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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미 May 28. 2020

호떡 같은 그 남자 1

[조 선생의 한국어 교실]사건의 재구성

그의 대답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 김밥을 먹었습니다.

중급한국어 시간이다. 우리는 <김밥>이라는 시를 배우고 있다. 시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한국어가 짧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외국 유학생이 한국에서 매 끼니를 김밥으로 때웠단다. 그게 뭐, 어때서? 똑같은 음식을 매번 먹어도 나는 질리지 않는다. 더군다나 김밥이라면 뭐가 문제일까 싶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있는 찰나, 누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균정 씨”

선생님이었다. 나는 나쁜 일이라도 한 아이 마냥 화들짝 놀랐다. 선생님은 내게 물었다.

“균정 씨가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글쎄, 난 뭘 좋아하나, 잠시 생각해 보려고는 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내 입에서 툭, 튀어나온 말은 바로,

“호떡”

왜 호떡이라 말했던가. 내가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호떡, 그것은 그가 좋아하는 음식인데.

그러니까 그 개새끼 말이다.




경영학 원론 수업이었다.

수업이 시작되고 15분이 지나도록 교수님은 등장하지 않았다.

왕왕 있는 일이고, 학생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앞자리에 앉은 한 남학생이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못 보던 학생이었다. 대만 사람 같지도 않았다. 굵은 양 팔뚝을 움직이며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는 액정이 큰 휴대폰을 보고 있다. 나는 몸을 조금씩 앞으로 기울여 그의 휴대폰을 흘끗 보았다. 그는 누군가와 계속 메신저로 뭔가를 주고받았다.

한국어였다.

경영학 수업에서, 아니 한국어 수업을 제외하고는 이 대만 남부의 작은 대학에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학생은 많지 않다. 그런데 내 앞의 남학생은 한국어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것도 상당히 빠른 속도로 말이다. 맞다. 한국인이다. 분명, 한국인이다. 이 지방 소도시에서 한국인을 볼 기회는 많지 않다. 내가 처음으로 직접 말을 걸어 본 한국인이 우리 한국어 교수님이니 말 다한 것이다. 한국인이다, 진짜 한국인이다, 말 한 번 걸어보자, 한국말 한 번 써 먹어 보자.


결국 나는 용기를 내어 몸을 앞으로 당겼다.

 “저... 한국 사람이에요?”

 그는 제 귀를 의심한다는 듯 두리번거리다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마주 보았다. 나는 그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한국인이에요?”

 그는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쌍꺼풀 없는 가느다란 눈은 반달 모양이 되었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입술은 진한 붉은 빛이 돌았다. 그는 대답 대신 내게 되물었다.

 “한국인이에요?”

 아니라고, 대만 사람이라고,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안다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그는 더 밝게 웃었다   .

 “아!”

 그는 작은 탄성을 내뱉었고, 안심했다고 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옆자리에 앉아도 되느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렇게 나란히 앉았다.

그 때만해도 알지 못했다.

네가 그렇게 제멋대로 내게 왔다가 갔다가 다시 왔다가 갔다가 할 줄은. 그랬다, 너는 그랬다. 왔다갔다. 그러니까 너의 이름은,      




편의상 그를 나카무라 상이라고 하겠다.

나카무라 상은 나카무라답게 일본인이다. 나카무라 상은 서울의 한 사립대에 유학 중인 학생이었다. 그가 재학 중인 서울의 사립대는 우리 대학과 자매 학교이다. 그는 우리 학교에 교환 학생 자격으로 왔다. 정리하자면, 나카무라 상은 한국 대학에 유학 중인 일본인이 대만으로 교환학생이 되어 온 것이다. 문제는 그가 중국어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다. 기본 생존 어휘 “부하오이스(不好意思, 실례합니다)”도 모른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왜 대만에 왔어?”

“그냥”

그냥이란다.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 아는 사람도 없고 언어도 안 되는 곳에 그냥 왔단다. 나는 멍하니 그를 쳐다봤다. 그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하더니 뭔가를 꺼냈다. 그리고는 살짝 주먹을 쥔 내 손을 펴고 손바닥 위에 그 작은 무언가를 올렸다.

“이게 뭐야?”

“사탕”

사탕 봉지에는 ‘누룽지’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누룽지가 뭐냐고 물었다. 그는 밥이라고 했다.

“밥맛이야.”

사탕에서 밥의 맛이 난다고 했다. 나는 껍질을 까서 사탕을 입에 넣었다. 혀로 돌려가며 맛을 음미했다. 정말 밥맛이 났다.

“맞지? 진짜 밥맛이지?”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바로 재미있는 거야.”

“뭐가?”

“젠부”

“젠부?”

“아니, 아니, 전부”

全部. 

한국어로 전부, 일본어로 젠부, 중국어로 췌엔부. 비슷비슷한 발음을 하다가 우리가 지금 어느 나라 말을 하고 있는지 헷갈려 했다. 그리고 웃었다, 그냥.

사탕은 아직도 입 안에서 녹지 않았다.

달달한 밥맛.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진정한 ‘밥맛’의 뜻을 알지 못했다.

나카무라 밥맛, 나카무라 상은 진짜 밥맛. 이때 쓰는 밥맛, 의 의미.

그가 왜 밥맛이었는지, 아니 왜 그보다 더 심한 말을 억지로 만들어서라도 그에게 쏟아 부어야 했는지 조금은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 본 글은 학생의 발표문에서 모티브를 얻었으나 등장 인물은 실제 인물이 아닌 모두 허구로 재구성된 인물임을 밝힙니다.

** 대문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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