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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미 Jun 21. 2020

네가 없던 시간, 너를 업던 시간

너와 나의 엄마들, 그리고 잡채

무지개를 닮았다. 

빨강 맛살, 주황 당근, 노랑 피망, 초록 시금치, 갈색 고기, 검정 목이버섯, 투명한 당면까지.

잡채는 일곱 가지 색이 어우러져 있었다. 그녀는 서툰 젓가락질로 당면을 집었다. 면발은 이내 젓가락에서 미끄러져 밥상 위로 떨어졌다. 그녀는 밥상 위에 놓인 당면을 다시 집으려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듯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손을 움찔, 했다가 다시 내렸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그녀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어 보였다. 이렇게 밥상머리에서 그녀 옆에 앉아 있는 것 말고는. 




신은미

그녀는 서울에서 발견되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발견이었고 출생은 아니었다. 그녀를 낳은 이와 그녀가 태어난 곳은 누구도 알지 못한 채, 85년생 신은미는 86년에 한국을 떠났다. 그녀가 미국으로 입양되기 전, 핏덩이였던 그녀를 키워준 분이 계셨다. 아동복지기관에서는 그녀를 위탁모라 불렀다. 미끌거리는 당면을 집고 있는 그녀와 그 모습을 흘끗거리는 나는 그녀의 위탁 어머니 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팍팍 먹어 봐.”

 위탁 어머니, 아니 한국 어머니, 아니 그냥 어머니라고 하자. 어머니는 젓가락으로 잡채를 한 움큼 쥐어 은미의 밥그릇에 올려주었다. 은미는 고개짓으로 감사 인사를 하며 잡채를 한 가닥 집었다. 그녀의 젓가락질은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해외 입양인을 위한 모국 방문 캠프

아동복지기관 주최로 매년 진행되는 이 행사는 성인이 된 한국 출신 입양아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그 해에는 은미가 초청 대상자가 되어 한국에 방문할 수 있었다. 은미는 한국에 오게 되었다며 내게 연락을 해 왔고, 캠프가 끝난 뒤 일정이 잡혀있어 한국에 좀 더 머물 예정인데 있을 곳이 마땅하지 않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우리 집에서 며칠 머물라고 했다. 그렇게 그 해 여름, 그녀와 함께 지내게 되었는데 그녀가 말한 일정이란 위탁 어머니를 만나는 일을 일컬었고, 한국어가 짧은 은미와 영어가 서툴 것으로 추정되는 위탁 어머니의 만남을, 은미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 같이 가 줄 수 있어요?”

 은미는 선생인 나를 언니라고 불렀다. 그녀는 한국적이며 가족 같은 호칭을 선호했고 나도 그러했으므로 나는 언니가 되었는데, 이 언니는 동생을 데리고 어머니 댁에 가서 두 사람 간의 의사소통을 도와야 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은미는 내 학생이었다. 미국에서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쳤는데, 은미는 제 여동생과 함께 한국어 교실에 참여했다. 여동생은 부모님이 낳은 아이였고, 은미는 한국에서 입양된 아이였으므로 그들이 자매라고 하는 순간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는 눈빛을 어김없이 보냈고 그때마다 은미는, “난 한국에서 왔어요.”라고 자신을 설명해야 했다. 


활달하고 붙임성 좋은 은미는 누구하고도 잘 어울렸고, 제 여동생은 물론 주변 사람들을 끔찍이 챙기는 따뜻한 아이였다. 상대보다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보며 사랑 받고 자란 아이가 분명할 거라 생각했다. 




그 날은 달랐다.

한 여름 어느 날, 가파른 언덕길을 한참 올라 어머니 댁에 도착해 우리는 모두 숨을 헐떡거리고 땀을 뻘뻘 흘린 채 어머니를 만나 기운이 빠졌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은미는 기운이 빠졌다기보다 뭐랄까, 잔뜩 긴장한 듯했다. 


나는 달랐다.

집 안에 들어서자 풍기는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자 없던 허기까지 밀려왔다. 빨리 먹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래도 동생을 데리고 온 언니답게, 교양 있는 사회인답게 어머니와 어머니의 자녀들로 보이는 이들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 은미에게도 인사를 시켰다. 


“밥 먹자.”

어머니는 자녀들과 함께 큰 밥상을 들고 나오셨다. 갈비찜, 김치, 생선구이, 잡채, 나물 등등 잔칫상에서 볼 수 있는 음식들은 모두 나와 있었다. 단 하나, 식탁 문화에 익숙한 은미가 긴 다리를 접고 밥상 앞에 앉아 밥을 잘 먹을 수 있을지가 걱정됐다. 허나 양반다리보다 젓가락질이 은미에게는 더 어려워 보였다. 그래도 은미는 좀 전보다는 익숙한 젓가락질로 잡채를 먹고 있었다. 그 즈음, 어머니는 방에서 앨범 몇 권을 들고 나오셨다. 


아기 은미가 낡은 앨범 속에서 나왔다.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어머니의 자녀들도 사진 속에 함께 있었다. 은미를 포대기에 업고 있는 어머니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를 닮아 있었다. 포대기에 업힌 은미는 잔뜩 잠이 온 표정이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앨범이라는 낡은 기억의 집에 들어갔다. 은미는 제 손으로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겨 보았다.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자신의 아기 때 사진을 유심히 보았다. 돌이 채 되지 않은 아기 은미를 보며 조금은 웃었던 것도 같다. 


 “밥 먹자”

 어머니는 앨범을 옆으로 치우고는 또 밥을 먹자고 하셨다. 이번에는 생선 가시를 발라 은미의 밥그릇에 생선 한 점을 올려주셨다. 그 위에 은미가 좋아하는 잡채도 한 번 더 올려 주셨다. 은미의 밥그릇이 이내 수북해졌다. 

은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내가 통역을 해 줄 테니 어머니께 할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은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젓가락을 밥상 위에 놓았다. 어머니와 자녀들, 그리고 나는 서로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밥을 다 먹고 나니 할 말이 없어서였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
 
은미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놀랐다. 하지만 아무 말 없이 은미의 노래를 들었다. 떨리는 듯 단단하고, 조용한 듯 울리는 은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 ...무지개 너머 어딘가, 언젠가 자장가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곳, 그곳에선 감히 꿈꿔왔던 일이 이루어지기도 하죠.


은미의 무지개 너머는 어디이며 그녀가 어릴 적 자장가에서 들어보았던 곳은 어디였을까? 자신의 생을, 위탁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진심으로 직접 전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은미는 노래를 선택했다. 은미의 언어는 화음을 타고 우리의 마음과 마음으로 전달되었다.


어머니 집을 떠날 때, 어머니는 큰 비닐봉지에 잡채를 가득 담아주셨다. 은미는 큼지막한 잡채 뭉치를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는 어머니를 꼭 안아 주었다. 두 사람은 이십 여 년만의 만남을 뒤로 한 채 짧은 작별인사를 나눴다. 


은미가 배낭을 메고 언덕을 내려갔다. 잡채가 들어있는 배낭이 그녀의 등 뒤에서 가볍게 움직였다. 오래 전 은미가 어머니 등 뒤에서 업혔을 때에도 저런 모습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잡채를 업고 언덕을 내려가는 은미를 한 동안 바라보았다. 그녀의 등 뒤로 나를 업고 가던 한 사람이 겹쳐졌다. 



너와 나의 엄마들, 그리고 잡채


우리 엄마는 내 생일이 되면 잡채를 만드셨다. 

생일이 되면 으레 미역국과 잡채를 먹는 것으로 여겼다. 엄마들은 본능적으로 잡채를 버무린다. 갖가지 채소와 고기를 썰고 볶고 당면이 익기를 기다리며 아이를 만난 그 순간을 회상할 것이다. 내 생일마다 밥상 위에 올려진 잡채가 문득 떠올랐다. 


어머니들이 제 아이를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는 방식, 그것이 잡채를 버무리는 일이었을지도. 그 길쭉한 것들이 우리의 탄생을 말해주었던가. 우리 모두는 저 당면 같이 미끌거리는 줄을 타고 세상에 내려와 무지개 색깔 하나 하나 품고 꿈을 꾸듯 살아가는지도. 그 꿈 속에 우리의 탄생과 성장이 있었다.




집집마다 잡채에 넣는 재료가 다르듯 가족이 되는 방법 또한 저마다의 방식이 있다. 

나는 은미의 언니이고, 잡채를 얹어 주던 이는 은미의 어머니이고, 은미와 눈동자 색이 다른 아이는 그녀의 여동생이고, 그들에게는 동일한 부모님이 계시고… 그렇게 우리는 모두 가족이라 불린다.


 한 동안 은미를 만나지 못했다. 십 수 년 전 은미와 함께 그녀의 위탁 어머니를 만난 날을 기억하며 이 이야기를 썼다.  잡채를 힘겹게 집어 먹고 무지개 노래를 부르던 은미가 제 인생의 무지개 언덕을 조금은 힘겨워도 보람되게 넘어가고 있기를 바란다.




* 본 글은 작가가 한 입양인과 위탁 어머니와의 만남의 자리에 동행했던 경험을 쓴 글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으며 혹시 개인 정보가 드러날만한 부분은 작가가 재구성했음을 이에 밝힙니다. 

* 사진 출처: 모두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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