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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미 May 30. 2020

호떡 같은 그 남자 2

[조 선생의 한국어 교실]사건의 재구성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나카무라 상과 나 말이다.

우리가 연인이 된 과정은 이렇다.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했다. 나도 떡볶이를 안다. 하지만 먹어 본 적도, 먹으려고 한 적도 없었다. 떡볶이는 불닭볶음면만큼이나 맵다고 들었다. 떡볶이를 먹고 삼 일 내내 설사를 한 친구도 있다. 물론 그들의 고향은 여기, 가오슝이다. 그러나 나카무라 상이 먹고 싶다고 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떡볶이

辣年糕[làniángāo]

나는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찾았다”

“떡볶이 집”

“응. 여기야.”

나는 이 식당을 알고 있었지만 가 본 적은 없었다. 지도를 보니 학교에서 별로 멀지 않았다. 문제는 교통편이었다. 걸어가기에는 상당히 멀고, 이십 분에 한 대씩 오는 버스를 타도 한참을 걸어야 하는 곳이었다. 가는 방법은 딱 하나 오토바이였다. 하지만 나카무라 상이 오토바이를 타고 싶어할지는 미지수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이 좁아터진 도로를 질주하는 일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외국인도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오토바이 괜찮아?”

“물론이지. 재밌겠다.”

그는 아이처럼 신나 보였다. 나는 학교 기숙사에 사는 친구에게서 나카무라 상이 쓸 헬멧을 하나 빌렸다. 우리는 함께 교내 오토바이 주차장으로 갔다. 

“이렇게 많은 오토바이 중에서 니 오토바이를 찾을 수 있겠어?”

나는 코웃음을 쳤다. 이 오토바이들이 다 비슷비슷해 보여도 알고 보면 다 다르게 생겼다. 

문제 없어.

没問題[méiwèntí] 

메이웬티, 메이웬티, 나카무라 상은 내 말을 따라하며 오토바이 보조석에 앉았다. 나는 그에게 발을 조심해서 올리라고 했다. 그는 말했다. 메이웬티. 

우리는 출발했다. 나는 평소보다 시속을 줄였고, 나카무라 상은 오토바이 맨 뒤에 달린 손잡이를 잡던 손으로 내 허리를 감쌌다. 나는 순간 놀라 나도 모르게 속도를 높였다. 나카무라 상은 “에에” 하며 일본인들이 흔히 하는 감탄사를 뱉었다. 자기도 모르게 일어난 일 앞에서는 누구든 제 나라 말을 쓰나 보다. 나는 조금 더 속도를 높여 달렸다.      




부산 남자.

나카무라 상은 식당 앞에서 간판을 소리 내어 읽었다. 그리고는 이름이 웃기다고 했다. 나는 식당 이름이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헬멧을 벗으니 납작해진 그의 머리가 사실 더 웃겼다. 나는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만지려고 하다가 말았다. 우리는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자리를 잡고 앉아 떡볶이와 어묵을 주문했다. 가게 내부에는 부산 풍경으로 보이는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파노라마처럼 줄줄이 이어진 사진을 보던 그가 고개를 높이 쳐든 채 말했다. 

“부산, 하면 호떡이지.”

“뭐?”

아차 싶었다. 뭐, 라고 물으면 다소 예의 없게 들릴 수 있다는 한국 친구의 말을 들은 적 있어서였다.

“호떡.”

나는 그의 말을 천천히 따라해 보았다.

호떡.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허똑, 호덕, 헛독. 그는 내 발음을 바로잡아 주었다.

“호.떡”

호, 할 때 입술이 작아졌다가 떡, 하면 그의 입술이 떡하니 벌어졌다. 

참 야한 발음이라고 생각했다. 호떡, 호떡.     



“한국에 가서 호떡 먹자.”

“같이?”

“같이.”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한 번도 한국에 간 적이 없는 내게 거기 가서 호떡을 먹자고 했다. 그는 나를 보며 환히 웃었다. 호떡 먹자, 호떡. 그는 입모양으로 속삭였다. 그리고는 경영학원론 수업에서처럼 내 옆으로 바짝 다가와 앉았다. 휴대폰에서 호떡 사진을 보여주었다.     




작고 도톰한 부침개에 견과류를 넣은 음식이었다. 모양은 크게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부산에 가면 꼭 먹어야 한다니까.”

그는 떡볶이를 먹는 내내 내게 호떡 이야기만 했다. 나도 떡볶이를 먹는 내내 호떡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와 함께 한국에 가서 호떡을 먹는 상상 말이다.


우리의 관계는 그렇게 호떡으로 시작됐다.

오토바이를 같이 타고, 떡볶이를 함께 먹고, 호떡을 먹자고 약속한 날,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떡볶이는 생각보다 맵지 않았고, 그와 사귄 후 한 달쯤 지났을 무렵, 떡볶이보다 더 매운 맛을 보았다. 떡볶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을지도.





골목길이었다. 

오토바이 두 대가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갈 정도의 폭이었다. 그날 나는 수업에 늦었고, 젖은 머리에 헬멧을 눌러 쓰고 지름길로 가려고 그 길을 지나고 있었다. 평소와 같은 그 길이 그날따라 좁아 보였다. 반대쪽으로 지나가는 오토바이들이 줄을 이었다. 나는 천천히 오토바이를 몰고 갔다. 그때였다.


 나카무라 상이었다.

 내 것보다 좀 더 큰 오토바이였다. 그는 뒷좌석에 앉아 있었고, 그가 허리를 감싸고 있는 오토바이 운전자는 내가 아는 아이였다. 나와 중급한국어를 함께 듣는 아이인데,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일 년간 살았다는, 중급한국어가 한국어 부전공생들에게는 필수과목이라 좀 쉬워도 듣고 있다는, 그래도 자기는 아직 배울 게 많으니 상관없다는 제법 겸손한 아이였다. 

 천천히 조심스레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내 옆으로 그들은 속도를 내며 지나갔다. 나카무라 상은 오토바이에서 떨어질세라 그녀의 허리를 더욱더 꼭 잡고 있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서서히 그의 얼굴을 그녀의 등에 기댔다. 

 그들은 완벽한 연인으로 보였고, 실제로도 그랬단다.      




“균정 씨,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뭐예요?”

나는 호떡이라고 답했다. 선생님이 말했다.

“완전한 문장으로 다시 말해 보세요.”

“제가 좋아하는 음식은 호떡, 호떡, 호떡이에요.”

나는 뜨거운 호떡을 입에 물기라도 한 듯 천천히 말했다.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그녀가 나를 보고 있었다.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겸손하기만 한 그녀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호떡, 호떡 소리를 내며 엄지를 치켜 들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어쩌면 그녀는 진짜 호떡을 좋아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카무라 상이 그녀에게도 한국에 같이 가서 호떡을 먹자고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호떡을 좋아하게 되었을지도, 혹은 아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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