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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미 May 31. 2020

호떡 같은 그 남자 - 그 이후

[조 선생의 한국어 교실]사건의 재구성

작년 이맘 때였다. 

<중급한국어>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게 했다. 단순히 맛있어서 좋아하는 음식이 아닌 자기만의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색깔도 무섭고 깻잎 향이 강해서 비호감이었으나 한 입 먹고 반했다는 감자탕, 

대만 짜장면에 비해 너무 까매서 이상해 보였지만 짭짤해서 더 맛있는 짜장면, 

국물에 얼음이 둥둥 떠 있어서, 보는 이를 얼어붙게 한 물냉면. 하지만 자꾸만 생각나는 시원한 국물,  

두유에 면을 넣어 먹는, 기발하지만 맛없는 콩국수. 하지만 김치를 넣어 먹으면 마술 같이 맛있어진다는 콩국수      

학생들은 대만 음식과 다른 한국 음식의 첫인상에 대해 늘어놓았다. 짧은 일정의 한국 여행에서 우여곡절 끝에 한강변에서 시켜 먹었다던 치킨 이야기가 제법 재미있게 읽혔다. 그 다음으로 만난 음식 이야기가 바로 A 학생의 “러브 스토리, 호떡”이었다.      




원래는 이렇다.

 A 학생은 호떡을 진짜로 제일 좋아한다고 원고지에 써서 냈다. 

함께 호떡을 먹기로 약속한 그는 그녀에게 바람둥이 첫사랑이었고, 그녀는 한국에 가서 호떡을 먹을 일도 요원했지만 호떡 믹스를 사다가 혼자 직접 해 먹었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다고. 그는 미웠지만 그래도 호떡은 맛있었다는 이야기였다. 문법적인 오류가 눈에 들어왔지만 나는 단번에 A의 호떡 이야기에 빠져버렸다. 



그 다음 주 그녀를 불렀다. 나는 그녀에게 이 이야기를 잘 써서 말하기 대회에 한 번 나가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녀가 오랫동안 혼자 마음 속에만 담아둔 이야기를 표현해 볼 기회를 주고 싶어서였다.      

우리는 그렇게 타이베이 대표부에서 주최하는 한국어 말하기 대회의 예선을 준비했다.     


많은 일이 그러하듯

열심히 했다고

진심을 다했다고 해서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말하기 대회 예선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나는 며칠 간에 걸쳐 별볼일 없는 솜씨로 소설인 듯 소설 아닌 소설 같은 글을 썼지만, 착한 그녀는 누구도 탓하지 않은 채 알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맞으며 ‘호떡 같은 그 남자’를 썼다. 그리고 계속 한국어 공부에 매진했다.           




호떡.

실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그 맛을, 그녀는 직접 찾아냈다.

얼마 후, 그녀는 교환학생 자격으로 한국에 홀로 와서 

서울 인천 대구 부산 찍으며 각 지역의 음식을 모두 맛보았다.

물론 그 중에 호떡도 있었다.          



달콤한 사랑을 꿈꾸었던 스무 살.

뜨거울 줄만 알았던 첫사랑.

그녀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한국행과 맛보지 못했던 호떡을 빌미로 공수표를 날린 그 남자.

달콤하고 뜨거웠던 거짓말 같은 그녀의 짧은 사랑 속에 호떡이 있었다.               



말하기 대회 출전이 좌절되면서 

안타깝게도 그녀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없었지만

나의 모국어 화자로서의 능력이 그녀에게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녀를 대신해 이 이야기를 한 번쯤 해 주고 싶었다.

호떡 말이다, 호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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