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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미 Jul 18. 2020

다음 학기에 만나요

외국인 신입생의 한국 유학 생활

처음으로 그에게 연락을 받은 날은, 학기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폐가 안 좋아요.”

그는 연심 기침을 해대며 말을 이어갔다. 담배를 많이 피워서 폐가 안 좋다고, 그래서 병원을 자주 다닌다고, 

콜록콜록.

스피커 너머로 울리는 그의 기침 소리가 또 하나의 언어로 들렸다. 

한국어도 중국어도 아닌 그의 언어.




메뚜기는 메뚜기의 언어로 말한다. 바람이 불면 상하이에서 인천까지 날아온다. 인천에서 서울로 오는 방법은 수만 가지다. 그들도 그렇게 왔을 것이다. 동사를 강조하며 그들은 말한다. 목적과 수식을 줄줄이 매달고, ‘하여 주세요, 빨리, 수강신청?’

 왕리? 산칭? 내 골머리를 썩이는 그들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들은 둘이고, 여자, 그것도 국문학 전공, 아마도 한족漢族. 무엇보다도 집이 필요하고, 먹을 걱정과 입을 걱정이다. 시론詩論 시험에 그들은 답을 적지 못했다. 우리는 다른 나라에 있다. 우리는 왕십리의 언어로 말한다.

                                                                            *

 왕십리는 남의 나라다. 그들은 외국인 등록증을 갖고 실용 영어 회화를 듣는다. 원어민 강사는 영어로만 말한다. 학칙으로 보장받는 그들만의 자유, 영어는 그들의 혀를 찌르며 의미를 강요한다. 부라보콘을 들고 원어민 강사가 걸어간다.

 메뚜기의 언어로 말하는 메뚜기는 행복하다. 그들은 내 이름을 알까? 이 시는 어느 나라 말에 종속되어 있을까? 우리는 왕십리에 미련이 없다. XXXXXX-222222, 외국인 등록증에 찍힌 이방인 숫자. 우리에겐 다른 언어가 필요하다. 그것은 상왕십리에나 존재하는 언어다. 

     - ‘중국인 유학생’, 신동욱 시집 <악공, 아나키스트 기타>, 랜덤하우스 코리아(2008)




폐가 안 좋다는 그는, 학기 초에 몇 차례 결석을 했다. 

해당 학교에서는 녹화강의와 온라인 강의를 병행했으므로 학생이 녹화강의를 시청했는지와 실시간 온라인 강의에 참석했는지 모두를 체크해야 했다. 그의 강의 참석 이력을 체크해 보니, 녹화강의는 시청한 것으로 확인됐으나 온라인 실시간 강의 참석은 몇 번 빠져 있었다. 그는 자신이 결석한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 연유를 학기말 시험을 치른 후에야 했다.

콜록콜록.

중국 출신인 그의 서툰 한국어보다 잦은 기침 소리가 더 신경 쓰였다. 억지로 내는 소리 같기도 했고, 목구멍을 간질이며 터져나온 소리 같기도 했다. 폐를 울리며 내는 소리는 아닌 것도 같고… 

나는 어느 새 그를 진단하고 있었다.

나는 종종 학생들의 안색이나 기침 같은 증상을 보며 그들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곤 한다.

그들이 내게 아프다고 할 때는 두 가지 경우이다.

진짜 아팠거나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이다. 그 이유는 바로,

출결.

출석일수의 1/3을 채우지 못하면 학생들은 자동적으로 해당 과목에서 F를 받는다. 

한국어교육센터 연수생 시절과는 달리 일단 학부에 들어오면 대부분의 외국인 유학생들은 학업에 책임감을 갖는다. 그러나 여전히 그렇지 못한 학생들도 있다. 학기 말이 되면 몇몇 증상으로 출석을 못했다는 학생들을 꼭 마주하게 된다. 게다가 이번 학기는 전무후무한 혼란기를 겪었으니 “아직도 중국이에요. 중국에서는 인터넷 접속이 안 돼요.”, “화상강의가 있는 줄 몰랐어요(나는 화상강의 전날 학생들 전원에게 문자메시지로 온라인 수업을 확인 공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랐다고 ‘우기는’ 학생들이 있다).”, “인터넷 접속했는데 교수님이 없었어요(이건 또 무슨 말인지).” 등등의 기상천외한 그러나 예측이 가능했던 변명을 늘어놓는다. 


“진단서 갖고 오세요.”

나는 폐가 안 좋다는 학생에게 병원에 가서 출석을 못했으면 해당 날짜가 적혀 있는 진단서를 발급해 오라고 했다. 이는 학기 말이 되면 “갑자기 저번에 아팠는” 학생들에게 모두 해당되는 말이다. 

그는 결국 진단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대신 내게 이메일을 보냈다. 

“나는 점수가 안 좋다. 제적 위험이 있다. 교수님, 도와 주세요.”

성적정정기간 마감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나는 그에게 답장하지 않았다.



2019년 4월 1일 기준 우리나라에 재적 중인 외국인 유학생은 160,165명으로 나타났다(재외동포 포함). 이를 국가별로 살펴보면, 중국 유학생이 71,067명으로 가장 많으며, 이는 전체 유학생의 44.4%에 해당한다. 그 다음으로 많은 유학생은 베트남 유학생으로 전체 유학생의 23.4%(37,426명)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아시아(중국, 일본, 몽골, 베트남, 기타) 국가 출신 유학생은 모두 145,747명으로 전체 유학생의 91.0%를 차지하고 있어,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유학하고 있는 학생의 대부분은 아시아 국가 출신이라고 볼 수 있다. - 출처: 교육통계서비스


중국 유학생이 7만명을 넘는다. 적지 않은 수이다. 어느 대학에 가더라도, 어느 강의실에 있더라도 중국 유학생을 만나는 일이 전혀 놀랍지 않다. 각 대학에서는 외국인유학생지원센터 같은 곳에서 이들의 한국 유학생활을 돕고 있다. 이들도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그곳을 찾아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에 강의(대면이든 비대면이든)에 참석해 ‘그날의 공부’를 하는 일은 오직 ‘그들의 일’이다. 


나는 그들의 공부를 돕는다. 

몇몇 학생들은 그 도움을 제대로 받지 않는다. 

그 이유가 기침 때문인지 아픈 폐 때문인지 나에게 말할 수 없는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이번에 1학년 2학기를 마쳤다는 그를, 다음 학기에 만날 수 있을까?



또 다른 이야기.

불과 몇 달 전의 일이다. 한 중국 여학생에게 대학원 입학 추천서를 써 줬다. 그녀는 지난 학기에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이었다. 내가 가르치는 수업은 신입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과목이었다.

두 번째 시간에 나타난 그녀는 4학년이었다. 그녀의 이름 옆, 비고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재수강

그녀는 1학년 1학기에 동일한 과목을 수강했을 것이다. 한국어 실력이나 출결 문제 혹은 그밖의 사정으로 통과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1학년 동생들 사이에서 잔뜩 주눅이 들어있었다.

사실 주눅도 들고 혼란스러웠던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학교에서 처음 강의를 했던 때였다. 경력이 쌓였다고 해서 새로운 교수-학습 환경이 모두 내 집인 양 편안할 리는 없다. 나 또한 신입생들과 어떤 의미에서는 다를 바가 없었다.

 ‘학교가 돌아가는 사정’을 우리 반에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딱, 한 사람이었다.

재수강하는 4학년 학생.

나는 그녀를 불러 정식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이 학교에 처음이다. 학생들도 너를 빼고는 모두 처음이다. 우리 그 누구도 너를 제외하고는 학교 생활을 잘 알지 못 한다. 그러니 나와 우리 학생들을 도와 달라.

그녀는 그렇게 반장이 되었다. 


수업 중 마이크가 작동이 되지 않았을 때, 전자 칠판이 갑자기 꺼졌을 때, 등등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날 때면 그녀를 나를 도와 사무실에 가서 조교님을 모시고 왔다. 워드 능력이 부족한 신입생들, PPT 작성에 서툰 동생들이 있으면 그들도 도와주었다. 


그녀는 수업이 끝나면 나를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도와드릴 거 있어요?”

4학년 왕언니는 우리 모두를 한 학기 동안 도와주었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반장을 맡으며 학업에도 자신감을 갖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뿌듯했다. 




폐가 안 좋아 수업 참가를 못했다던 그 학생의 4학년도 상상해 본다.

많은 일들이 혼란스럽고 서툴고 성적까지 원하는 대로 받지 못했던 혹독했던 신입생 시절을 보내고 졸업반이 되어서는 자신과 같은 버거운 유학 생활을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 줄 아는 학생이 되어 있었으면 한다. 


* 대문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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