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마을 편
아무래도 저쪽에 혼자 앉아있는 아이가 유독 신경 쓰였다. 빨간색 선글라스에 쑥색 야구모자를 푹 눌러 쓴 아이는, 덩치가 유난히 컸다. 선글라스 너머의 눈동자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내내 한 곳만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저는 미아예요.”
딴 데를 보는 사이, 한 아이가 내 앞에 앉아 자기 이름을 댔다.
사실 내가 먼저 질문을 했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이럴 때는 되감기 버튼을 눌러야 한다. 나는 아이를 보고 천천히 물었다.
이름이 뭐예요?
아이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러나 다소 긴장한 듯 대답했다.
“저는 미아예요.”
아이의 발음은 나쁘지 않았고, 나는 조금은 빠른 속도로, 몇 살이에요? 어디에 살아요? (그림을 보여주며)여기가 어디예요? 등등 레벨테스트용 질문을 했다. 미아는 곧잘 대답했다. 나는 미아에게 쓰기 시험을 보라고 안내했고, 미아가 감사합니다, 라고 목례까지 한 뒤 의자에서 일어서자,
그 아이가 앞에 서 있었다.
좀 전까지도 저쪽에 앉아 한 곳만 바라보던 아이였다. 아이의 손에는 얇고 긴 흰 색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아이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지팡이를 삼 단으로 접고는 자리에 앉았다.
이름이 뭐예요?
…….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목에 걸려 있는 ‘영미’라고 쓰인 이름표를 가리키며,
“너도 얼른 네 이름을 대”라는 사인을 보냈지만 아이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연, 미희, 금순, 영식, 정호,
주변에 있는 아이들의 한국 이름을 하나씩 불러 보니, 아이는 그제서야 알아차린 듯 어렵게 입술을 떼었다.
“스여이.”
가끔 이런 아이들이 있다. 영문으로 쓰인 자기 이름을 정확하게 한국어로 발음하지 못해 일어나는 일이다. 나는 다시 한 번 질문했다.
이름이 뭐예요?
“스, 시혀.”
바꿔 말한 이름도 알아들을수 없었다. 영문으로 적어보라고 했는데, 아이는 잘 모른다고했다. 계속, 스여, 시혀, 흐여, 등의 알 수 없는 이름을 말할 뿐이었다. 하는 수 없었다. 이럴 때는 작명을 해줘야 한다.
“시현, 시현, 시현이에요.”
아이는 내가 지어준 이름을듣고 환하게 웃었다. 마치 내가 원래의 제 이름을 찾아 주기라도 한 듯.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줬다.
효리, 서진, 태양, 바다, 별, 현아, 대중, 승만
이것은 개인의 취향이나 정치적인 성향과는 무관했다. 나는 미국 아이들에게 한국 이름을 지어줘야 했다. 때론 내가 직접 이름을 주기도 하고, 때론 발음을 들어본 뒤 아이들이 직접 제 한국 이름을 고르기도 했다.
한국어 마을
미국 미네소타 주, 콘코디아 대학교 부설, 콘코디아 언어 마을이 있다. 마을 특성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여름 방학 기간에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사주 간의 프로그램이 캠프 형식으로 진행된다. 한국어 마을은 그 여러 개의 마을 중의 하나이고, 1999년에 시작됐다. 초창기에는 미네소타의 주 특성상 입양아들이 대거 참여했다. 해가 갈수록 입양아의 비율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한국 출신 입양아들은 참가하고 있다. 제 한국 이름을 대는 아이들은 대부분 입양아들이고, 한 쪽 부모가 한국인인 경우나, 자기가 어디서 그냥 지어온 아이도 있긴 하다.
그곳에서는 한국 이름을쓰고,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에서 온 물건을 사며, 깨어있는 모든 순간 한국어를 쓰며, 동시에 한국어를 배운다. 이러한 방식으로 외국어를 배우는 체계를 외국어 몰입학습(Immersion, 이멀전)이라고 한다.
내가 ‘시현’이라고 이름을 지어준 아이도 한국에서 온 입양아다. 선천적으로 시력에 문제가 있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고 들었다. 나는<한국어 1>, 일명 가나다 반, 을 맡았는데, 시현이를 비롯한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함께 했다. 수업을 하면서, 나는 한국어 1 반과‘시현이 반’, 이렇게 두 개의 반을 맡는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시현이는,
보통의 글자 크기는 전혀읽을 수가 없어서 보통 크기의 다섯 배 이상 크게 써 줘야 했다.
너의 이름은,
이런 식으로
시현이의, 시현이를 위한 수업 자료를 매번 따로 만들어야 했다.
나쁘지 않았다.
아이가 열심히 했으니까.
4주 프로그램 중 첫 일주일은 시현이가 잘 따라왔다. 깔끔한 글씨체는 아니었지만, 곧잘 따라 썼다. 그래도 글씨는 항상 커야 했고, 시현이가 글자를 보고 이해하고 따라쓰는 속도가 다른 아이들과 같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수업 시간뿐만 아니라 저녁 자율학습 시간도 대부분 시현이의 한국어 공부에 시간을 할애했다.
그런데 2주차에 들어서자 슬슬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결국, 시현이는 퀴즈나 중간 평가에서 거의 답을 쓰지 못했다.
다른 학생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 정도로 많은 시간을 시현이에게 투자했는데, 아이는 지쳐가고 있었고, 급기야는 큰 글씨로 된 한국어도 보려 하지 않았다. 힘을 다 뺀오징어처럼 바닥에 철퍼덕 붙어버려 있었다. 그 아이에게 특별히 쏟은 내 관심이 너무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반성과 함께 시현이에 대한 실망감으로 지쳐갔다.
D
다른 아이들과 달리 더 이상 그 아이에게 특별 대우를 해 줄 수 없다는 생각에, 평가라도 그나마 공정하게 하겠다는 심사에, 그 이면을 보면, 교사로서 ‘미운학생’에게 할 수 있는 소심하고 치사한 복수일지도 모르는 일일진대, 이렇게 결정하고야 말았다.
시현이의 중간 평가 점수는 D였다.
이로 인해,
하루 아침에
배려의 아이콘에서 짜증의 아이콘으로 변해버린 조 선생에겐
결국
후회할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