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선생의 한국어 교실]숙제와 위내시경
이번 학기가 시작된 지 11주차가 되었다. 8주차에 이미 중간고사도 지났고, 총 15주차 강의 중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이번 학기는 주로 화상 강의로 진행이 되고 있다.
나는 현재 서울 시내 대학에서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발표와 토론>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 신입생들도 대학 입학 후 <대학 글쓰기>나 <발표와 토론> 등의 교양 강좌를 듣게 된다. 나는 이러한 강의 중에서 외국인 유학생에게 특화된 수업을 맡았다.
착하고 성실한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간혹 손이 많이 가는 학생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번 학기의 세 번째 발표를 준비하고 있는 시점에서 여전히 발표문 작성 시 주의사항을 숙지하지 못한 학생들이 있다. 쓰기는 문어체(나는 이번 학기에 신입생이 되었다.), 발표는 구어체(저는 이번 학기에 신입생이 되었습니다.)로 하라고 해도 매번 구어체로 글을 써 내는 학생이 있다. ‘그냥’, ‘좀’, ‘되게’, ‘완전’ 등의 지극히 구어적인 표현은 금지라고 해도 “이 단어를 빼려거든 차라리 내 손목을 내치십시오”라고 외치듯 매번 쓰는 학생들이 있다. 과제를 가상대학에 올리라고 해도 여전히 메일로 보내면서, “교수님, 숙제 좀 체크하세요.(과제 검토를 부탁드립니다, 의 의미)”라고 재촉하듯(?) 말하는 학생도 있다.
학술적인 표현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교양 있는 문어 형식으로 글을 쓰고 말하게 하는 것이 이 교과목의 학습 목표인데, 학생들은 여전히 구어적 표현을 고수하곤 한다. 저도 모르게 다리를 꼬고 앉거나 밥상머리에 앉아 다리를 떨듯이, 학생들은 입말을 “되게” 좋아한다.
2019년 기준 한국 대학교에서 수학 중인 외국인 유학생은 16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교육통계서비스 참고, https://kess.kedi.re.kr). 이들은 대부분 대학 부설 한국어교육 기관에서 중급 단계 정도를 수료한 후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한국어교육 기관에서는 중급 단계인 3급, 4급(단계는 총 6급까지 있으며, 초급이 1, 2급, 중급이 3, 4급, 고급이 5, 6급이다)에서는 일상생활의 의사소통에 필요한 구어 중심의 한국어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현재 대학 입학생들은 학술적인 말하기, 글쓰기, 읽기, 듣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내가 현재 가르치고 있는 수업 중, 세 개 수업의 학생들만 보자면 이들의 평균 한국 거주 기간은 1년 정도이다. 한국어교육기관은 10주가 한 단계(한 개 급)이고, 1년에 유급 없이 가도 4단계까지 간다. 기간도 짧거니와 의사소통에 필요한 구어 중심의 교육을 받다가 대학생이 되어 ‘학술적’ 단계로 가려니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 신입생인 그들에게 필요한 과목이 지금 내가 가르치고 있는 <발표와 토론>이나 <학술적 글쓰기> 등의 수업이다.
이들의 상황이 이리도 잘 알고 있는 선생이지만, 1주차부터 11주차까지 두 달 동안 똑같은 얘기를 해야 할 때에는 평정심을 찾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오늘 화상강의에서는 다음주 발표 준비를 위해 발표문의 오류를 한 명씩 체크해 주었다. 몇 명은 발표문 작성 원칙을 따르지 않았고(발표문에 자기 이름도 쓰지 않았고), 몇 명은 기한 내로 발표문을 제출하지 않았으며(자기가 날짜를 잘못 알아서 그랬다고 변명했고), 한 명은 과제를 제출하지 않으면 점수를 못 받느냐며 하나마나 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해 그들에게 말했다.
“여기 보세요. 발표 규칙을 이미 이야기했죠? 그리고 우리는 지금 세 번째 발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줌 위로 보이는 비디오를 보니 나는 잔뜩 미간을 좁힌 채 ‘완전’ 정색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화상강의의 단점은 내 얼굴을 내가 정면으로 보고 말한다는 점이다. 학생들을 보고 있으나 결국에는 거울을 보며 이야기하는 형상이다.
정색하며 말하는 표정이 얼마나 소름 끼치게 진절머리가 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데 그 중에서 제일 끔찍한 시간은 바로 위내시경 타임이다.
거대한 호스가 입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끔찍한데 그게 목구멍을 타고 내 뱃속을 휘적거리며 사진을 찍고 난리를 친다고 생각하면 정말이지 소름 끼친다. 무엇보다도 호스가 식도로 진입할 때면 온 힘을 다해 목구멍을 닫아 버릴 기세로 “꺼억꺼억” 소리를 낸다.
호스가 뱃속 진입은커녕 식도 입구에서부터 차단이 되자 검사를 맡은 의사는 호스를 도로 빼고는(이 과정도 무지하게 역했다) 나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환자 분 잠깐 저를 보세요.”
깐깐한 목소리의 젊은 여의사를 마주볼 힘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침이 질질 나와 눈과 입 중 어느 부위를 먼저 해결해야 하는지 헷갈린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시선 처리’냐 ‘침 삼키기’냐 그것이 문제였다.
“환자 분 계속 이렇게 하시면 위내시경 못합니다. 알려주신 대로 하세요.”
맞는 말이다. 그녀는 위내시경 전에 환자가 숙지해야 할 사항을 알려 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따를 수가 없었다. 텁텁한 맛의 마취 스프레이, 굵은 호스, 입마개, 침 질질, 우엑 소리 등이 내 정신을 혼미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위내시경은 끝났다.
깐깐한 여의사는 좀 전과 달리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라”는 지극히 천편일률적인 주의사항을 일러줬다. 날 쳐다보지도 않은 채.
가끔 위내시경실에서 정색을 하며 내게 규칙 따위를 알려주던 의사가 생각난다. 그녀가 틀린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목구멍으로 굵은 호스를 삼켜야 하는 환자의 입장은 1도 생각해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참 야속했다.
오늘 학생들은 나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백 번을 들어도 제 몸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라면 잊기 마련이다. 그런데 선생은 야속하게 정색을 하며 “내가 이미 알려줬죠?”라고 말한다. 우리 학생들은 “좀 하세요”라는 말 대신 “검토를 부탁드립니다”라고 써야 한다고 몇 번을 들었지만 한국어를 쓰려고 하면 ‘좀’이라는 말이 입에 붙어 나가질 않으니 자꾸만 쓰게 된다.
이를 어쩌나.
어쩌긴 계속 배워야지.
남궁인의 <제법 안온한 날들>을 읽었다.
내시경을 받아보지 않은 이유는 무서워서이다. (중략) 저 입마개는 인간이 최대한의 힘을 사용해도 절대 상악과 하악이 무엇인가를 씹을 수 없게 만드는 매우 굴욕적인 발명품이었다 이를 사용하면 입에 넣은 것은 절대 물리적으로 상하지 않는다. 매우 시술자 중심의 존재였다. 색깔조차 눈에 띄기 좋으라고 야한 초록색이었다. 내시경 받는 사람, 위세척 받는 사람, 삽관 환자까지 모두 당하는 입마개였다. 나는 그것을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장난삼아 입에 넣어 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대신 타인에게 천 번쯤 물려봤을 것이다. 이제 때가 왔다. 나도 저 입마개를 차고 침 한 바가지 흘릴 때가. (중략) 내시경 담당 선생님은 매우 친절했고,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매우 토 나올 겁니다.” 정답이었다. 그 굵은 관이 입안에 들어왔는데, 딱 그 순간부터 나는 그 관을 견디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할 수 없었다. 목구멍이 타버리는 것 같았다. 눈을 뜨기만 해도 모종의 구역 행위를 할 것 같아서, 눈을 질끈 감고 어서 이 시간이 끝나기만으로 바라며 버티기 시작했다.
이 글의 저자는 의사이다. 의사가 무서워서 내시경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실소가 났다. 의사도 환자가 되면 겁이 난단다. 무엇보다도 이 작가가 ‘위내시경 모험기’를 철저한 의학적 지식으로 무장해 세밀한 묘사로 기술해 놓은 덕에 나도 이 년 전 “정색을 하며” 나에게 지적질을 하던 위내시경 의사가 떠올랐다.
부럽다, 이 작가의 묘사 능력이.
부럽다, 친절한 내시경 담당 선생님을 만나서.
그리고 (학생들에게)
미안하다, 정색해서.
* 대문 사진: 픽사베이