 공중에 떠오른다면 빨리 움직일 수 있다. 스펙타클한 요소는 재미의 한 단면일 뿐이다. 그리고 예술의 한 단면이자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기쁨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크리스토퍼 리브 동료들의 판단이 있은 직후, 우리가 과연 얼마까지 더 앞으로 나아갔는지 나는 생각하고 싶다. 아마도 슈퍼 히어로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결코 야비하거나 불량하지는 않을 터. 영화 [어벤저스]에서 닉 퓨리 역을 맡았던 사무엘 잭슨(Samuel L. Jackson)은 “나는 지금도 슈퍼 히어로를 믿는다”라고 말한다. 나도 그렇다. 진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