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미 May 22. 2017

해도 해도 안 되는 일이 정말 있을까?

[조 선생의 한국어 교실]노력 편

나는 머리가 참 나쁘다고 생각해 왔고 요즘도 종종 그렇게 생각한다.

아직도 동서남북을 알지 못하고, 숫자 개념에 혼란스러워한다. 학창 시절에는 이 때문에 고생이 심했다. 특히 아무리 봐도 입력이 안 되는 언어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을 포함한 과학 과목의 언어였다. 그래도 “하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고, 그것은 "해도 안 되네”로 순식간에 이어졌다.




고등학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새 학기를 맞이 하는 학생들이 으레 그러하듯, 바른 손을 하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선생님 말씀에 집중을 했다. 한 번에 봐도 깐깐한 중년의 여 선생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동물의 세계 따위를 야무지게 설명해 주었다. 잡아 먹고 먹히는 세계의 이야기였는데, 무섭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은 그저 복잡한 이야기였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선생님을 뚫어져라 봐도 그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닌, 아예 접수 자체가 되지 않았다. 모든 과목의 제 1 단원은 상식적으로 복잡하지도 어렵지도 않다. 그런데 나는 생물이란 과목은 도저히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열심히 수업을 들었고, 첫날부터 숙제를 내 준 선생을 원망하지도 않고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 숙제를 했다.


다음 시간이 되었다.

생물 선생은 뿔 테 안경을 치켜 올리며 한 사람씩 숙제 검사를 했다. 맨 뒤 자리인 내 곁에 그녀가 왔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떨렸다. 이상한 조짐이 들었다.  나쁜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았고, 그녀는 내 숙제에서 ‘잘못한 것’을 찾아냈다. 그리고는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내게 이렇게 소리쳤다.


 눈만 똥그랗게 뜨고 앉았으면 뭐해?
대가리는 텅텅 비어가지고.


 그녀는 막대기로 나의 생물 공책을 찍어 대다가 내 관자놀이 주변을 찌르기도 했다. 학기 초였고, 고등학교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아이들은 내가 누구인지잘 모를 때이기도 했다. 그 날 이후, 나는 우리 반에서 “대가리가 텅텅 빈 애”가 되어버렸다.




이번 학기에 두 명의 학생이 생물 시간의 나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앉아 있다.

목요일 그녀와 금요일 그녀이다.


그녀들은 수업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나는 수업 시간 십 분 전에 교실로 가는데, 그녀들은 언제나 나보다 먼저 와 있다.

심지어 금요일 그녀는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 다니면서도 한 번도 지각이나 결석을 하지 않았다. 목요일 그녀는 수업 시간 전에 칠판도 지워 놓는다. 이들은 수업 시간 내내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캠퍼스에서 나를 만나면 반갑게 손을 흔들어 준다. 나는 이 학생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들이다.


 그런데 그녀들은 모두 중간고사에서 50점도 받지 못했다.

 

 평균이 70점 이상에다가 10%의 학생이 만점을 받는 가나다 반의 가나다 시험에서 50점도 받지 못한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시험이 끝나고 그 학생들을 각각 불러 이야기를 했다. 성실한 학생인데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아 참으로 안타깝다고, 그대들이 원한다면, 지금까지 배운 내용을 좀 더 연습해서 가지고 오면 내가 봐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녀들은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들은 여전히 수업에 성실히 참여하고 있다. 한국어 실력도 여전히 별로 나아지지 않고 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외국어를 일주일에 두 시간 배워 금세 발음을 터득하고 단어를 쓰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14시간 가량 배운 뒤,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혹은 그 이전에 배워두지 않았다면 배운 내용을 이해해 내고 중간고사를 치르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간혹 외국어 학습에 유난히 어려워하는 학생들도 있다. 내가 과학 과목을 배울 때 두뇌 회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듯이 외국어 학습 과정이 유독 더딘 학생들도 있다.


 물론 선생 입장에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참 예쁘다.

 그런데 공부를 잘해서 무조건 예쁜 것은 아니다. 수업에 충실이 나오고,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내가 한 마디만 하면 웃어 주고, 내 말을 따라 하며 단어를 외우는 모습이 예쁜 것이다.


그저 예의 바른 아이들이 좋을 뿐이다.

선생에 대한 예의, 동급생에 대한 예의,

그리고 제 학습에 대한 예의를 아는 학생들이 좋다.

이렇게 예의가 바르면 공부를 잘하게 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닌 것이다.

점수보다 그들 특유의 밝은 에너지에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나의 마음이다.


공부 못 하는 모범생으로 살아오며

선생님을 좋아하고, 학교를 좋아해도

선생님이나 학교로부터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했던

내 학창시절이 떠올라서 그럴 것이다.



점수가 좋은 학생들보다 예의가 바른 학생들에게,

선생이 한 번 말하면 서너 개를 알아듣는 학생보다

선생이 열 번 말해도 못 알아들어 놓고도 ‘그저 웃는’ 그런 학생들에게

마음이 쓰이는지도…




목요일과 금요일의 그녀들.

그녀들이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해도 안 되는 일인 듯한 낯선 언어를

정말로 계속 해 나간다면

50점이나 88점이라는 수치로 계산될 수 없는 가치로

한국어를 쓰게 될 날이 오리라 기대해 본다.


외국어 학습 목표는 학습자마다 다르다.

배우는 이들이 모두 한국어능력시험 고급에 합격해야 하고, 한국 회사에 취직해야 하고, 한국인을 사귀어야 하고, 일상 대화를 무리없이 술술 해나갈 필요는 없다. 한국어를 배운 경험으로 한국인을 만나 한두 마디 건네며 즐거워진다면, 그래서 한국어를 배운 보람을 느낀다면 그것으로도 족한 것이 아닐까? 자기 삶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 한국어, 한국인에 대한 관심이 계속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해하는 학습자들도 분명 있다. 그것이 수치로 계산될 수 없는 가치라고, 나는 믿는다. 



어쩌면 목요일과 금요일의그녀들은

이미 그 높은 가치로 한국어를 쓰고 있는지도,

혹은

그러한 삶의 이치를 이미 알고 있는지도


그래서 나는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이 기다려지는지도

매거진의 이전글 호떡 같은 그 남자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