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2>
(210) 글을 쓸 때 자기가 가진 최대치를 드러내려고 노력해야지 뭔가 위험스러워서 실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오히려 실패할 가능성이 더욱 커집니다. (중략) 작가는 무사가 칼을 휘두르듯이 언어를 다뤄야 합니다. 과감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그럴 수 있는 동력이 어디에서 나오느냐면 진정성에서 나와요. -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2, 김형수, 아시아(2015)
1.
압구정동
굳이 자기 차로 데려다 주겠다며 네비 찍으면 된다고 주소 좀 불러보라고 했던 그녀가, 우리집 압구정, 이 말 듣고 소리쳐,
선생님! 여기저기 강의 뛰면서 뭘 그렇게 열심히 살아요? 압구정 살면서
…………… 그냥 지하철 타고 갈 걸, 라인 넘버 쓰리 압구정
글쓰기 교실의 친구도 그랬지.
너! 글은 왜 써? 압구정 살면서
내가 언제 말했던가, 압구정 산다고? 걔가 내 이름은 알았던가? 하긴 이름 따윈 필요없지, 마이네임이즈 압구정 사는 애.
대학원 면접 고사장, 교수는 지원서 흘끗, 보고 내게 물었지
압구정 살아? 남편이 돈 잘 벌어?
아, 네, 아니요,
“아”, 는 “ㅆㅂ”, “네”, 는 압구정동, “아니”, 는 남편 질문에 대한 대답, 잘 번다 못 번다 말하기 싫다는 말이었는데 그걸 못 알아먹고 또 물어,
돈 못 벌면서 어떻게 압구정 살아?
하, 그게 말입니다, 일찍이 제 부모님께서 육이오 사변 때,
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면접 끝. 불합격.
2.
함경도 북청 태생, 피난민 출신 부모님은 자수성가 해서 강남에 집 얻고 의기양양, 말끝마다 내게 하던 말,
“뭐가 불만이야? 애비 덕에 강남 살면서”
알고 보니 어릴 때부터 듣던 말이야, 강남 살면서, 압구정 살면서
그 잘난 압구정 살면서 나이키 아식스 죠다쉬 게스, 우리 모두 함께 해 유나이티드 컬러스 오브 베네통 하나 없어서, 그게 너무 갖고 싶어서 그 중에 제일 하나, 나이키 신발 갖고 싶다 했더니, 애비가 하는 말,
“기집애, 겉멋만 들어갖고.”
그 이후 갖고 싶은 것 말하지 않았고, 여전히 압구정에 살고 있고
행여 갖고 싶은 게 생기면 어디선가 울리는 그 목소리, 기집애, 겉멋만 들어갖고
이북에서 내려와 자수성가 한 성실한 주민들, 그리고 나, 압구정 사는 걔, 우리는 유나이티드 칼라스 오브 압구정, 여전히 갖고 싶은 게 많은 주민들, 겉멋만 들어갖고, 아니래, 그저 열심히 사는 거래, 근데,
뭘 그렇게 열심히 사느냐고?
돈 때문이지
글도, 공부도, 글공부도, 강의도 돈 때문이지, 난 그렇게 대답할래, 그러니까 오늘도 글 쓰고 공부하고 강의할래, 압구정 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