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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미 Jan 10. 2017

너의 이름은, 2

한국어 마을 편

중국어 메일을 보노라면 피로가 급, 밀려온다.


학교에서는 모든 공지사항을 중국어로 알린다. 

당연하다. 여기는 대만이다. 외국인 교수 비율이 그나마 높은 편인 외국어 대학이라 급여나 성적 관리, 혹은태풍으로 인한 휴강 등과 같이 중요도 “상”에 해당하는 메일만 중문과 영문 두 가지로 메일이 오기도 한다.

그것들을 읽어야 한다. 중국어 말하기 보다 읽기가 차라리 낫다고 말해 왔지만, 읽기조차 쉽지 않다.

빽빽하게, 띄어쓰기 없이, 나열된, 획순이 평균 9개 이상인, 한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눈이 시큰거리며, 

모든 글자가 두세 개로 보이며,

앞이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그러니까

보여도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니

힘이 쓰인다.




시현이에게 중간 성적으로 D를 주는 건, 아무래도 좋은 결정이 아니라는 동료 선생님의 충고에,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많이 피곤하고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생후 십 개월 이후, 한국어는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가 되어서만은 아니었다. 애써 보려고 해도, 때로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탓이라고 했다. 


그리고 

20살이 되면, 영영 시력을 잃을 거라고도 했다. 

결국, 나에게 조언을 해 준 선생님의 생각이 옳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D

옳지

않았다


D-day

4주간의 일정이 끝나고, 아이들이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되었다. 그날 부모님이 시현이를 데리러 왔다. 점잖은백인 부부였다. 아이가 어땠느냐고 내게 물었고, 나는 솔직하게그 동안의 일들을 설명했다. 부모님은 나의 결정을 존중했고, 아이를 챙겨줘서 고맙다고 해줬다. 


보고 싶을 거예요.


고등학교 학점 이수 프로그램인4주 간의 일정이 끝나는 날,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첫 날, “이름이 뭐예요?” 라고 묻듯이, 마지막 날에는 “보고 싶을 거예요”라고 서로에게 말한다.

나는 시현이의 빨간 선글라스를 향해, “보고 싶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현이는 내게 그 말을 해 주지 않았다. 말없이 나를 꼭 안아주고는 삼단 지팡이를 펴고 부모님과 함께 돌아갔다.



십여 년 전에 만났으니,

지금쯤 아이는 스무 살을 훌쩍 넘었을 것이다.

그 아이가 그 동안 눈에 담아둔 세계는 어떠했을까, 

그 안에 아주 잠시 머물렀던 나는 

제발 그 아이에게

더 이상 눈 앞에 보이지 않아도 되는 

누군가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너는, 너의 이름은

시현이가 아니겠지.

한국에서 누군가가 지어준 진짜 네 이름이 있겠지.


그러니까


너의 이름은,



* 학생들의 개인사나 정보 문제로 인해, 이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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