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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미 Jul 20. 2020

운동과 글쓰기의 차이

[이럴 땐 이런 책]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나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 그것은 바로,

팔씨름

대학 신입생 때였다. 

학교에서 체육대회가 열렸다. 여대였고 체육학과나 대표할 만한 운동 팀이 없는 학교였기에 종목은 고등학교 때보다 더 적었다. 그 중에서 가장 신기한 종목이 바로 팔씨름이었다.

선수들은 내 손을 잡자마자 탁자 위로 팔을 툭, 떨어뜨렸다. 손목 꺾기 기술 없이 오로지 힘만으로 상대를 꺾었다. 몇 번 하다 보니 어느 새, 나는 단상에 올라가 있었다.

결승전이었다.

상대는 건장한 중문과 2학년 언니였다. 나도 만만치 않게 건장한 국문과 새내기였다. 둘이 손을 맞잡은 순간, 우리의 주먹은 어느 한 쪽으로도 움직이지 않았다. 팽팽한 접전이었다. 1:1 무승부, 드디어 마지막 순간, 중문과 언니는 온힘을 쏟아 내 손등을 탁자 위로 내리찍었다. "언니가 내 손목 꺾었어요”라는 고자질 같은 말을 내뱉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팔씨름 준우승을 했고, 한동안 선배들에게 ‘팔씨름 잘하는 애'로 통했다.




팔씨름이 운동 종목에 포함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운동에 있어서 얻어걸린 일이 종종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 후 달리기를 했는데 내가 우리 반 일등을 했다. 바로 운동회에 1학년 4반 대표이자, 백팀 대표로 이어달리기 대회에 참가했다. 이겼다. 중학교 체육 시간에 도움닫기 넓이뛰기를 했다. 거리를 재려고 모래판 위에 서 있던 선생님은 내가 달려가서 착지를 하자 나와 같이 모래판에 주저앉았다. 운동회 때 반 대표로 넓이뛰기 선수가 되었다. 기록은 기억이 안 안다. 그냥 잘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배구공 튀기기 시험이 있었다. 양팔을 쭉 뻗어 붙이고 공을 튀겨야 했다. 생각보다 많이 했다. 선생님은 갑자기 운동장이 대각선으로 88미터밖에 되지 않은 작은 운동장에서 배구 시합을 시켰다. 나는 맨 뒤에 있었다. 맨 뒤에 있으니까 서브를 넣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했다. 나는 그 해 운동회 때 2학년 배구 대표로 뛰었다. 뛰었다, 라고 말하기 부끄러운데, 내내 서브를 맡았고, 서브만 했다. 우리 팀이 이겼다.


오늘부터 운동뚱

개그우먼 김민경의 운동 과정을 보여주는 유튜브 채널이다.

모든 운동을 어이없게 잘해버리는 김민경을 보면서 한때 운동뚱이었던 나를 떠올렸다. 

물론 나는 운동을 잘하지 않는다. 스포츠 경기 규칙도 전혀 모른다. 목디스크로 고생하지 않으려고 ‘적당히’ 운동한다. 그래도 가끔은 잘한다.


출처: 알라딘


(49) 어떤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좋겠다 너는, 글재주가 있어서!”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 내가 글을 잘 쓴다는 것이다.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던 시절에도 그랬고, 정치를 떠나 문필업으로 돌아온 후에도 같은 말을 듣는다. 그럴 때는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은근히 화가 난다. 이 말이 목젖까지 올라온다. ‘그런 거 아니거든! 나도 열심히 했거든!”

 

<유시민의 글쓰기특강>은 최근에 읽은 글쓰기 책 중에서 제일 잘 읽혔다. 알기 쉽게 군더더기 없이 적절한 예를 들어 쓴 글이 바로 이런 글이구나! 감탄했다. 그가 든 예시 중에서 단연 최고는 바로 이것이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부서진 연탄재 네가 치울 거냐.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를 패러디한 문장이다. 원문은 이러하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작가는, "노력한다고 해서 누구나 안도현처럼 시를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누구든 노력하면 유시민만큼 에세이를 쓸 수는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해 위와 같이 '일상적인 문장'을 써 보였다. 무엇보다도 저서에서 그가 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것이었다.



글쓰기는 재주가 아니다. 사람이 가진 여러 능력 또는 기능 가운데 하나다.



유시민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나는 운동으로 운 좋게 얻어걸린 일이 많았다. 

팔씨름, 계주, 넓이뛰기, 배구가 그러했다. 

글쓰기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한 번에 되는 게 없었다. 

논문을 투고하면 ‘수정 후 게재’ 혹은 ‘수정 후 재심’으로 평가받았다.

심지어 브런치도 재수생 출신이다. 

글쓰기에는 도통 재주가 없어 시간을 투자하고 품을 팔아야 중간 정도라도 한다. 


유시민 작가의 말이 큰 위로가 되는 밤이다.



* 대문 사진 출처: <오늘부터 운동뚱> 8회

https://www.youtube.com/watch?v=Lipi-spm1T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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